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10월호

[음식과 사람 2016-10 P.52 Food  Essay]

 

제주도는 이제 뭘 먹으러 가는 관광지가 되었다. 생선회와 흑돼지오겹살은 기본이고, 해안선이나 올레길을 따라 소문 난 커피집들이 징검다리처럼 이어져 있다. “바닷가에 데려다 달라는 손님은 없어요. 휴대폰 보여주면서 ‘여기 이 커피집 갑시다’ 이러지요.”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는 제주도의 옛 정취가 커피나 햄버거 따위에 밀려났다며 섭섭해했다. 이런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육지 분들이 쉽사리 수저를 갖다 대지 않는 음식 몇 가지가 있다. 마치 전라도 음식을 예찬하면서도 홍어만은 사양하겠노라고 뒷걸음치듯이. 홍어만큼은 아니더라도 ‘자리물회’, 이거 만만치 않다.

“뭔 소리냐, 난 제주도 갈 때마다 자리돔물회를 먹는다”고 말하는 분들도 오리지널 제주 스타일 자리물회는 벅찰 것이다. 억센 가시 발라내지 않고 된장 베이스로 내놓으면 좀 힘드실 것이다. 요즘은 서울(육지) 손님들 입맛을 존중해서 가시는 많이 발라내고 된장 대신 고추장과 고춧가루 베이스로 양념하니까 그나마 자리물회 팬이 계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갈치국’도 그렇다. 맛들이신 분은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국으로 갈치국만 한 게 없다고 하지만 ‘비릴 것이다’라는 선입견 때문에 주춤주춤… 소수의 마니아만 그 맛을 즐기고 있다.

나는 ‘보말죽’을 좋아하는데 보말 개체수가 줄어들고 잡기가 어렵다면서 내놓는 식당이 드물어 제주도 출장이 허전해질 때가 있다.

보말은 밤고둥과에 속한 연체동물로 바닷가 바위에 붙어 산다. 6·25전쟁 때 제주도로 피난 간 사람들은 이걸 뜯어서 죽을 끓여 먹었다. 요즘은 수경 쓰고 ‘쪼매 깊은 데’ 가서 자맥질해야 쓸 만한 놈을 잡는다. 삶아서 살만 뽑아낸 다음 참기름에 달달 볶는다. 내장은 물에 담가둔 채 잠시 놔두었다가 모래가 가라앉으면 그 물을 따로 받아둔다. 불린 쌀이나 찬밥을 참기름과 함께 볶다가 보말을 집어넣고 내장과 내장 물을 붓는다. 다 끓으면 소금을 가미한다(밥을 보말과 함께 볶기도 한다).

시간 많이 걸린다. 보말죽 처음부터 촬영하자고 하면 주방에서 볼멘소리 터져 나온다. 그래도 어쩌랴, 보말 잡는 장면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영상 조리 과정인 것을. 어쨌든 제주 사람들은 전복죽보다 보말죽을 더 좋아하고, 나 또한 그렇다.

일본 오사카에 가면 쓰루하시 국제시장 근처에 숙소를 잡는다. 재일한국인 100년사가 골목골목 스며들어 있는 곳, 특히나 또 하나의 제주도가 살아 숨 쉬는 곳이기 때문이다.

1928년 제주~오사카 배편이 뚫리자 수많은 제주 사람들이 일본(오사카)으로 건너갔다. 밀항도 많이 했다. 4 · 3사건 전후로 대이주가 행해졌다. 그분들이 돼지를 키웠고, 일본인들은 먹지 않던 내장을 꼬치구이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은 것이 ‘호루몽야키’다.

쓰루하시 철교 아래는 매일 밤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로 자욱하다. 이곳을 벗어나 한참 걸어가면 ‘아즈마’라는 식당이 있다. 제주도에서도 맛보기 쉽지 않은 보말죽을 이곳에서 먹었다. 할머니에 가까운 제주도 아즈망(아줌마)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떻게 이곳에서 보말죽을 내놓을 수 있느냐고. 예상대로였다.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보따리상 등짐에 실어온다고 했다.

제주 본토에서도 구하기 힘들고 조리시간이 많이 걸려 제주도에서도 먹기 힘든데, 쓰루하시 국제시장까지 그 힘든 음식을 옮겨놓은 그 아즈망에게서 제주 여인네의 무시무시한 정체성을 똑똑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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