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10월호

[음식과 사람 2016-10 P.57 The Kitchen]

 

▲ 이미지 = Pixabay

editor 윤숙자 한식재단이사장,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

 

소슬한 바람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면 지난여름의 유례없는 무더위를 견디기는 어려웠을 듯싶다. 비록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혹독한 폭염이었지만, 이 또한 어김없이 찾아온 가을 앞에 머리를 숙였다. 자연은 늘 그렇게 본연의 자리를 오가며 세상의 풍진(風塵)을 잠재우는 듯하다.

이번 한가위 명절이 유독 반갑고 귀하게 여겨졌던 것도 이런 자연의 이치 앞에 더욱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바로 기다림이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세상의 이치나 우리의 삶도 같은 의미에서 기다림의 연속인 듯하다. 이 기다림은 외식업 경영자들이 지녀야 할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재료가 음식이 되기를 기다려야 하고, 문을 열고 들어설 손님을 기다려야 한다.

맛있게 먹어주길 기다려야 하고, ‘잘 먹었다’는 고마운 인사를 기다려야 한다. 그들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면서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또 다른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에는 사소한 것에 마음을 빼앗길 겨를이 없다. 그러니 기다림은 지루함을 이기는 묘약인 셈이다.

기다림은 견디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들 ‘밥장사’라는 편견과 홀대를 이기며 세월을 견딘 것은, 보람을 만들고 자부심을 갖기 위한 과정의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자연의 섭리가 풍진을 다스리듯, 외식업 경영자들은 기다림을 통해 세상의 편견을 다스려온 것이다.

이처럼 외식업 경영은 시장 환경의 변화를 견디는 어려움만큼이나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스스로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렵고도 고된 길이다. 그렇잖아도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영세 자영업의 경우, 하루하루 견디고 이겨내는 것이 어쩌면 전쟁과도 같을 것이다.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는 동종업체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고, 하루가 멀다 하고 널뛰기 하는 식재료비 때문에 내일을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안타까운 것은, 이 가중된 고통이 세월을 감내하는 기다림조차 무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지금 외식업계의 환경은 최악이다. 여러 지표가 이를 대변하고 있는데, 어느덧 우리나라 외식업체 수는 65만여 개에 달하고, 인구 80명당 한 개꼴로 골목 구석구석을 잠식하고 있다. 문을 나서면 식당이고, 식당 옆집이 또 식당이다. 그들은 서로 이웃이면서도 경쟁자다. 그들이 처한 환경은 같은 손님을 두고 보이지 않는 다툼을 벌여야 하는 소리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200만 종사자가 움직이는 대표적인 서비스 업종이면서도 취업자들 사이에서는 기피업종으로 분류돼 업체마다 구인난에 허덕이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서비스업종 전체 이직률이 4%인 데 비해 외식업종 이직률은 9%라는 통계가 이를 잘 말해준다.

더욱이 65만 외식업체 중 50%에 달하는 한식당의 연 평균 매출이 겨우 1억2000만 원이니, 월 매출 1000만 원 남짓에 40%를 넘는 식재료비와 2, 3명의 인건비를 포함한 부대비용을 제하고 나면 사장인 자영업자에게는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세월을 견디는 보람치고는 난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외식업 경영자들은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노정 (路程)된 길 위에서 견디고 감내해온 세월이 눈앞의 어려움에 무너질 정도로 허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난 많은 외식업 경영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오랜 기다림이 승리를 가져다줬다고들 얘기한다. 그래서 남부럽지 않다고들 말한다. 그러니 그들을 이토록 강인하게 만든 것도 그들 스스로 키운 기다림 덕분이 아닐까 하는 확신을 갖게 된다.

사회적 편견, 열악한 환경, 낮은 자존감을 이겨낸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이 새삼 값지게 느껴지는 10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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