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육회골목’의 대표 주자 ‘창신육회’ 이인자 대표

[음식과 사람 2016-11 P.76 Real Interview]

 

맛의 천국으로 이름난 광장시장에서도 육회는 첫째로 꼽히는 음식이다. 종로4가의 우정약국과 우리약국 사이 골목길은 빼곡하게 들어선 육회 식당들로 장관을 이룬다. 이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 창신육회다.

 

editor 강보라

 

육회는 본래 전통시장과 어울리는 메뉴가 아니다. 한우 전문점이나 값비싼 한정식집에서 만날 수 있는 고급 음식이다. 그런데 광장시장만 가면 이런 상식이 뒤집어진다. 광장시장의 육회골목에서는 1만2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200g을 꽉 채운 푸짐한 육회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 때문에 평일 저녁에도 육회를 안주 삼아 술 한잔 걸치려는 손님들로 가득하고,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일도 다반사다. 청계천 복원과 함께 시작된 육회골목의 전성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인식돼 육회 인증 샷을 찍는 외국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사진 = Pixabay

 

칼끝에서 완성되는 0.2mm의 섬세하고 차진 맛

창신육회(대표 이인자)는 고수들이 즐비한 육회골목에서도 손꼽히는 집이다. 그나마 시간을 낼 수 있다는 오전 10시에 맞춰 취재를 갔지만 손님들이 밀고 들어왔다. 주문을 받자마자 능숙하게 고기를 손질하는 이 대표의 뒤를 따라다니며 인터뷰를 했다.

쟁반 가득 쌓인 앞다리살과 꾸리살은 한눈에도 신선해 보였다. 창신육회에서 사용하는 소고기는 영상 4~5℃에서 하루 동안 숙성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하면 고기가 부드러우면서도 차진 맛을 간직한다.

“육회는 국수 가닥처럼 얇게 써는 게 비결이에요. 마구잡이로 자르는 것처럼 보여도 억센 부위는 결 반대 방향으로, 부드러운 부위는 결대로 잘라야 부드럽고 쫄깃한 육질을 살릴 수 있어요.”

이 대표는 소의 힘줄을 섬세하게 발라내며 가장 부드러운 부위를 육사시미로 선별하고, 육회는 가늘게 채 썰었다. 여기에 소고기 무국에 사용할 자투리 고기까지 두루 챙겼다. 창신육회에서는 하루에 140kg의 소고기를 들여오는데, 냉장육만 사용하기 때문에 모든 메뉴는 100% 수작업으로 완성된다.

0.2mm 정도로 얇게 채 썬 육회 한 접시에는 일흔 번이 넘는 칼질이 들어간다. 신선한 소고기에 칼 맛과 손맛이 어우러져야 손님상에 나갈 수 있는 육회 한 접시가 탄생한다. 이인자 대표는 맛에 대한 설명 대신 “일단 한번 드셔보시라”고 말했다.

하얀 배가 넉넉히 깔린 접시에 얇게 채 썬 소고기를 올리고 달걀노른자를 고명으로 얹은 육회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화려한 장식은 없어도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차림새였다. 노른자를 터뜨려 육회와 배를 함께 버무렸다.

한 젓가락 베어 물자 쫀득한 식감과 진한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씹을수록 쫄깃함이 느껴지다가 금세 목 뒤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고기 좀 먹는다는 사람들이 와도 고개를 끄덕일 맛이다. 이렇게 짱짱한 맛을 단돈 1만2000원에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 가격대에 이 정도 품질의 육회를 어디서 만나랴!

“가격 경쟁력의 비결은 국내산 육우 사용과 박리다매라고 할 수 있어요. 많이 팔아야 남거든요. 사실 이것도 광장시장 육회골목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죠.”

생고기로 섭취하는 육회의 생명은 신선함이다. 그렇기에 육회 식당 가게 주인들은 매일 새벽마다 국내산 소고기를 직접 구매한다. 다른 곳에 비해 광장시장의 육회가 입안에서 더욱 부드럽게 녹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함께할 때 시너지가 난다는 사실은 육회골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맛을 지키는 최고 비결은 ‘우직함’

2대째 내려오는 창신육회는 광장시장에서만 40여 년의 세월을 보냈고, 지금 자리에서는 10년째다. 유동인구가 많은 시장골목이지만 반 이상이 단골손님이다. 뜨내기손님이 단골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지만, 창신육회에서는 흔한 일이다. 비결을 물어도 이인자 대표는 “성심성의껏 할 뿐”이라며 겸손해한다.

0년째 단골이라는 유선진 씨는 “변하지 않는 맛”을 장점으로 꼽았다. 어떤 시간, 어느 계절에 가도 한결같은 맛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요동치는 물가와 불안정한 식자재 수급 환경을 감안하면 한결같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인자 대표는 여러 변수에도 우직함 하나로 밀어붙였다. 육회에 깔린 배를 보며 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여름이 궁금해졌다. 걱정스러운 질문에 이 대표는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저희는 언제나 특상품 배를 구입해요. 그러니까 여름에는 손해를 감수하고 쓰죠. 양을 줄이냐고요? 아니요. 설령 밑지더라도 원래 그대로 나가야죠. 손님들이 떠올리는 육회와 실제 나가는 육회의 그림이 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저희를 찾아주신 손님들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이에요.”

이인자 대표는 뭐든 대충하는 법이 없다. 수만 번의 칼질이 소요되는 육회 손질에도 몸을 사리지 않아 오른쪽 어깨가 시원치 않다. 출근하기 전에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번갈아가며 다닐 정도다. 이쯤 되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법도 한데 그녀 스스로는 육회가 준 훈장이라며 사람 좋게 웃는다. 그런데 이렇게 부드러운 사람도 고기 앞에만 서면 매서운 눈매가 된다.

음식을 파는 주인의 눈매라기보다 음식을 사먹는 손님의 눈매에 가깝다. 생간을 손질할 때도 맛을 해칠 만한 부위는 과감하게 잘라낸다. 신선하고 부드러운 부위만 사용하기 때문에 간의 3분의 1 정도만 사용하는 철칙을 지킨다. 손질이 어려운 천엽도 다른 꼼수 없이 밀가루를 이용해 깨끗이 세척한다. 이인자 대표의 비법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바른 길을 걷는 식당 주인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여기에 훈훈한 인심까지 더해졌다.

“고기값이 많이 올라서 육회 가격을 1만5000원으로 올리려고 했어요. 근데 경기도 안 좋은데,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1만2000원으로 동결했어요.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인자 대표의 진심은 서비스로 제공되는 소고기 무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본으로 세팅되는 소고기 무국은 깊고 진한 육수에 실한 고깃덩이들로 가득했다. 원가에 대한 고민보다 맛에 대한 뚝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창신육회’…맛도 좋고 일본어도 통하고!

사람들은 대개 명성을 쌓기 전에는 모든 노력을 다하지만, 명성을 얻은 후에는 현실에 안주하거나 퇴보하는 경향이 있다. 창신육회의 가장 큰 장점은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효자 메뉴로 사랑받는 낙지탕탕이는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낙지탕탕이는 기본이 되는 육회에 잘게 썬 산 낙지와 쪽파, 청양고추를 얹어서 비벼먹는 것이다. 새로운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육회와 낙지의 조합은 탁월했고, 지금은 맛을 넘어 특별 보양식으로 손님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오랜 전통을 가진 식당에서는 새로운 메뉴 개발에 소극적이다.

기존 메뉴로도 충분하다는 안이한 생각과 새로운 메뉴에 대한 두려움이 빚어낸 결과다. 그런데 창신육회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육회와 낙지가 잘 어울린다는 손님들의 말에 과감히 시도했고, 지금은 효자 메뉴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인자 대표의 열성과 노력은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식당 운영에도 눈코 뜰 새 없는데 늘어나는 일본 고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일본어까지 배운 것이다.

“일본어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마흔 넘어서 뒤늦게 배웠어요. 나이 들어서 배우는 공부라 힘들었죠. 그래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니까 책상에 앉게 되더라고요.”

광장시장의 육회골목은 날고기를 즐기는 일본인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단체관광객뿐 아니라 개별적으로 자유여행을 오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반드시 들러야 할 코스로 알려졌다. 일본 매스컴에도 소개돼 평일에도 육회를 즐기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날도 20대 초반의 일본 여성 두 명이 창신육회를 방문했다. 이인자 대표는 능숙한 일본어로 손님을 맞이했고, 메뉴를 설명할 때도 막힘이 없었다. 그들에게 이곳을 어떻게 찾았느냐고 묻자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일본 현지에 소개된 창신육회의 기사가 있었다. ‘꼭 방문해야 할 서울 맛집’이라는 타이틀도 붙어 있었다. 직접 먹어본 소감이 궁금했다.

 

“육회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일본에서는 맛보기가 힘들어요. 아주 비싼 요릿집에 가야 맛볼 수 있는 메뉴인 데다 양이 너무 적어서 먹어볼 엄두가 나지 않거든요. 한국에서 직접 먹어보니 맛이 뛰어나고 가격도 저렴해 아주 마음에 듭니다.”(일본인 관광객1)

“저는 육회도 좋지만, 이 국물(소고기 무국)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일본에서는 추가 주문을 할 때마다 돈을 받는데, 여기서는 무료로 계속 주셔서 좀 놀랍기도 합니다.”(일본인 관광객2)

 

일본인 관광객과의 인터뷰는 이인자 대표의 통역으로 이뤄졌다. 일본인들이 남긴 후기에 “일본어가 통해서 편했다”는 댓글이 많았는데, 그들의 후기가 사실임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리는 또 다른 이유는 식용 생고기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개정된 기준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생고기 표면의 1㎝ 이상을 섭씨 60℃로 2분 이상 가열해야 한다. 그럴 경우 고기 양이 종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육회 관광을 나서는 일본인들의 수요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광장시장 육회골목 음식점들은 모두 명소예요. 맛은 기본이고, 저희의 특별한 장점이라면 서비스예요. 좋은 서비스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은 거라도 손님이 편안하고 좋았다고 느끼면 그게 좋은 서비스 아니겠어요? 일본어를 배운 것도 멀리서 찾아준 손님들이 조금이라도 편히 식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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