<음식과 사람> 5월호

[음식과 사람 2016-5 P.50 Local Analysis]

 

필자는 한국의 외식업 경영자 입장에서 일본 외식문화의 변화 추이를 늘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저성장 시대에 20년 이상 장기 불황을 경험한 일본의 외식 시장을 연구하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한국의 외식 시장이 일본 시장을 많이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황이 체질화된 일본의 외식문화에서 그들의 생존법을 함께 살펴보자. 저성장 시대의 일본 외식업 코드를 잘 읽어보면 한국 외식업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일본과 꼭 닮은 2016년 한국 경제

1990년대 초, 일본 도쿄 외식업 시장 조사를 처음 진행했다. 당시 일본은 버블경제(거품경제) 붕괴 이후 저성장 트랙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일본의 주요 상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아이템은 ‘100엔 숍’이었다.

당시 100엔 숍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가 다이소였는데, 지금 다이소는 한국 상권의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의 일본과 2016년의 한국이 어쩐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1985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버블경제는 1990년 들어서면서 본격화됐다. 그때부터 일본 시장은 지금까지 25년간 저성장 트랙을 달리고 있다. 일본 시장과 일본의 소비자들은 저성장 시대에 살아남는 법을 25년간 학습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황이 체질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경기 불황의 여파는 일본의 외식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 일본에 출장 가서 아침 시간에 거리에 나가보면 ‘요시노야’, ‘마쓰야’, ‘스키야’ 등 규동(일본의 쇠고기덮밥)을 파는 가게들이 가장 먼저 문을 열고 영업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필자가 처음 일본 외식업 시장 조사를 시작한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서민들에게 변치 않고 애용되는 일본의 대표적인 먹거리가 규동이다. 규동 가게가 일본 외식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외식 코드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말이다.

가격도 20여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240엔, 290엔, 350엔에 판매하는 덮밥이 많다. 단돈 150엔(한화 1570원)이면 맛좋은 생맥주도 한 잔 들이킬 수 있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밥 한 끼에 4000원도 안 되는 메뉴가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요즘 일본에 가면 한국보다 물가가 더 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규동 / 사진 = flickr

 

저성장 시대,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일본의 음식점들

일본 도쿄의 시부야 뒷골목, 오사카 도톤보리 상권, 나고야 사카에역 뒷골목을 돌아다녀보면 고급음식점보다는 서민음식점 일색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라멘집, 우동집, 규동집, 다양한 콘셉트의 선술집 등 서민층을 공략하는 음식점들이 성업 중이다. 물론 서민음식점의 기준을 따지자면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큰 가게보다는 작은 가게가 강세라는 점이다.

서민음식점을 판가름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는 음식의 가격으로, 외식업 경영자 입장에서는 객단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격적인 측면에서는 비싼 음식점보다는 저렴한 음식점이 단연 일본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를 자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외식업뿐만 아니라 돈키호테 같은 대형 할인마트에서의 소비가 느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에 800개 남짓 매장을 출점한 스타벅스의 가격을 비교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스타벅스의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 가격은 4100원이다. 일본 스타벅스의 같은 상품 가격은 340엔으로, 세금을 포함해도 367엔(한화 3890원)이다. 일본 스타벅스가 한국 스타벅스보다 저렴하게 받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한국 외식 시장에서 불고 있는 가격 파괴 바람은 단순히 한때의 유행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당분간 가격경쟁력을 내세운 음식점들이 상권마다 눈에 띄게 출현할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한때 잘나가던 고급 일식집과 고급 패밀리 레스토랑의 매출이 곤두박질치고, 대형 호텔에 입점한 외식업체가 침체에 빠지는 것은 불황기를 대표하는 징후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불황기 코드 관점에서 보면 대기업들이 앞다퉈가며 오픈한 한식 뷔페의 운명 또한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일본 외식업계는 어떻게 불황기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했을까? 필자가 주목한 첫 번째 마케팅 코드는 일본 외식업계가 그 지역만의 명물 먹거리로 승부를 했다는 것이다.

오사카를 대표하는 전통 먹거리 중 하나는 ‘구시가쓰(꼬치에 꿴 돼지고기튀김)’다. 나고야를 대표하는 대중적인 먹거리는 단연 ‘데바사키(닭날개 튀김요리)’를 떠올릴 수 있다. 구시가쓰를 파는 집이든, 데바사키를 파는 집이든 한결같이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면서 그 지역의 명물 먹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외식 상권에서도 해당 지역이나 해당 상권을 대표할 수 있는 명물 먹거리 개발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 사진 = Pixabay

두 번째 마케팅 코드는 ‘펀(FUN) 마케팅’이다. 일본의 대형 상권일수록 재미있는 음식점이 많다.

음식 모양이 재미있기도 하고, 시설이 주는 재미 요소, 특히 재미있는 사람을 내세우는 음식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장사의 신> 저자 우노 다카시 역시 “재미있는 음식점이 맛있는 음식점을 이긴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불황기 음식점의 성공 전략인 펀 마케팅은 한국의 외식업 경영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내게 맞는 재미 코드를 개발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불황기일수록 음식점을 찾는 소비자들을 미소 짓게 하는 경영 전략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펀 마케팅을 불황기의 한국 외식 시장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펀 마케팅은 음식점의 차별화 요소로 부각될 수도 있다. 펀 마케팅이라고 해서 TV에 등장하는 개그맨들처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부각시키는 것도 펀 마케팅의 한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과 직원의 표정에서도 생동감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한국 ‘나홀로 세대’ 500만, 2인 이하 고객 위한 메뉴 · 시설 갖춰야

최근 서울 홍대 상권에서 눈에 띄는 외식업 키워드 중 하나는 ‘혼밥’과 ‘혼술’이다. 혼자 밥 먹는 고객, 혼자 술 마시는 고객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외식 시장에서의 소비 패턴을 잘 살펴보면 1인 고객, 2인 고객이 단연 대표 고객군을 형성하고 있다. 불황기일수록 기업들의 회식 횟수도 줄어든다. 외식업 경영자 입장에서는 단연 개인 고객보다는 단체 고객이 구미가 더 당긴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 단체 고객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나홀로 고객이나 2, 3인 고객은 상대적으로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식당가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의 ‘나홀로 세대’ 수도 5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 서울 서대문구 혼밥 식당 / 사진 = 정희수 기자

갈수록 나홀로 세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이 없이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는 딩크족(DINK · Double Income No Kids)도 늘고 있다. 2인 가족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외식업 경영자라면 핵심 고객으로 부상하는 1인, 2인 고객들이 편하고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메뉴와 시설을 갖춤으로써 장기 불황에도 끄떡없는 음식점, 일본처럼 대를 이어 물려주는 좋은 음식점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ditor김상훈 스타트비즈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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