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SOS 김현수가 간다!

[음식과 사람 2016-9 P.68 Consulting]

▲ 사진 = Pixabay

사업을 하다 보면 뭔가에 씌거나 홀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평소엔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어느 순간 미혹에 빠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뜻밖의 의사결정에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하지만 정작 본인은 인식하지 못한다.

경기 양주시 송추에 있는 ‘매성옥’ 김진호(64) 대표는 평생 의류사업으로 기반을 착실히 다졌다. 사업 정리 후, 몇 년 쉬다가 인생 2모작 모종으로 택한 것이 외식업이었다. 출발은 좋았다. 그런데 지인의 성공에 고무돼 같은 아이템에 뛰어들었다가 어려움에 빠졌다. 평소 <음식과 사람>의 이 코너를 눈여겨봤던 그는 김현수 외식콘셉트기획자(월간외식경영 대표, 이하 김 기획자)에게 도움을 요청해 수렁 탈출의 계기를 마련했다.

 

consulting 김현수 editor 이정훈 <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Why] 지인의 대박 장어집 보고 이성 마비

지천명을 훌쩍 넘어선 어정쩡한 나이에 사업을 접고 2년 남짓 놀자 차츰 무력감이 찾아왔다. 무항산이면 무항심! 평생을 빠른 템포로 살다 일정한 일이 없으니 감각은 떨어지고 마음도 불안했다. 돈도 돈이지만 점차 퇴보하는 듯한 자신을 추스르고자 김 대표는 2009년 서울 서오릉 입구에 ‘서오릉한식부페’를 차렸다.

외식업은 처음이었지만 익숙한 경영 노하우를 식당 운영에 적용하자 뷔페식당은 금방 자리가 잡혔다. 50~100가지 메뉴에 대한 레시피를 표준화하고 노동 강도가 높은 일은 기계화했다. 1인분 7000원에 조미료를 최소화한 홈메이드 느낌의 음식은 고객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몇 년 동안 식당 운영은 안정적이었다. 그렇지만 재료비 원가가 높고 수익은 낮았다. 김 대표는 추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한식뷔페를 하나 더 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2015년 10월, 당초 한식뷔페 2호점을 열려던 계획을 갑자기 취소하고 경기 송추에 계획에 없던 장어 전문점을 열었다. 가까운 지인이 장어 전문점을 운영해 큰 성공을 거뒀는데, 연매출이 무려 30억 원대에 달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김 대표는 가슴이 뛰었다. 장어 전문점을 열면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평생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데다 외식업 경험도 충분히 쌓은 자신이야말로 장어 전문점 운영하기에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그간 개점을 염두에 뒀던 한식뷔페는 성에 차지 않았다.

 

[Problem] 안 좋은 때, 안 좋은 자리, 안 어울리는 메뉴

서둘러 개점했지만 기대와 달리 대박은 없었다. 10월은 장어철이 끝나고 비수기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우선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입지였다. 당초 김 대표가 이 점포를 선택한 것은 공교롭게도 ‘좋은 입지’였다. 대로변에 위치했다는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다. 의정부와 고양시를 연결하는 ‘호국로’는 널찍한 도로다. 그런 도로변에 주차공간까지 충분하니 손님은 얼마든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자세히 살펴보면 장어 전문점 입지로서는 ‘나쁜 입지’였다. 활처럼 굽은 도로의 꼭짓점에 점포가 있고, 점포는 산과 이웃 점포들로 둘러싸여 있다. 차량을 몰고 가는 운전자 입장에서는 장어집이 아주 잠깐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진다. 장어집의 존재를 인식하고 장어를 먹고 싶다는 충동이 촉발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이른바 ‘흐르는 입지’였던 것이다. 바로 건너편에 유명 대형 갈빗집이 있는 것도 불리한 점이었다. 주 메뉴는 달랐지만 규모와 명성에서 워낙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집이어서 블랙홀처럼 외지 손님들을 빨아들였다.

겨울은 혹독했다. 손님은 오지 않았고 임대료와 공과금을 내는 날짜는 꼬박꼬박 찾아왔다. 봄이 오자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 했다. 문을 닫을 것인지, 영업을 지속할 것인지.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주최한 2016년 1차 ‘불황 극복 컨설팅 세미나’에 강사로 나온 김 기획자를 만나 상담을 요청했다. 서오릉 뷔페식당 옆 망해가던 갈빗집이 김 기획자의 노력으로 회생하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봤던 터라 더욱 기대가 컸다.

▲ 사진 = Pixabay

[Solution] 남이 장에 간다고 따라 가는 건 금물

김 기획자가 점포를 점검해보니 김 대표의 말대로 입지가 큰 문제였다. 대로변 입지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장어는 단가가 높고 반복구매율이 낮은 메뉴다. 그냥 지나가다가 눈에 띄면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먹는 음식이 아니다. 몇 번 생각해보고 가격도 비교해봐서 맘에 드는 집을 선택해 찾아가는 메뉴인 것이다. 장어집으로는 ‘별로’인 현재의 상권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메뉴 콘셉트를 장착하는 게 급선무였다.

기존 메뉴 콘셉트는 ‘장어+막국수’의 조합이었다. 성공했던 지인의 장어집 메뉴를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 메뉴 조합 자체가 언밸런스였고 막국수의 질이 낮았다. 맛이 부족했고 담는 그릇도 막국수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긍정적 요소도 없지 않았다. 업주의 관리 능력과 식당의 기본인 찬류 수준은 뛰어난 편이었다.

메뉴 콘셉트부터 전환했다. ‘장어+저급 막국수’에서 ‘흑돼지삼겹살+고급 막국수’로 업소 성격을 바꿨다. 장어 대신 흑돼지삼겹살로 주장 선수를 교체한 것이다. 현 위치가 장어집 입지로는 나쁜 조건이지만 삼겹살집 입지로는 좋은 위치다.

삼겹살 관리와 굽는 법, 세팅하는 법 등을 교육했다. 아울러 막국수의 메밀 함량을 100%로 높이고 조리 전문가를 투입해 제대로 된 막국수 조리법을 전수시켰다. 마침 기존의 장어 굽는 장비를 재활용할 수 있어서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이 장비는 화력이 무척 센데 고깃집에서 높은 화력을 내는 장비를 보유한 것은 매우 든든한 무기가 된다. 김 기획자는 생각 없이 따라 하는 창업은 필패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남이 장에 간다고 따라서 가는 건 금물입니다. 다른 집의 성공 아이템을 별다른 전략이나 준비도 없이 그대로 따라 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를 종종 목격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비율은 20%도 채 안 됩니다. 짬뽕 전문점 창업을 염두에 뒀던 어느 내담자에게 막국수집을 추천해준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소식을 들으니, 거액을 투자해 주꾸미 전문점을 차려 무척 고전 중이라고 하더군요. 주꾸미로 성공한 주변 사람을 보고 따라서 창업했다고 합니다. 남과 나는 처한 상황도, 능력도, 목표도 다릅니다. 단순히 흉내 낸다고 성공할 수 없지요.”

 

[After] 막국수 인기에 힘입어 매출 상승세

주 메뉴를 바꾼 식당은 여름철 성수기를 맞아 주말에는 막국수를 200그릇 이상 판매한다. 매출은 과거보다 월 3000만~4000만 원 정도 증가했다.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김 대표는 적자의 늪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겨울철 메뉴 개발과 평일 매출 증대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지금은 삼겹살 가격이 최고치로 올라 수요가 위축된 상태다. 차츰 삼겹살 가격이 안정되면 매출에 더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기 북부지역은 막국수에 대한 선호도와 수요가 다른 곳에 비해 높은 지역이다. 향후 좀 더 알려지면 막국수의 추가적 매출 증가를 기대할 수도 있다.

김 대표는 외식 사업이 안정되면 평생 꿈꿔왔던 마음의 빚을 청산할 계획이다. 충남 온양중학교 까까머리 시절, 그는 7년 선배인 현종구 씨가 지급하는 장학금을 받았다. 당시 월남 파병용사였던 현 씨는 자신의 생명과 맞바꾼 월급을 고향 후배 12명에게 장학금으로 내놨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학업을 지속하기 힘들었던 김 대표에게는 그 장학금이 단비였다.

그때의 고마움을 백골난망 간직했던 김 대표는 언젠가는 다른 이들에게 이 빚을 갚겠다고 속으로 다짐해왔다. 그 방안으로 향후 ‘서오릉한식부페’를 차츰 사회적 기업으로 키워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자립의 꿈을 심어줄 계획임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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