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8월호

[음식과 사람 2016-8 P.63 The Kitchen]

 

여름의 절정, 8월이다. 대체로 8월이면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올해는 절기가 빨라서 이미 여름을 대표하는 하지, 소서, 대서가 모두 지나가고 입추(立秋·8월 7일)가 코앞이다. 처서(處暑·8월 23일)도 예년보다 일러 올해는 더위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듯하다.

처서는 여름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인데, 옛말에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온다”고 할 정도로 덥고 지루했던 여름을 빨리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땀 흘려 지은 농사의 결실을 비로소 예측할 수 있는 시기여서 그만큼 마음이 설렌다. 처서에는 풀도 더 이상 자라지 않아 잡초를 솎아낼 필요도 없으니 “어정거리면서 7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며 8월을 보낸다”고 할 정도로 농사일이 한가하기도 하다. 곡식과 과일이 잘 여물기만 하면 될 일이다. 올해도 풍년이 들어 농사 짓는 분들이 더 많은 결실을 거두기 바란다.

그렇게 한 해의 먹거리를 얻고 나면 음식은 절로 풍성해지고, 그렇게 자연이 준 혜택은 이듬해 먹거리가 새로 돋을 때까지 우리 몸을 지탱하는 음식이 된다. 자연이 음식이 되고 음식이 자연이 되어, 자연의 일부인 우리 몸이 오롯이 자연을 기다리는 순환의 한 축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식은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인 셈이다.

음식 먹는 것을 ‘섭생’이라고 한다. 음식을 취한다는 것은 자연을 취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의 몸이 곧 자연이기 때문이다. 음식과 함께 건강을 도모한다는 것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가장 근원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섭생의 원리를 철저하게 지켜왔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와 함께 우주적 섭리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계절별로 얻는 먹거리로 계절이라는 변화가 주는 충격을 이겨낼 힘을 얻음으로써 더욱 강인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해마다 사계절의 기운을 골고루 받은 우리 몸은 대대로 자연의 위대함과 제철 음식의 경이로움에 충분히 길들여지면서 강인한 체질로 다져져왔다. 자연이 음식을 통해 계절의 위대함과 인간의 경이로움을 함께 선사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발효음식은 단순히 음식이라기보다 ‘약’에 가까운 자연의 선물이다. 발효음식이야말로 문명과 문화의 완벽한 결합이라 할 것이다. 인류가 발전시켜온 수많은 음식이 있지만 그중 우리 전통의 발효음식은 압권이다. 된장, 고추장, 간장 그리고 김치와 전통주에 이르기까지 그 가짓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세계 유수의 발효음식과 견줘봐도 음식으로서의 완성도 또한 최고 수준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현대의 문명과 만나는 과정에서 많이 다치고 망가졌다. 문화와 문명의 공존을 통해 인류 역사는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문화가 문명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인류는 많은 문제와 위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자연이 준 선물인 음식으로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수록 자연이 준 위대한 선물인 음식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면서도 음식 고유의 맛과 멋을 고스란히 만끽할 수 있는 섭생에 의지하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명으로부터의 폐해를 이겨내는 길이 아닐까 싶다.

<동의보감>에는 “몸을 편하게 하는 근본은 음식에 있으며, 어떤 음식이 올바른지를 알지 못하면 건강을 도모할 수 없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생명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음식임을 정확히 일깨워주는 지침이다.

editor 윤숙자 한식재단 이사장,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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