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2월호

[음식과 사람 2017-2 P.80 Food & Ingredient]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연장자 순으로 커피를 따른 후 덕담을 나누는 의식이 있다고 한다. 외식인들에게 특히나 고단했던 2016년, 따뜻한 커피 한잔 나누며 그동안 수고한 이들과 토닥토닥 고마움과 격려를 전하면서 커피 향같이 향기로운 2017년을 만들어가면 어떨까.

 

editor 강보라

 

커피는 인류가 가장 사랑하는 음료다. 매년 5000억 잔 이상이 소비돼 ‘원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원자재’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다. 커피는 현대인에게 필수품과도 같다. ‘커피 한잔’이라는 말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반가운 사람과의 만남, 일상의 여유, 휴식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맛과 향을 넘어선 커피의 마력에 빠져보자.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샤를 모리스는 커피를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고 표현했다. 한 잔의 커피 속에는 악마와 같은 무서운 중독성과 천사의 몸짓처럼 아름다운 향기, 지옥을 보는 것 같은 불편한 진실, 그리고 사랑처럼 달콤한 맛을 내는 방법들이 모두 숨어 있다.

커피를 단순한 음료로 인식한다면 이렇게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커피를 처음 마시기 시작한 이슬람 문화권은 에너지를 넘치게 해주는 커피에 일찍부터 매료당했고, 유럽인들 역시 커피를 특별한 음료로 여겼다. 수많은 사상과 세상을 바꾼 혁명들이 커피를 마시며 탄생했고, 아름다운 로맨스와 유명한 일화들도 커피와 함께 생겨났다. “커피 한잔 할까?”라는 말은 만남과 인연의 시작이기도 하고 일상의 쉼표이기도 하다.

우주를 날던 아폴로 13호에서도 커피는 큰 의미로 떠올랐다. 당시 산소탱크 파열이라는 위기에 봉착한 아폴로 13호의 승무원들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극도의 추위와 불안과 싸우는 승무원들에게 휴스턴에 있는 본부는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 “여기는 휴스턴. 승무원 여러분,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당신들은 지금 뜨거운 커피 한잔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기서 ‘뜨거운 커피 한잔’은 지구에서 기다리는 가족과 휴식, 즐거움을 상징하는 뜻깊은 메시지였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힘겨운 근무시간을 이겨내는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일이기도 하다. 커피가 친목 도모를 위한 모임에서 윤활제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친밀하고 손쉬운 방법도 없다. 커피가 차지하는 위상은 ‘커피 브레이크’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북아메리카의 직장에서는 대개 하루에 한두 차례의 휴식시간을 주는데, 이런 휴식시간을 커피 브레이크라고 부른다. 커피 브레이크 시간은 법적으로도 보장받는데, 휴식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에 가깝다. 커피가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사실은 커피 브레이크를 통해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 첫 커피는 ‘양탕국’

커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로 전해진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은 에티오피아를 무대로 한 것이다. 양치기 소년이 흥분한 산양을 발견했고, 그것이 관목의 붉은 열매 때문인 것으로 의심했다. 소년은 근처 이슬람교 수도원에 가서 이 이야기를 했다. 다음 날 수도승과 함께 열매를 먹어본 소년은 기분이 상쾌해지고 활력이 솟는 듯했다. 수도승 역시 졸음을 떨칠 수 있어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람들이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공식적으로는 서기 900년경 페르시아의 내과의사 라제스의 의학서적에 커피가 최초로 등장한다.

그는 커피 종자를 달여서 환자에게 먹였더니 ‘위장이 좋아지고, 각성 · 이뇨 효과가 있었다’고 적었다. 초기의 커피는 음료나 기호식품이 아닌 약재로 인식됐다. 커피 열매를 그대로 끓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맛과 향이 풍부하지는 않았다.

이런 커피가 기호식품으로 인정받은 것은 13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 1400년경 아라비아인들이 본격적으로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커피가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전해지게 됐다.

물론 도입 초반에는 커피 음용에 관한 종교적인 시비가 일기도 했다. 이슬람권의 산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를 맛본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커피에 세례를 내리면서 종교적인 의혹이 말끔히 해소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커피 수입을 하게 된 유럽에서는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아메리카 등에서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세계 곳곳에서 커피 문화가 꽃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커피하우스는 비즈니스의 장으로 자리 잡으며 뉴스와 정보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 영국의 로이드 커피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험회사 중 하나인 ‘로이드 오브 런던’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커피하우스의 번영으로 사회생활 전반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커피나 차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가십이나 인쇄되기 전의 따끈한 뉴스들을 커피하우스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주고받았다. 1페니만 있으면 한 잔의 따뜻한 커피와 교육,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커피하우스를 ‘1페니의 대학’이라고 불렀다. 사교의 장에서의 불가결한 요소가 된 것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남자들이 커피하우스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자 런던의 부인들이 정력을 떨어뜨리는 음료라며 커피를 공격한 것이다. 찰스 2세는 커피하우스를 민주주의의 싹을 틔우는 불순한 장소로 인식해 커피하우스를 박해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커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나온다. 그는 ‘우리가 숭늉을 마시듯 서양인들은 커피를 마신다’고 기술하고 있다. 커피를 처음 즐긴 한국인은 고종 황제로 알려져 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아관파천 당시 커피를 대접받으면서 커피 애호가가 된 것이다. 고종은 덕수궁으로 돌아온 후에도 외국 사신이나 대신들과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당시에는 커피에 대한 정확한 명칭이 없어 서양에서 온 탕국이라는 뜻으로 ‘양탕국’이라고 불렀다. 이후 고종의 후원으로 손탁호텔에 커피점이 생기면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소개되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문을 닫았지만, 이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들이 속속 등장하게 된다.

한국인들은 커피하우스를 ‘다방’이라고 불렀다. 고려시대 궁중의 연회나 사신들을 접대하기 위해 다방이라는 관청을 둔 것에서 비롯한 것이다. 초기의 다방은 주로 예술인들에 의해 시작됐다. 천재시인 이상도 ‘제비’라는 다방을 운영했다.

당시 다방은 소통의 장이었고, 시와 소설 등 작가협회 사무실을 대신하는 역할도 했다. 당시만 해도 커피는 서양 문물의 상징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도회적이고 세련된 것이었으며, 신문화를 즐기는 일이었다.

1960년대 이후 마담으로 상징되는 동네 다방이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이어 큰 인기를 끈 음악다방도 생겨났다. 1980년대에는 원두커피 전문점이 유행했고, 이후 커피 마니아가 직접 생두를 구입해서 로스팅을 하고 커피를 만드는 오늘날에 이르렀다.

 

커피벨트와 로스팅, 그라인딩

커피나무가 열대지역에서 자라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커피는 쾌적한 기후에서 재배된다. 평균기온과 강우량도 필요조건으로 충족돼야 한다. 이런 요건을 충족하는 지역은 북위 25, 남위 25도 사이로, 이곳을 ‘커피벨트’라고 부른다.

커피벨트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나라는 60여 개국에 이른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커피나무 열매 속의 씨앗을 분리하고 건조시켜 볶은 후, 물에 녹는 성분만을 추출한 것이다. 커피나무 열매는 붉은 체리와 닮아서 커피 체리 혹은 베리라고 불린다. 농장에서 이런 커피 체리를 수확해 외피와 과육, 내피와 은피를 벗겨낸 것을 생두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시장으로 출하돼 유통된다.

연한 녹색을 띤 생두를 볶는 것을 로스팅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 우리에게 친숙한 다갈색의 커피 원두가 된다. 로스팅을 하게 되면 열분해가 일어나 원두의 부피가 커지고 카페인 성분이 배출되면서 커피의 맛과 향이 더욱 그윽해진다. 동일한 커피라고 해도 로스팅 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로스팅 강도가 낮으면 커피 고유의 특징인 신맛이 많이 나고, 로스팅 강도가 높으면 쓴맛이 많이 난다.

로스팅을 거쳐 색깔과 풍미가 풍부해진 원두는 그라인딩(분쇄)이라는 마지막 변신 단계를 거친다. 맛과 향을 풍부하게 추출할 수 있도록 원두를 분쇄하는 것이다. 분쇄된 입자의 크기에 따라 커피의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커피 맛이 유독 쓰다면 원두를 너무 미세하게 갈아 커피 성분이 지나치게 많이 추출된 것이다.

반대로 맛이 평이하다면 입자가 굵어 커피의 추출이 덜 된 것이다. 분쇄 정도는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에스프레소처럼 추출 속도가 빠르다면 커피 가루를 되도록 미세하게 분쇄해 짧은 시간에 많은 성분이 추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잔의 커피에 이처럼 많은 노동과 공정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커피, 약인가 독인가?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커피를 피해야 할 음료로 여기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커피가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음료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는 하루에 50잔에서 많게는 70잔의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실제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마시지 않는 사람들보다 기억력과 반응시간, 시각적 공간 추론 같은 인지력 검사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는다.

커피의 긍정적인 효과는 과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먼저 커피는 지방을 분해하고 이뇨 작용을 하기 때문에 노폐물 배출에 탁월하다. 이것은 신진대사 항진으로 이어져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 또 커피의 카페인이 심장을 자극해 박동을 빠르게 하고, 근육의 컨디션도 순간적으로 좋게 만든다.

각성 상태를 지속시켜 오래 앉아서 학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커피에 함유된 나이아신은 수용성 비타민의 일부로 구강염, 설사 방지에도 효과가 있다. 하루 세 잔의 커피는 천식 환자의 기침을 완화하기도 한다. 카페인의 자극이 점액성 분비물을 마르게 하고 혈관을 수축시키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과하면 부작용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커피의 카페인은 대뇌를 각성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심장 박동을 증가시켜 예민한 사람은 부정맥이 생기기도 한다. 하루 다섯 잔 이상의 커피는 혈압을 상승시킨다. 위산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위산이 거꾸로 역류하는 부작용이 있어 빈속에 마시거나 위가 좋지 않은 사람은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다. 카페인은 세포막 투과성이 좋아 조직세포와 태반, 태아에까지 쉽게 침투하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임신부는 하루에 한두 잔 이상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사람마다 카페인에 대한 민감도는 제각각이다. 에스프레소를 마시고도 바로 잠들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우유를 듬뿍 넣은 카페오레 한 잔을 마시고도 심장이 두근거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성인 남자는 커피를 마시고 6시간이 지나면 섭취한 카페인의 50% 정도가 분해된다.

하지만 흡연을 하거나 다른 약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카페인이 몸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어린이나 간이 심하게 손상된 사람의 경우 3, 4일 정도 남아 있기도 한다.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고 싶지만 카페인이 걱정되는 사람이라면 카페인이 제거된 디카페인이나 에스프레소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를 즐기는 것이 좋다.

 

커피 한잔에 담긴 경제와 윤리

국내 커피시장은 1조6000억 원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은 2013년에 3.38kg이었는데, 2008년의 2.9kg 대비 17% 증가했다. 이는 일주일에 12.3회, 하루에 1.7잔을 마신 결과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도 많은 것을 감안하면 커피 애호가들은 통계치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풀이된다.

커피 소비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핀란드로 국민 1인당 12kg에 이른다. 1위에서 5위까지 모두 북유럽 국가들인데, 북유럽에서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따뜻한 커피를 물처럼 많이 마시기 때문이다. 커피 소비량은 전 세계적으로도 빠르게 늘고 있고, 경제에서 차지하는 커피의 비중도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커피값을 아껴 목돈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에서 ‘카페라테 효과’라는 말도 나왔다. 한 잔에 4000원 정도인 커피값을 모으면 한 달에 12만 원을 절약할 수 있고, 이를 40년간 저축하면 물가상승률과 이자 등을 포함해 약 2억 원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페라테 효과는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소액을 아껴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경제 용어로 사용된다.

한 잔의 커피에는 숨겨진 단면도 있다. 이윤이 높은 무역 상품으로 ‘검은 황금’으로도 불리는 커피는 천문학적 양이 소비되지만, 커피를 생산하는 농부들은 제값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갖고 있다. 다국적 기업에서 생두를 헐값에 수입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저개발 국가의 농민들이 수확한 커피를 열심히 팔아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도 노동 착취의 대상이 된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약 4000원이지만,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대가는 0.5%인 20원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열악한 생산 과정과 노동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인 것이다. 20원을 제외한 나머지 이윤은 거대 커피회사인 다국적 기업과 소매업자, 중간거래상들이 가져간다.

이러한 커피 유통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1960년대 후반부터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공정무역’ 운동이 확산됐다. 공정무역 커피는 다국적 기업이나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제3세계 커피 농가에 비용을 직접 지불하고 사들이는 커피를 말한다. 공정무역 커피는 직거래이기 때문에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커피를 구매할 수 있다.

불필요한 중간 수수료가 커피 농가로 돌아가기 때문에 고품질의 커피 생산도 가능해진다. 공정무역 커피는 노동에 합당한 가치를 돌려주는 거래 방식이다. 공정무역을 통해 보장된 최저가격은 농부들의 생산비와 생계를 유지시켜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공정무역 커피가 착한 커피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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