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스키야키, 김밥의 비극과 탄핵 드라마

[음식과 사람 2017-1 P.31 Uncut News]

 

대통령의 '혼밥'

 

Editor. 김홍국 정치평론가

 

온 나라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들썩이는 가운데 대통령은 탄핵당했고(물론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 있긴 하지만), 국정은 마비 상태다.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대통령과 청와대로부터 국정을 보고받고, 수석비서관회의를 열도록 지시하고,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는가 하면, 청와대의 경호와 의료 시스템 및 국정을 초토화한 이번 게이트는 ‘이게 국가냐’라는 자조 섞인 탄식을 내뱉게 하고 있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전대미문의 국민적 공분을 산 사건으로, 언론의 탐사보도와 검찰 조사를 통해 진실이 속속 규명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 조리장으로 근무했던 한모 씨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대통령의 ‘혼밥’이 대표적이다. 혼밥, 혼술 같은 개인화된 생활방식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홀로 밥과 술을 먹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인 방식은 아니다.

특히 대통령이라면! 역대 대통령은 수많은 사람들과 조찬, 오찬, 만찬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남의 장을 갖고 국정에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대통령들은 수시로 각계 인사를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밥상머리에서 국민의 희로애락을 경청하며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내려 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식사를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고 소통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채, 관저에서 홀로 밥을 먹으며 국정과는 거리를 뒀다. 그 자리를 차지한 최 씨와 문고리 3인방은 호가호위하며 장관들이나 비서진들의 대면보고를 막고 인사권을 행사하며 국정을 좌지우지했고, 결과적으로 국정은 파탄이 났다. ‘혼밥의 비극’이다.

최순실 씨의 청와대 식사도 문제다. 최 씨는 청와대 경호와 출입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했다.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청와대 식사를 조리장에게 요구해 필요할 때마다 자신만의 식사를 즐겼다. 당시 조리장은 일요일마다 청와대에 들어온 최 씨가 요구하면 언제든 내놓을 수 있게 그가 좋아하는 ‘스키야키’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스키야키는 간장, 설탕과 함께 얇게 썬 쇠고기와 대파, 두부, 배추, 실곤약 등의 재료를 넣고 자작하게 졸인 나베 요리의 일종으로, 서양인들도 좋아하는 대표적인 일본 음식이다. 최 씨는 스키야키를 좋아해 늘 이 음식을 주문했고, 최 씨가 식사를 마치면 서로 사이가 나쁜 문고리 3인방이 각각 식사를 했다는 것이 조리장의 증언이다. 외부인이 부린 횡포에 청와대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스키야키의 비극’이다.

최 씨는 청와대 관저 회의에서 국정을 보고받고, 후속 조치를 지시하고, 스키야키로 식사를 마친 뒤, 주방장에게 김밥을 싸달라고 요구하곤 했다. 집에 있는 딸 정유라 씨를 위해 김밥을 싸달라고 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는 광화문의 김밥집에서 배달돼온 김밥을 결제했다. 국민 세금으로 최 씨 모녀의 식사를 계산해준 셈이다. ‘김밥의 비극’이다.

청와대의 음식을 다루는 조리장을 아무런 권한과 책임이 없는 비선 실세인 최 씨가 마음대로 부린 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 식사 시스템의 붕괴는 경호·의료 시스템의 붕괴와 함께 총체적인 국정 마비를 상징하는 것으로, 광장에서 촛불을 든 국민의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결국 혼밥·스키야키·김밥의 비극은 대통령을 탄핵시켰고, 국민들은 황당한 국정 농단과 국기 문란 드라마에 분노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국민을 섬기고 받드는 민주주의 정치의 중요성, 제대로 절차와 격식을 갖춰 함께 나누는 음식문화의 의미를 무너뜨린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의 비극이 그대로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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