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1월호

[음식과 사람 2017-1 P.49 Food  Essay]

 

혼자서도 폼 잡고 들어오게 하시라

 

Editor. 윤동혁 PD

제주도의 올레길은 넓고 평평해서 정신을 무장해제하고 타박타박 걷게 된다. 까마귀란 놈이 깍, 까악 우렁차게 수작을 거는 소리도 달콤하게 들린다. 후배 C 군은 오래전부터 제주도를 들락거렸다. 나와는 ‘한라산의 버섯’을 촬영하며 4계의 많은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제주 경주마의 일생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C 군은 충동적인 미식가다. 그날은 흑돼지구이가 먹고 싶었다. 그런데 혼자 갔다가 네 군데 식당에서 퇴짜를 맞았다. 이 친구, 성질을 누르고 경주마 주인집에 가서 온 가족을 데리고 왔다. 다섯 명이 9인분을 먹었단다. 어디 가서 데려올 친구도 없는, 올레길을 혼자 걷는 분들은 순댓국이나 중국집밖에 못 간다는 얘기 아닌가.

생선회도 좋아하는 C 군은 강원도 삼척 바닷가를 거닐다 또 낙담과 굴욕의 ‘식당 돌기’를 감수해야 했다. 속으로 ‘흑돼지보다 더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아저씨가 조용히 부르더란다. 1인상을 차려주겠다고. 그것도 바닷가 평상에다가!

자,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C 군은 바닷가 산책을 나갈 때마다 그 횟집에 들른다. 혼자 가기도 하고 친구들 대여섯 명을 데리고 가기도 한다. 나도 그 집에 끌려갔는데 주인장과 악수를 나누며 서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진짜 덕담을 교환했다. C 군이 주인에게 내 신상에 대해서도 정보를 준 모양이었다. 그날 세 사람이, 주인 포함하면 네 사람이 삼척의 황홀한 저녁노을에 온몸을 적시며 크게 웃고 많이 마셨다.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 혼자 식당에 들어가 먹고 싶은 메뉴 마음대로 골라 먹는 자유분방함이 부럽지 않은가. C 군과 일본이나 홍콩, 다른 도시에 갈 때면 “오늘 저녁은 따로 먹자”고 헤어져 식사하는 기회를 갖곤 한다. 맥주를 걸치든 밤거리 야식집을 전전하며 뭔가를 조금씩 집어먹든 내 알 바 아니지만, 혼자 식사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매우 궁금해진다.

“그래, 넌 뭘 즐겼냐?”

우리는 서로 그날 저녁 무용담을 이야기하며 깔깔거린다. 얼마나 유쾌하고 기억에 남을 일인가. 오사카 쓰루하시의 야키니쿠(구운 고기) 집은 C 군을 황홀하게 해주었다. 1인분에 2800엔(약 3만 원 · 사진은 2인분)이었는데 생맥주 한 잔이 공짜, 그리고 밥은 얼마든지 더 먹어도 무료였다. 우리는 둘이었지만 혼자 식사하는 분들도 몇 명 있었다. 야키니쿠도 내가 잘 모르는 부위가 몇 가지 섞여 있는 모둠 요리여서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한국의 고깃집들이 환골탈태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몇 사람이 가도, 가령 세 사람이 가면 무조건 등심 3인분으로 시작해야 하는 업주 지향적 육식 문화가 바뀌기를 말이다.

혼자는 갈 수조차 없고, 여럿이 가도 똑같은 메뉴로 배를 채워야 하는 완고한 전통(?)이 깨질 수 있을 것인가. 많은 고객들이 혼자 삼겹살을 구워먹고 싶어 한다. 많은 손님들이 나 홀로 스시를 즐기고 싶어 한다.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식당 문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인다. 그리고 차마 문을 열지 못해 발걸음을 돌린다.

지난 연말의 화두는 ‘혼밥’, ‘혼술’, ‘혼행’, ‘혼말(혼자 보내는 연말)’이었다. 이런 현상은 새해에도 계속되며 그 세를 불려나갈 것이다. 이분들을 모셔가시라. 식당 구조도 조금 뜯어고치고 주방장 사고방식도 살짝 변화를 주시고!

아마 곧 보게 될지 모른다. 음식점 앞에 “우리 00왕갈비집은 혼밥 손님을 환영합니다!”, “1인 생선회 제공합니다!”라고 쓰인 문구를. 혼자라도 가슴 쫘악 펴고 가게 문을 씩씩하게 밀고 들어갈 날이 곧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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