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 음식평론가의 음식점 벤치마킹 투어

[음식과 사람 2016-11 P.54 Benchmarking Tour]

 

editor ‧ photo 황광해

▲ 사진 = Pixabay

10월호에서 진주(晉州)비빔밥에 대해 이야기했다. 칼럼이 발표된 후, 반응이 참 재미있었다.

첫째, ‘비빔밥은 전주(全州)’라고 믿는 분들이 많았다. 소비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외식업체 사장님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다. 생산자는 늘 소비자보다 더 많이,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비빔밥은 전주도 아니고 진주도 아니다. 비빔밥의 시작도 사실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어느 순간 보니, 우리나라만 유독 비빔밥을 좋아하고 즐겨 먹더라는 사실이다. 비빔밥은 외식업체로서는 오랫동안 매출을 담보하는 최고의 음식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제일 좋은 비빔밥이 뭔가?’라는 질문이었다. 매출 신장에 도움이 될 비빔밥이 뭐냐는 질문이다. 진주비빔밥, 전주비빔밥 혹은 다른 어떤 비빔밥이 매출에 도움이 될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당황스럽다. 비빔밥은 그야말로 100명이 만들면 100개의 비빔밥이 만들어진다고 할 만큼 다양성을 지닌 음식이다. 어느 지역이라고 못 박을 필요는 없다.

전주비빔밥은 너무 널리 알려졌고 또 만들기 힘들다. 이미 전주에서 정형화되고 많은 스토리도 만들었다. 지자체도 후원하고 전주 지역의 외식업체들도 오랜 시간 노력했다. 따라 하기 힘들다. 전주비빔밥을 따라 하기보다는 ‘나만의 비빔밥’을 만드는 것이 낫다.

그리하여 이번 칼럼의 주제는 ‘다양한 비빔밥’이다. 각 지역의 비빔밥이 가진 장단점을 보여줄 것이다. ‘따라 하기’도 좋지만 이 자료들을 이용해 ‘나만의 비빔밥’을 만들면 좋겠다. 내 업체의 음식을 차별화하자. 차별화하기 가장 좋은 것이 바로 비빔밥이다.

대기업이 ‘한식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처음 내놓은 음식이 바로 비빔밥이다. 어느 정도 성공도 거두었다.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도 비빔밥 체인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문제점이 있다면 보완하면 될 일이다. 중요한 점은, 비빔밥은 열려 있다는 것이다.

사례를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나만의 비빔밥’을 만들자. 오주 이규경(1788~1856)은 대략 200여 년 전 사람이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젓갈비빔밥, 새우알비빔밥이 등장한다. 오늘날 날치 알을 넣은 회비빔밥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심지어 오이비빔밥도 등장한다.

비빔밥의 세계는 넓고 깊다. 고사리가 비싸다, 박나물을 만들기 번거롭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다. 오이나물도 좋고, 고사리나물도 좋고, 박나물도 좋다. 나만의 비빔밥을 만들면 그만이다.

 

///// ‘비빈 밥’과 ‘비빌 밥’ /////

익산 ‘황등비빔밥’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빔밥은 ‘비빈 밥’과 ‘비빌 밥’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비빈 밥’은 말 그대로 이미 비빈 밥이다. 손님이 먹기 전 이미 비벼서 나오는 밥이다. ‘비빌 밥’은 비빌 재료와 밥을 따로 준다. 손님이 열심히 비비면 된다.

전북 익산시 황등면의 황등비빔밥은 이미 ‘비빈 밥’ 형태다. 비벼져서 나오니 손님이 번거롭게 비빌 필요가 없다. ‘비빈 밥’은 외식업체로서는 몇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주방에서 밥을 비벼주니 인건비가 더 들 것이라는 추측은 틀렸다.

먼저 주방에서 비벼서 나오니, 오히려 홀의 회전이 빨라진다. 여러 사람의 식사를 한꺼번에 준비하니 주방이 오히려 편하다. 비빈 밥은 먹기만 하면 된다. 주방에서 미리 준비하면 오히려 회전율은 좋아진다. 미리 비벼서 나오면 후딱 먹고 일어선다.

황등시장의 황등비빔밥을 보면서 ‘왜 서울 등 대도시의 식당에서 저렇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의외로 손님들은 편하게 생각하고, 회전율도 좋아진다. 곱창 등을 넣은 국물과 더불어 밥을 비비니 맛도 한결 좋다. 어린 시절 비빔밥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반드시 한 사람쯤은 비빔밥을 잘 비비는 사람이 있었다.

특히 고추장을 넣고 슥슥 비벼낸 경우 늘 어머니, 할머니가 비비는 비빔밥은 유달리 맛있었다. 주방에서 적절한 준비를 하고 잘 비벼내면 손님은 비빔밥을 쉽게 먹을 수 있어서 좋고 외식업체는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한편으로는 회전율을 높일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시장비빔밥’에 가보기를 권한다. 인근의 ‘진미식당’ 등도 역시 ‘비빈 밥’이다. 황등비빔밥 중에는 ‘비빈 밥’이면서 철판에서 밥, 고명, 고추장 등을 뒤섞고 볶는 경우도 있다.

비비고 한편으로 볶으면 당연히 더 맛있다. 곡물을 태운 맛은 대단하다. 밥보다 누룽지가 맛있고, 누룽지탕은 더 맛있다. 비비고 볶으면 그야말로 외식업체로서는 천하무적이다. 무조건 맛있다. 꼭 살펴보고 따라 해볼 아이템이다.

 

///// 헛제사밥 비빔밥  ·  정통 비빔밥 /////

‘까치구멍집’과 ‘함양집’

 

비빔밥의 정통, 전통은 없다. 정통 혹은 전통이라고 내세우는 비빔밥은 대부분 헛제사밥에서 시작된다.

‘조선’은 유교 국가다. 유교 국가의 기본 덕목 중 하나는 ‘장유유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계급이 높고 나이가 많으면 더 좋다. 흔히 하는 말로 ‘갑’이다. 양반 집안의 연세 든 노인 혹은 이미 돌아가신 조상이면 최고의 자리다. 음식도 최고의 음식을 대접하기 마련이다. 제사상은 최고의 밥상이다.

제사를 모시고 나면 제삿밥을 나눠먹는다. 그중 나물을 모아서 넣고 밥을 비비면 바로 최고의 밥상에서 나오는 비빔밥이다. 나물 등 고명을 넣고 슥슥 비빈다. 간장 정도를 더한다. 큰 관아가 있었던 경남 진주가 비빔밥으로 유명한 이유다. 관아가 있으니 관리가 있고, 당연히 제사 등도 흔하다. 안동도 마찬가지다.

나물은 고사리나물, 시금치나물, 도라지나물, 무나물, 콩나물이 기본이다. 고사리가 비싸지만 어떻게든 마련한다. 여기에 몇몇 나물이 더해진다. 시금치가 맛없는 계절이면 푸른색 다른 채소를 사용한다. 무청 등을 사용하는 이유다.

경북 안동의 ‘까치구멍집’은 아예 헛제사밥이 메뉴다. 제사를 지낸 후 먹었던 비빔밥과 한편으로 제사상에 오르는 각종 해물, 전 등이 풍성하다. 이런 음식을 따라 하기는 힘들다. 손도 많이 가고 재료도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정통, 전통 비빔밥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나만의 비빔밥’을 만들어야 한다.

울산에는 얼추 100년 된 역사를 지닌 ‘함양집’이 있다. 경남 함양에서 온 조상들이 운영했던 집일 터이다. 함양은 범진주문화권이다. ‘함양집’ 비빔밥은 진주비빔밥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탕국이 특이하고 전복, 날쇠고기 등을 사용한다. 유기그릇을 사용하는 것도 이채롭다. 따라 하기 힘들다. 역시 잘 살펴보고 ‘나만의 비빔밥’을 만들 소재로 삼아야 한다.

 

///// 전통을 지키거나 변형하거나 /////

‘충무집’과 ‘황소한마리육개장’

 

따라 하기 힘들지만 반드시 봐야 할 음식은 서울 무교동(다동) ‘충무집’ 비빔밥이다. 기본적인 나물들에 박나물, 애호박나물, 그리고 몇몇 해조류를 더 사용한다. 10여 종류의 나물이다. 화려하다. 통영비빔밥인데, 쉬 따라 하기는 힘들다.

여러 종류의 나물 사용법을 잘 살펴본다. 기름에 볶는 나물과 뜨거운 물에 데친 다음 무치는 나물이 따로 나온다. 조개를 사용하는 것도 재미있다. 남해안 통영의 음식을 꿰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역시 ‘따라 하기’보다는 참고하는 것이 좋다.

경기 남양주시 별내의 ‘황소한마리육개장’은 육개장 전문점이면서 비빔밥을 내놓는다. 전통에 가까운 비빔밥이지만 외식업체가 따라 하기에는 좋은 모델이다. 나물을 5, 6가지 정도 내놓지만 변형이 가능하다. 이미 나물 종류도 변형돼 있다. 계절에 맞게 나물들을 선택한다. 외식업체에 맞는 형태로 잘 개조한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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