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도, 상인도 같이 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이제 그만!

[음식과 사람 2016-9 P.28 Hot Issue]

 

‘젠트리피케이션’이 서울 인기 상권들을 차례로 망가뜨리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관련법인 ‘자율상권법’ 제정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고, 각 지자체들도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는 것. 젠트리피케이션의 심각한 폐해와 해결 방안을 모색해본다.

▲ YTN 뉴스 캡쳐

 

editor 정성민

 

#사례 1

서울 홍대 앞 골목에서 맥주집을 운영하던 A 씨는 점포 임대인으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A 씨의 가게에 단골손님이 늘어나면서 안정적으로 영업이 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대인이 갑자기 월세를 40%가량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형편이 안 됐던 A 씨는 눈물을 머금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A 씨의 전언에 따르면 그 주변에서 장사하던 다른 집들도 결국에는 그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A 씨는 “그 자리들은 지금도 비어 있다”면서 “결국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들 정도만 남은 동네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사례 2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오랫동안 한식당을 운영했던 B 씨도 비슷한 경우다. 현재 B 씨는 영등포구 당산동으로 가게를 옮긴 상태인데, 어렵게 확보한 오랜 단골들을 포기하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온 까닭은 임대료 상승 때문이다. 홍대 상권이 각광받으면서 주변 지역까지 ‘뜨는 동네’가 되자 건물주가 3배 이상의 임대료 인상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

이런 경우는 비단 A 씨나 B 씨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서울의 서촌, 홍대 앞, 상수동, 이태원 경리단길, 삼청동, 압구정동, 신사동 가로수길, 이대 앞, 북촌, 연남동, 성수동 등 소위 ‘뜨는 상권’에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부동산114가 공개한 월세 변동 추이(매년 2분기 기준)에 따르면 이태원은 3.3m²당 2014년 9만4380원에서 2015년 16만380원으로 월세가 급등했다. 성수동1가의 경우는 2014년 6만7320원에서 2015년 10만5270원으로 상승했다.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문화예술가와 개성 넘치는 상점들로 인기를 끌었던 홍대 상권이다. 예술적이고 특색 있는 상점들로 가득했던 이곳은 그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현재는 대형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점령해 초창기 홍대 특유의 분위기는 사라진 상태다.

이대 앞도 비슷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패션과 미용에 관심 많은 젊은 여성들이 즐겨 찾던 곳인데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면서 개성을 잃었고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결국 화려했던 이대 앞 상권도 황폐화됐다. 과거의 영광이 무색할 정도로 썰렁해진 거리를 보면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를 실감하게 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림으로써 결국 거위도, 거위가 낳던 황금알도 잃게 된 것이다.

▲ SBS 뉴스 캡쳐

 

정부와 지자체, 지속가능한 도시 재생 위한 노력 시작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지자체들이 앞장서서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면서 문화예술가들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성동구다. 성동구(구청장 정원오)는 성수동 일대에 젠트리피케이션 조짐이 감지되자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성동구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지역공동체 상호 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건물주와 임차인, 성동구가 상생을 약속하는 자율협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성동구에서 시작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활동은 다른 지자체들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전국 지자체들이 모여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와 지속가능한 도시 재생’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포럼을 개최했다.

MOU 체결에는 서울시 자치구 21개 및 부산 · 대구 · 인천 · 광주광역시와 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등 전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직면해 있는 37개의 지방자치단체가 대거 참여해 젠트리피케이션이 더 이상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과 사회 전반의 관심이 필요한 현상임을 증명했다.

서울시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상생협약을 체결하면 상가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해주는 총 9억 원 규모의 ‘장기안심상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지난 6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최고 9%로 규정하고 있는 임대료 상한선을 전국 소비자물가 변동률의 2배 안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이 고시하는 비율을 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고무적인 것은 정부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2016년 하반기 경제정책을 발표하면서 임대료가 큰 폭으로 오른 상권에 한해 건물주와 상인이 자율협약을 통해 임대료가 과도하게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자율상권법’ 제정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지만, 이번에는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율상권법은 법으로 자율상권을 정한 뒤 이 지역의 과도한 임대료 상승을 건물주와 상인의 자율협약을 통해 막고 상가임대차 계약갱신 요구권 행사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유사한 현상을 겪었던 해외 도시들의 해결책도 참고해볼 만하다. 성동구 지속발전과의 조사에 따르면 파리에서는 시 예산으로 임대 공간을 매입해 도심에서 내몰리는 영세업자들에게 빌려주는 일명 ‘동네 살리기’ 작전 정책으로 다양한 지역밀착형 골목가게들이 만들어져 상권이 살아났다고 한다. 뉴욕시는 지나치게 임대료가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임대료가이드라인위원회를 구성해 임대료 상한을 정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에 힘쓰고 있다.

정부를 비롯한 각계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는 현재, 지역 상권을 위협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우리 사회에서 하루빨리 퇴출될 수 있도록 국민들의 관심이 더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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