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11월호

[음식과 사람 2016-11 P.57 The Kitchen]

 

editor 윤숙자 한식재단 이사장, 한국전통음식소장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결실은 분명 보람이자 기쁨이다. 또 한편으로 결실은 결이 곱게 쌓인 찬란한 슬픔일 수도 있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미미하거나 손에 잡힐 만한 현실적인 보람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흘린 땀방울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땀의 연흔이 쌓이고 쌓여 고귀한 성공을 일구는 발판이 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런 진실이 삶의 방식이 되어 우리 인생을 키워온 것이 아닐까.

그래도 손에 쥔 성적표가 너무 초라한 까닭에, 대부분의 외식업 경영자들은 한 해의 결실을 바라보는 이 가을이 그리 반가울 것 같지 않다. 업계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그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외식업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큰 낭패를 보고 말았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외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도리 없이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비슷한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땀은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며 용기를 북돋우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위로가 될지도 의문이다. 이토록 안타까운 일들로 외식업계는 큰 시름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려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 듯하다. 일명 ‘김영란법’으로 일컬어지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아무 해당 사항이 없거나 적용 대상이 아닌 경우까지도 저마다 기발한 사례를 가정해서 법 저촉 여부를 진단하기 바쁘다.

단기적인 현상이라고 예단할 수도 있지만, 직격탄을 맞은 외식업계 전체가 ‘멘붕’ 상태라고 한다. 일정 부분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고급 식당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친구, 동료들이 삼삼오오 정담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던 작은 식당들도 그 파장이 심각하다고 하니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김영란법’은 분명 외식문화를 위축시키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음식과 외식문화가 주는 본질적 따뜻함에 타격을 입힐 만한 규제는 더더욱 아니다. 음식이 매개가 되어 대화가 이루어지고 가족, 동료, 지인들 간의 두터운 정이 오가는 아름다운 생활문화에 국가가 개입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청탁과 만연한 접대문화를 근절하겠다는 의도일 뿐인데, 이해 부족과 지나친 위축감으로 혼란을 자초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 회원업소들도 그 피해의 중심에 있을 텐데, 하루빨리 이런 혼란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 법이 제대로 뿌리내려 사회가 좀 더 건강해질 수 있다면 외식문화는 지금보다 더욱 건강하고 건전한 생활문화로 자리 잡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변한다 해도 음식이 지닌 고유의 가치는 바뀔 수 없다. 음식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지키고 가꿀 수 있게 하며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근원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 음식의 가치를 실현해가는 외식업 경영인들이 이번 ‘김영란법’과 같은 사회 공동의 선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함께 승리자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외식업으로 성공한 경영자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오뚝이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위기와 현실적 어려움을 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으로 딛고 일어선 분들이다. 음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외식업의 매력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자부심은 수많은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어 또 다른 오뚝이 인생을 살아가게 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 가을과 올해의 결실을 허허롭게 느끼기보다 인생 전체의 결실에 주목하는 외식업 경영자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에게 오뚝이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다.

▲ 이미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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