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7월호

[음식과 사람 2016-7 P.63 The Kitchen]

 

2011년 10월 중순쯤 어느 신문에선가 본 인터뷰 기사가 새삼 떠오르는 아침이다. 인터뷰는 34년간 순댓국을 끓여온 국밥집 아주머니의 짧은 이야기였다. 국밥집 아주머니는 마치 고백을 하듯 “지난 34년 동안 단 하루도 문을 닫아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하루를 쉬려고 한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외식업중앙회가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라는 행사를 열어 전국의 외식업 경영자 10만여 명이 한자리에 모인 일대 사건이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어렵게 식당 문을 하루 닫을 결심을 한 것이었다.

인터뷰 기사는 아주머니가 그동안 국밥집을 단 하루도 쉴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돈 때문이 아니라 밥집을 찾아주는 손님들과의 약속 때문이었다”고 한 말로 끝을 맺었는데, 그 여운은 그날 이후 지금껏 필자의 가슴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사진 속 담담했던 아주머니의 표정만큼 잔잔하던 그 감동이 오래된 벽화처럼 여태 필자의 마음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언컨대 바로 ‘약속’ 때문이다.

그분이 34년을 한결같이 지켜온 약속은 아마도 그분의 평생을 만들어온 실체가 아닐까 싶다. 그분에게 약속은 꼭 지켜야 할 거창한 무엇도 아니고, 강박관념을 갖고 지켜야 할 것도 아니었다. 하루하루 약속을 지키다 보니 하루가 1년이 되고 1년이 34년이 되는 여일한 일상을 살아왔을 터다. 대부분의 생활인들에게는 지키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분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 34년 동안 하루하루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내렸을까 생각하게 된다.

음식인에게 약속이란 그런 것이다. 외식업을 경영하는 사람도,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도, 그리고 음식을 가르치는 사람도 모든 것이 약속과 관련돼 있다. 식재료와의 약속, 만들어지는 음식과의 약속, 그 음식을 먹는 사람과의 약속,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음식을 만드는 자신과의 약속의 연속이다. 음식은 곧 ‘약속’인 것이다.

외식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문을 여는 순간부터 ‘오직 나만의 음식으로 당신을 모시겠다’는 무언의 표현이자 세상 모두를 향한 약속이다. 안전하고 신선한 식재료, 청결한 주방,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편안하고 친절하게 모시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그 약속은 어느 순간부터는 고객들과 교감하며 믿음이라는 새로운 약속을 만들게 된다. 언제라도 오고 싶을 때 와서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식당이라는 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식당이 매개가 되어 고객들에 의해 무수히 많은 또 다른 약속들이 태어난다.

이처럼 약속이 약속을 부르고, 그 약속이 믿음으로 전이되어 더 큰 약속을 하는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외식업체와 고객 사이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자 문전성시를 이루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외식업체가 공언한 무언의 약속이 한결같이 지켜지고, 고객도 그 약속에 화답하는 믿음이 만들어질 때 가능한 일이다.

최근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중심이 되어 전개하고 있는 예약부도(No-Show) 근절 캠페인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면서 약속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새삼 소중하게 와 닿는다.

일부 무심한 고객들이 약속을 위반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지만, 예약부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속을 지켜온 우리 음식인들의 마음이 한결같다면 고객들 또한 머지않아 약속과 믿음으로 보답해 예약부도라는 문화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5년 전 신문 인터뷰 기사 한 줄에 담긴 식당 아주머니의 음식에 대한 철학이 성급하고 무심한 고객들의 부도 사태를 막아줄 명약이 아닐까 싶다. 그 철학은 다름 아닌 ‘음식은 곧 약속’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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