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8월호

[음식과 사람 2016-8 P.52 Food  Essay]

 

editor 윤동혁

 

▲ 사진 = Pixabay

사람 따라 다르겠지만 ‘통속적’으로 뭔가를 고를 땐 기준이란 게 있지 않겠나. 남자를 고르는 여성의 기준은 대략 외모, 학벌(직업), 시댁 어른들의 면모, 성격(취향) 등등일 것이다. 요즘엔 자기보다 어린 남자라는 조건도 그 기준 중 하나인 모양이다.

음식점도 그럴 것이다. 우선 맛을 가장 으뜸으로 치고 가격, 친절, 위생 따위를 따져볼 것이다. 어떤 이는 서비스나 위생이 다 엉망이어도 ‘맛만 좋으면 그만이다’라는 입장이겠지만, 나는 모든 조건 앞에다 ‘친절’을 깃발처럼 걸어놓는다. 종업원(또는 사장)에게 뭘 주문하면 대꾸도 하지 않거나, 음식을 상에 부려놓고 그냥 쌩 하니 자기 자리(대개 TV를 보기 위해)로 돌아가버리는 식당에 호감을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식당이 몇 군데나 되겠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내게는 그런 ‘몇 군데’가 자주 걸려서 힘들다. 그 말은, 그렇지 않은 식당을 만날 때 그만큼 즐거워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실패하기 쉬운 위험 지역’으로 손꼽고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오랜만에 오아시스를 만나 갈증을 풀었다.

‘요즘처럼 각박한 시기에 어찌 곱빼기 값을 받겠습니까?’

버스에서 내려 사우나를 하러 가는 길에 눈에 띈 입간판에 쓰인 글이다. 주머니에서 다들 찬 바람이 부니까 양이나 조금 더 주면서 손님 낚시하는 거겠지 싶어 몇 번은 그냥 지나쳤다. 입간판의 다음 구절은 이랬다. ‘양 많이~ 외쳐주세요! 빵빵하게 드시고 꿈을 향해 힘차게 뛰십시오.’ 예쁜 아가씨가 두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일러스트레이션까지 곁들였다.

멸치국수 잘하는 집이라고 써놓았는데 나를 식당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고기국수’였다. 제주도 고기국수가 설마? 하고 들어갔다. 역시 삶은 돼지고기가 듬뿍 올라가는 제주 스타일은 아니었다. 냉면에 불고기(또는 갈비살)가 함께 나오는 요리법에 냉면 대신 국수를 집어넣고 거기다 비빔국수 양념을 듬뿍 넣어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맛, 친절, 위생, 가격 모두 합격이다. 고기가 충분히 많이 들어가서 조금 미안해지기까지 한 그 고기비빔국수는 가격이 6000원이었다. 주꾸미덮밥도 6000원, 그냥 멸치국수 4000원, 제육덮밥 5000원….

나는 두 번째 들렀을 때 주꾸미덮밥을 먹었는데, “양 많이~”라고 소리치지 않았는데도 곱빼기가 나왔다. 나는 왜 시키지도 않은 곱빼기를 주느냐고 탓하지 않았다. 아마도 온통 백발의 늙은이(올해 들어서야 겨우 지하철을 공짜로 타게 되었지만 흰머리를 어쩌란 말인가)가 촬영장비가 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들어오니까 불쌍해서 곱빼기로 차려주었나 보다 생각했다. 고기국수에 고기가 너무 많았던 것처럼 주꾸미덮밥에도 주꾸미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 있어서 남기지 않으려 애썼다. 카드 대신 현금을 내면서 모자와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총각에게 슬쩍 물었다. 왜 곱빼기로 내주셨냐고.

“어르신, 아닙니다. 그게 보통이예요.”

그럼 그보다 양이 더 많은 곱빼기는 누가 먹는가? 학생들, 막일 하다 들어온 노무자들이 그 곱빼기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고 했다.

학생과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우리 동네 국수집’ 사장님과 종업원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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