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SOS 김현수가 간다

[음식과 사람 2016-6 P.64 Consulting]

 

잔잔한 바다를 오래 항해하다 갑자기 거친 바다가 나타나면 당황하게 된다. 더구나 별다른 준비도 없이 떠나온 항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럴 경우, 더 늦기 전에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확인해보고 조난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내는 것이 선장으로서 최선의 위기조치 행동일 것이다.

부산 해운대 ‘호천식당’ 박순이(64) 대표는 <음식과 사람>에 실린 본란을 보고 김현수 외식콘셉트기획자(월간외식경영 대표, 이하 김 기획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consulting 김현수 editor 이정훈 <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 부산 해운대 중동에 위치한 호천식당 / 사진 = 김현수 외식콘셉트기획자 블로그 캡쳐

 

[Why] 20년간 운영하던 커피숍과 칼국수집 암초 부딪혀…

반드시 힘들여 노력해야만 성공하는 건 아니다. 좋은 시절을 만나면 큰 성공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낭패를 보지는 않는다. 문제는 좋은 시절이 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젊은 시절 공무원이었다. 결혼 후에도 유복한 생활을 이어나갔던 전형적인 중산층 출신이다.

20년 전, 지금의 자리에서 커피숍과 우동집, 칼국수집을 했는데 비교적 무난하게 운영했다. 이전에 박 대표가 외식업에 종사했던 경험은 없었지만, 별 어려움 없이 음식점을 경영해왔다. 그러다가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라는 커다란 두 개의 암초에 연달아 부딪히면서 순항은 끝이 났다. 꾸준했던 매출이 더는 꾸준하지 않았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최저 매출액을 기록하는 달이 차츰 늘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이런저런 메뉴를 새로 도입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점포 임차료와 인건비를 감당하기에는 매출이 턱없이 적었다. 근심 속에서 해결 방법을 궁리했다. <음식과 사람>의 컨설팅 코너를 늘 열독해왔던 터라 박 대표는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 기획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전화로 문의한 뒤, 2015년 11월 처음 서울의 김 기획자 사무실로 찾아가 상담을 했다.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지 물었다.

 

[Problem] 임팩트 낮고 가짓수 많은 메뉴

김 기획자에 따르면 아무리 업주가 노력해도 안 될 여건이나 상황은 분명히 있다고 한다. 그것이 메뉴 구성일 수도 있고, 입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도 성과가 미미하거나 백약이 무효라고 한다.

이를테면 요즘 본란을 열독하는 독자들 가운데 김 기획자에게 낙지 전문점 창업을 문의하는 이들이 많은데, 낙지 전문점은 굴국밥처럼 지금 진입하기에는 다소 신선도가 떨어지는 아이템이므로 경험이 없는 창업자라면 열심히 노력해도 노력 대비 성과가 적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호천식당이 그랬다.

김 기획자가 현장에 가서 점검해보니 점포 위치는 비교적 좋았다. 그러나 메뉴 구성과 메뉴 정체성이 모호했고 상품력도 낮았다. 손님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음식을 잘하는 식당인지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되지 않는 식당이었다.

대표 메뉴인 굴국밥은 겨울철 메뉴였다. 여름철 메뉴인 막국수도 있었지만 구색 갖추기 정도의 상품력이 문제였다. 굴 전문점을 표방했지만 칼국수, 주꾸미, 불고기 등 메뉴가 분산돼 임팩트가 낮았다. 메뉴 수도 너무 많았다.

젊은이나 세련된 도시인의 왕래가 많은 거리에 위치했음에도 좌석이 100% 좌식인 점도 문제였다. 젊은이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길 꺼린다. 또 손님이 신발 벗고 한번 앉으면 오래 앉아 있기 때문에 회전율도 떨어졌다. 서빙하기 힘들고 노동 강도가 높아 직원들의 이직 또한 높았다. 장기간 지속된 저조한 매출에 박 대표가 풀이 죽은 것도 식당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 사진 = 정희수 기자

 

[Solution] 막강 막국수와 숯불돼지불고기로 젊은 층 공략

호천식당은 해운대에서 가깝고 괜찮은 상권이어서 고깃집으로 안성맞춤이었다. 해운대의 구도심이었지만 여전히 좋은 상권이었다. 그러나 박 대표가 비교적 고령인 점을 감안해 노동 강도가 높은 고깃집 대신 차선책으로 메밀국수와 숯불돼지불고기를 간판 메뉴로 하는 식당으로 콘셉트를 정했다. 우선 메뉴 구성을 전면적으로 손봤다. 굴국밥을 비롯한 굴전, 굴회, 굴무침 등 기존 메뉴는 모두 없앴다. 대신 막국수, 숯불돼지고기, 소바를 장착했다.

▲ 호천식당의 주메뉴 막국수와 불고기 / 사진 = 김현수 외식콘셉트기획자 블로그 캡쳐

바뀐 메뉴 콘셉트에 따라 옥호도 원래의 ‘통영굴밥’에서 ‘호천식당’으로 바꿨다. 돼지 불고기와 막국수는 다년간 고객의 호평을 받아온 점포를 벤치마킹했다. 메밀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부산에서는 메밀 함량이 70%로 높은 막국수를 시현했다. 물막국수의 육수와 비빔막국수의 비빔장도 서울의 웬만한 막국수보다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막국수 단품은 7000원으로 책정했고, 불고기와 막국수를 세트 메뉴로 묶어 9000원을 받았다. ‘돼지불고기+막국수’는 인근 사무실 직원과 해운대구청 직원들이 가장 많이 주문하는 점심 식사 메뉴가 됐다. 주말이면 해운대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메뉴로 정착돼가고 있다.

소바 역시 메밀 함량을 70%로 높게 설정하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일식 간장 쓰유를 접목했다. 저녁에는 술손님을 타깃으로 고단가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소 내장무침을 장착했다. 내장 특유의 잡내를 제거하고 씹는 맛과 매콤달콤한 맛이 뛰어난 캐주얼한 안주다. 기존의 무거운 느낌의 내장구이나 내장무침을 대체한 점이 눈길을 끈다. 개운하면서 시원한 소스 맛은 얼핏 냉채족발과 흡사해 젊은 층에게 어필하고 있다.

2016년 1월부터 4월 초순까지 전문 조리인에게 새 메뉴들을 교육받는 동안 인테리어 작업을 병행했다. 여유자금이 부족하던 차에 마침 아는 업자를 만나 자신의 형편을 알린 뒤,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게 해줄 것을 당부했다. 좌식 좌석을 모두 입식으로 바꾸고 깔끔한 모습으로 단장했다.

 

[After] 비효율 줄고 매출은 늘고

점포 콘셉트 전환 후 매출이 완만한 상승세로 돌아섰다. 불과 한 달 반 만에 2배 정도 상승했다. 메뉴가 서로 이질적인 데다가 가짓수가 많아 조리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었던 부분도 대폭 개선됐다. 식재료 구매와 관리도 단순해지고 쉬워졌다.

박 대표는 자신이 외식업 경험이 많은 데 비해 외식업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나 전략이 없어 늘 불안해했다. 더구나 갈수록 어려운 외식업 환경에 직면하면서 그 불안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이제 그런 불안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신감을 되찾았다. 부산에서는 가장 맛있는 막국수 조리 노하우를 보유했다는 자부심도 갖게 됐다. 본격적인 막국수 계절인 여름철이 오면 지금보다 4, 5배 정도 매출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기획자는 상권과 메뉴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업주가 노력해도 소용없다고 강조했다. 고름은 아무리 끌어안으려 해봐야 살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막국수 먹을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의 굴국밥은 한낱 고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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