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2월호

[음식과 사람 2017-2월호 P.47 Food Essay]

 

간판을 더 이상 목 조르지 말라

 

editor. 윤동혁 PD

 

“간판에 문화와 예술성을 수혈하고 싶습니다.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간판 문화만은 꼭 바꿔보려고 해요.”

국회문화관광위원회가 ‘간판문화개선소위(이하 간판소위)’를 만들었다. 2005년의 일이다. 국회가 다루기엔 가벼운 소재처럼 보인다. 당시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 간판소위 위원장이었다.

간판소위는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한 아름다운 간판 이야기’라는 긴 이름의 토론회를 연 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간판 선진국’을 둘러보았다. 자료를 검색해봤더니 옥외 간판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주요 ‘활동상’이었다. 그것도 2012년까지였다. 아직도 ‘간판소위’라는 위원회가 존재하는지는 알아보지 않았다.

2012년까지의 활동상 중에 TV 방송의 간판 죽이기에 대한 보고서는 한 줄도 발견할 수 없었다. 물론 음식점 주인들이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어떻게든 간판을 크게, 많게, 튀게 만드는 행위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률적으로 TV 화면에서 모든 간판(특히 식당 이름)을 범죄 용의자 얼굴 가리듯 모자이크 처리하는 실태에 대해서 간판소위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감이다. ‘간판은 문화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아름다운 간판을 뽑아 상도 주는 판에 TV의 이런 횡포를 당연시하는 풍조(?)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섬마을 밀밭집’, ‘초록쌈밥’, ‘창밖의 여자’, ‘미남 돼야지’···

음식점과 관련된 TV 방송을 보면 ‘모조리 지워버려라. 우리는 식당 팔아서 먹고살지만, 그 식당의 간판이 조금이라도 노출되는 것은 여자 앵커의 속옷이 보이는 것만큼 방송에 부적절하다’는 듯이 서슬이 퍼렇다. 방송국의 간판 관련 도덕주의 보수우파들은 그 기준을 해외로까지 확대해서 미국이나 일본에 있는 한국 식당 간판도 ‘알아봐서는 안 되도록’ 모자이크 처리하라고 명령한다.

간판을 화려하게 하든, 우아하게 하든, 크게 하든, 아담하게 하든 그건 주인 맘이다. 그 식당을 취재한 TV가 간판을 마음대로 먹칠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부정부패 척결이나 사회 정의 차원이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왠지 정의롭게 느껴져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방송에서 간판을 노출하면 부작용(아마도 식당 주인들로부터 돈을 받게 되리라?)이 우려된단다. 그럼, 물어보자. 여기 00방송 아침 프로그램이다, 저녁 생방송 ㅁㅁ다, 그러면서 많게는 500만 원, 적게는 300만 원 주시면 잘 소개해드리겠다는 전화 받은 식당 주인들이 내 주변에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간판은 가리고 그 뒷전으로 검은돈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이런 게 문제가 되면 ‘그건 외주제작사들이 저지르는 일이다’라고 발뺌을 한다.

간판은 도시의 얼굴을 바꾼다. 너무 현란한 간판은 도시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 반면 홍콩에 가면 그 휘황찬란한 간판들 때문에라도 술집을 찾게 된다.

프랑스의 소도시에선 때때로 뜻도 모르는 아름다운 간판 아래 서서 한참 올려다보며 여행의 또 다른 멋을 느끼기도 한다. 일본 사이타마 현의 작은 마을에 며칠 머물 때 민박집 앞 빵집을 자주 바라봤다.

‘밀짚모자’

동네 사람이 운영하는 자가 제빵집이었는데, 밀짚모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 빵집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고소했다. 길 건너까지 빵 굽는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자료를 뒤지다 보니 1등을 주고 싶은 간판 이름이 나왔다. 통닭집이다.

‘닭큐멘타리’

이런 간판을 방송에서 기어코 모자이크 처리해야만 속이 후련하고 정의감이 솟구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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