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6월호

[음식과 사람 2016-6 P.60 Benchmarking Tour]

 

외식업체 대표들은 늘 “어디 가서, 뭐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음식부터 경영 기법까지 배우고 싶은 부분은 많다. ‘잘나가는’ 가게 주인은 시간이나 경비가 넉넉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영이 어려운 가게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각 지역별, 음식별로 ‘지면 벤치마킹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사정상 못 가보는 분들이 힌트라도 얻기를 바란다.

 

editor 황광해

 

베끼는 것이 불가능한 호남 한식

드디어 호남으로 벤치마킹 투어를 떠난다. 몇몇 주변 분들이 “왜 벤치마킹 투어 이야기를 하면서 호남 편을 빨리 쓰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두려웠기 때문이다. 호남 한식은 역시 최고다. 반찬 하나, 음식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그래서 미뤘다. 호남 한식? 배울 것 많다. 배울 것 많으면 오히려 혼란스럽다.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그 부분이 두려웠다. 자, 이제 혼란스러울 정도로 배울 것이 많은 호남 한식의 세계로 떠나보자.

 

호남 한식 투어를 떠나기 전에

절대 욕심을 내지 말자. 주변에 호남 음식, 특히 호남 한식으로 유명한 외식업체 대표들이 있다. 이들에게 장난삼아 묻는다. “가맹점 해달라는 이들이 많을 텐데 왜 프랜차이즈를 하지 않나요?” 우문에 현답이다. ‘현답’은 간단하다. “진짜 호남 한식 가맹점 하겠다는 사람 있으면 제발 소개 좀 해달라”고 말한다.

음식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도 저렇게 손님이 줄을 서는 가게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외식업체의 대표를 만난다. “반찬이나 음식들 계속 공급해주실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 대답은 당연히 “노!”다. “매일 내 식당의 반찬, 음식 만드는 것도 힘든데 언제 다른 식당 음식까지 만들어줘요?”다. 우리 주방에서 1년 일하면서 음식 만드는 것을 배우는 것은 가능하다고 대답하면 대부분 고개를 젓고 나간다.

음식은 손맛이라고 한다. 물론 손맛은 아니고 장맛이다. 장과 식재료를 잘 만지는 테크닉도 필요하다. 아주 섬세하고 작은 손길 하나가 음식 맛을 싹 바꾼다. 호남 음식의 ‘맛’은 바로 이 정성에서 시작된다. 원칙대로, 예전 우리 어머니들이 했던 대로 한다. 좋은 장과 원칙을 지키는 섬세함에서 호남 한식의 맛이 시작된다. 그저 브랜드 가져다 음식점 내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정성과 진정성을 배우려는 사람은 드물다.

자, 다시 이야기하자. 호남 한식 투어를 떠나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욕심내지 말자’이다. 호남 한식을 쉽게 배울 수는 없다. 반찬 한 가지, 음식 만드는 방법 하나라도 제대로 배우자. 외식업체에서 늘 고민하는 반찬 하나라도 배우면 그야말로 ‘내 가게 매출’에 도움이 된다.

 

▲ 사진 = Flickr

 

'음식, 반찬 하나라도 배우자'

<대원식당>

순천의 ‘대원식당’에 가서 진석화젓갈이나 봄동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권한다. 진석화(眞石花)젓은 굴로 만든 오래 묵힌 젓갈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만드는 방법은 녹록지 않다. 2, 3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몇 번씩 국물을 달여 넣어야 하고 조심스럽게 삭혀야 한다. 대원식당의 진석화젓을 보고 스스로의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굴은 늘 다르다. 1월에 생산된 굴과 3월의 굴이 다르다. 생산지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해의 해수 온도에 따라서도 다르다. 달라지는 굴에 따라 사용하는 소금의 양도 달라져야 한다. 상태를 보고 달이는 시기도 정해야 한다. 대원식당의 진석화젓을 보고 배울 점은 하나다. ‘내가 이걸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까?’라는 것이다. 대원식당의 진석화젓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대원식당의 진석화젓과 다른 젓갈, 더 좋은 굴 젓갈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점이다.

음식을 만드는 방식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손으로 배운다. 즉 기술이다. 두 번째는 머리로 배운다. 즉 생각하면서 나만의 음식을 만든다.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으로 바꾼다. 이른바 창의성, 크리에이티브다.

음식을 만드는 세 번째 방식은 가슴으로 배우는 것이다. 소비자에 대한 헌신, 음식에 대한 진정성이다. 가슴으로 만든 음식은 소비자의 가슴에 감동으로 남는다. 대원식당에서 배울 점은 바로 이런 세 가지 기법 모두다. 기술, 머리, 가슴으로 만드는 음식을 배워야 한다.

봄동은 평범한 식재료다. 여름철이나 가을철에는 봄동 대신 배추를 툭툭 부러뜨려서 내놓는다. 희한하게도 이 집의 배추는 늘 맛있다. 가만히 상을 살펴보면 배추와 어울리는 또 다른 반찬이 있다. 날 배추 잎에 짭조름한 고등어조림 한 조각을 얹어서 먹으면 아주 맛있다.

고등어의 비린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음식을 보면 사족을 못 쓰는 이도 있다. 외식업체로서는 ‘타깃 마케팅’도 좋은 방식이다. 모든 사람들을 고객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도 좋지만 일부 사람들이 마니아가 되는 집도 좋다.

예전에 서울 청담동 골목에 ‘고등어구이 상추쌈’을 내놓는 집이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줄을 서는 집이었다. 이 집에서 늘 ‘상추 대신 배추 잎을 내놓으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물론 대원식당의 메뉴를 보았기 때문이다.

욕심내지 말고, 한 집에서 하나만 배우는 것도 외식업체 주인, 주방장으로서는 오히려 유용하다.

 

'장(醬)을 배우자'

<전통식당>

담양만 하더라도 외진 곳이다. 담양군 고서면 고읍리. 담양에서도 외진 곳이다. 필자도 소쇄원 가는 길 중간에 ‘전통식당’이라는 음식점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집은 호남 한식 마니아들이 꾸준히 찾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2만~5만 원대의 한식을 정갈하게 내놓는다.

어떤 밥상을 만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홍어삼합, 죽순, 토하, 진석화, 참게장, 떡갈비, 굴비 등과 더불어 김치, 장아찌, 각종 젓갈 등이 풍성하다. 대략 40여 종의 반찬이 나온다. 국도 수준급이다.

이 전통식당 음식의 바탕은 장(醬)이다. 바깥에 장독대가 큼지막이 있다. 장독대가 있으니 이런 반찬이 가능한 것이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이 정도 밥상을 차리고 낮은 가격대로는 운영하기 힘들다.

우선 욕심내지 말고 이 집 반찬 한두 가지라도 ‘훔치자’. 김치 한 종류, 젓갈 한 종류라도 제대로 배우고 깨치면 벤치마킹의 효과는 충분하다. 외진 시골에서 이 정도로 정갈한 밥상을 차려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음식의 배치, 가격대별 음식 종류를 선정하는 것도 대단하다.

어디서 배웠을 테지만 배운 것을 이미 뛰어넘었다. 역시 이 집에서 배우라는 것이 아니다. 이 집에서 마음에 드는 음식 한두 가지를 눈여겨보고 이 집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 집에서 배울 것은 역시 장(醬)이다. 장맛을 보고 그 장맛을 제대로 재현하고 한편으로는 이 집 장맛보다 더 나은 장맛을 구현한다면 한식집으로 성공할 수 있다.

 

'참 배우기 힘든 두 곳'

<남원집> <함씨네밥상>

대단한 음식을 내는 곳이다. 처음 이야기한 대로 ‘절대 따라 하기 힘든 호남 한식’을 내놓는 집이다. 가보라고 권하지만 막상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글쎄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가지 반찬, 한 가지 메뉴라도 건질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나는 순창의 ‘남원집’이다. 6인상부터 가능하다. 1인당 2만5000원 정도다. 물론 2인, 4인 상은 불가능하다.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앞으로는 영영 사라질 밥상이다. 반찬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80여 종류의 반찬 중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만들 수 있는 반찬’ 하나만 찾아내더라도 성공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 부근의 ‘함씨네밥상’이다. 보기 드문 한식 뷔페다. 역시 대단하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이 중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보고 배우자. 아이디어, 힌트라도 얻으면 그게 내 외식업체의 시그니처 메뉴가 될 수 있다. 두 곳 모두 ‘베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 다양함을 보고 그중 하나라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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