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11월호

[음식과 사람 2016-11 P.52 Food  Essay]

 

editor 윤동혁

 

5년 가까이 깜깜무소식이었던 S와 마주 앉아 삼계탕을 먹었다. 식당 TV의 가요 전문 채널에서는 남진의 ‘별아 내 가슴에’가 흘러 나왔다. 내 가슴도 두근거렸다. 드디어 그날이 왔는가.

S는 방송계의 ‘을’인 외주 제작자 중 한 사람. 바로 나의 눈물과 피로 얼룩진 제작비 3800만 원을 들고 튀었다. 나의 피해 사례는 이 한 건만이 아니지만, 그가 조카처럼 아꼈던 20년지기 방송 후배여서 가슴앓이가 제법 심했었다.

S가 내 앞에 앉아 있다. 물론 그는 빚을 갚을 처지가 아니다. 내년부터 매달 (최대) 30만 원씩 갚아가겠노라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충분히 물렁물렁해졌다. 그는 외주 조명 일을 하다가 20년 인맥을 등에 업고 방송국 앞에 식당을 차렸다. 새벽 3시면 노량진 수산시장을 돌며 고등어며 동태를 골랐다. 그 집 고갈비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자 방송국 회장님까지 S의 (누추한) 식당을 찾았다.

함께 야외 촬영을 하며 전우애를 다졌던 카메라맨들이 패거리로 들이닥쳤고, 잘생긴 데다 유머 감각도 만만찮은지라 단골 작가들(물론 모두 여성이다)이 새벽부터 진을 치는 형상이었다.

그런데 항상 요 지점에서 탈이 난다. 가게 넓힌다고 은행 돈을 대출받으면서 나의 주머니도 털린 것이다. 바로 그때! 규모 8.5의 IMF 사태가 터졌다. S도 힘들었겠지만 빚쟁이 처지에서도 그에게 통장을 몽땅 털어준 나는 기가 막혔다. 아침 생방송을 할 때 모니터 화면이 뿌옇게 보였고, 내레이션이 그림을 따라가지 못해 혀가 많이 꼬였다.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S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다. S는 삼계탕에 인삼과 대추가 많이 들어 있다고 좋아했다. 나는 예전처럼 그 앞에서 무장해제를 당해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이것저것 물었다.

“장사할 때 어떤 손님이 제일 싫고 괘씸하던?”

식당 운영하시는 분들의 열화 같은 공감을 기대하며 그의 말을 가지 치지 않고 옮겨보기로 한다.

오피스텔 지하 식당이라 점심때도 단체 손님이 온다. 낮 12시까지는 꼭 와주십사 신신당부해도 회의가 늦어졌다면서 12시 반에 온다. 30분 동안 10석에서 많게는 20석이 그냥 논다. 여의도 식당가는 점심시간(낮 12시~오후 1시)에 그날 수입 70% 이상을 버는 곳이다. 예약석은 비어 있는데도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리는 손님들을 보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오른 유황불이 입 밖으로 뿜어져 나오지만 불쾌한 내색을 하면 안 된다.

“좀 늦으셨네요”라고 은근하게 피해를 호소하면 “음, 회의가 길어졌네” 하며 조금도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다. 그런데 이보다 더 열통 터지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식사 끝나면 더치페이(각자내기)로 현금을 거두는데 이때 문제의 ‘손님’이 두각을 나타낸다.

“내가 계산할게.” 그는 현금을 자기 주머니에 쑤셔 넣는 대신 신용카드를 꺼낸다. 그래도 웃으면서 결제를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어쩌면 번번이 식사 다 끝난 후에야 그게 발견되는지 모르겠어요.”

S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깔끔한 차림새의 노신사다. 부추막장찌개를 먹었을 때도, 청국장을 시켰을 때도 식사 다 끝낸 그릇 맨 아래쪽에서 ‘그것’을 발견했다고 점잖게 말한다. 머리카락이다.

이렇게 되면 밥값 못 받는다. 막장찌개와 청국장 사이에는 두 달 이상 시간차가 있었다. 그런데 그 지하 식당가의 열 곳이 넘는 음식점이 모두 딱 두 번씩 그 일을 겪었다고 한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모두 노신사의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

S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비화를 얘기해주겠다며 소주잔을 비웠고, 나는 찌라시 뒷면에 그의 이야기를 신나게 적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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