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5월호

[음식과 사람 2016-5 P.48 Food Essay]

 

매화가 막 봉오리를 터뜨리려고 할 때 일본 나고야 공항에 내렸다. 버스로 1시간쯤 달려서 욧카이치에 짐을 풀었다. 인구 40만 명, 버스 차창을 통해 큰 공장 한 곳을 바라보았는데 바로 도시바 반도체공장. 삼성반도체를 이겨보겠다고 지어놓은 건물이다.

삼성이 따라잡힐까? 그럴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일본이 우리를 따라잡겠다고 팔 걷어붙였다는 게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그러나 음식점 순례에 나서면 금방 우울해진다. 엔화 약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일본에서 뭘 먹을 때 예전처럼 ‘엄청 비싸구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뭐야 이거, 한국보다 더 싸잖아!’ 이럴 때가 흔하다.

회전초밥집은 100엔 또는 110엔 균일의 체인점이 대세인데 이런 집에 들어가게 되면 거의 절망하게 된다. 한국에서 2500원짜리 이상은 되어야 느낄 수 있는 맛을 여기선 단돈 1200원 이내로 즐길 수 있다. 반값이다. 왜 그럴까. 왜 한국의 회전초밥집은 일본보다 두 배나 더 비싸야 할까.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고객들은 냉정하다. 중국인 여행자들이 일본을 더 선호하는 경향은 단순한 유행이 아닐 것이다.

 

▲ 사진 = Pixabay

 

일본 가면 초밥 말고 반드시 즐겨야 하는 먹거리가 있는데 바로 소바, 메밀국수다. 소바는 서서 먹는 300엔짜리도 감칠맛이 난다. 이번에는 백화점 식당가에서 새우튀김 큰 거 하나 얹어 맛있게 먹었다. 800엔이었는데 비싸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 집에선 아주 작은 반찬 그릇에 생와사비를 완두콩 한 알쯤 되는 크기로 담아 내놓았다. 즉석에서 바로 갈아주기 때문에 향은 물론이고 아주 조금만 찍어 먹어도 코끝이 알알한 게 눈물이 나려고 했다. 누군가는 이 생와사비가 첫사랑의 맛이라고 했는데, 과연 첫사랑이 이렇게 산뜻하고 찬란하단 말인가.

완두콩 반쪽만큼밖에 못 먹었는데도 충분히 개운했으며 서서 먹는 소바값의 3배 가까이 돈을 내면서도 즐거웠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번엔 코가 아니라 가슴을 알알하게 하는 사연을 소개해드리겠다.

이쑤시개 꽂아두는 조그만 상자에 들어 있는 정체불명의 소형 비닐봉지들이 눈에 띄었다. 당연히 꺼내서 용도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내용인즉 ‘먹다 남기신 생와사비를 이 봉지에 담아 가서 또 쓰시라’는 것이었다. 완두콩 한 알 크기지만 분명히 먹다가 남길 것이고 그냥 버리면 아까우니까 가져가시라! 뒷면에는 오차즈케(찻물에 밥을 말고 김 가루 따위를 고명으로 얹은 일본 전통 음식) 드실 때 맛을 내도 좋고 생선회 사다 드실 때 가게에서 주는 것보다 이 생와사비를 쓰시라는 등등의 안내가 그림과 함께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맨 밑에 ‘더 필요하신 분은 미리 종업원에게 주문하시라. 식대 계산할 때 잘 포장해드리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비록 글씨는 작게 쓰여 있어도 강한 울림으로 가슴을 때렸다.

생와사비를 담은 봉지는 비닐 커버를 뜯어내고 다시 닫으면 완전 밀봉된다. 남긴 생와사비를 (남은 일정 때문에) 담아 오지는 못했지만 봉지는 여러 개 기념으로 챙겼다.

 

editor 윤동혁 프로덕션 대표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