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웰빙은 제때 제 땅에서 자라난 재료로 만든 슬로푸드에서 시작된다"

[음식과 사람 2017-3 P.28 Trend]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민간 국제단체 슬로푸드국제본부가 전 세계 향토음식 중 뛰어난 것을 선정해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하고 있다. 2016년 12월 현재 등재된 품목은 전 세계 약 3900여 개, 그중 우리나라 음식은 55개 품목에 이른다.

 

editor. 강은진 / 도움말. 국제슬로푸드협회

 

방주라 함은 보통 기독교의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한다. 대홍수를 대비해 신의 계시로 배를 만들고 동식물 암수 한 쌍씩을 배에 태워 멸종 위기로부터 구했다는 얘기다. 신화냐, 실화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방주의 기적만큼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바로 ‘맛의 방주’다. 맛의 방주란 비영리 국제기구인 슬로푸드국제본부의 프로젝트다.

특정한 공동체나 문화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 생산력과 상업적 발달 가능성까지 지녔지만 안타깝게도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식품을 보존·계승하기 위해 199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산업화, 위생법, 규제, 환경 폐해 등으로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는 먹을거리를 대상으로 맛을 재발견하고 목록을 만들어 널리 알리는 것이 주목적이다. 슬로푸드국제본부 산하 18개국 국가위원회에 소속된 세계의 연구자 집단이 맛의 방주 등재 품목을 발굴해 심사·선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한국, 2013년 제주 푸른콩장으로 시작해 50여 품목 등재

맛의 방주에는 어떤 먹을거리들이 등재될까. 1996년 이탈리아에서 ‘맛의 방주 선언문’을 발표한 이후 전 세계 맛의 방주 등재 품목은 3936개에 달한다. 그중 우리나라는 2013년 8월 ▲제주 ‘푸른콩장’ ▲경북 울릉도 ‘칡소’ ▲경북 울릉도 ‘섬말나리’ ▲충남 논산 ‘연산오계’ ▲경남 진주의 ‘앉은뱅이 밀’이 최초로 이름을 올렸고, 이후 ▲전남 장흥 ‘돈차’ ▲제주 ‘흑우’ ▲충남 태안 ‘자염’ 등이 추가로 등재됐다.

2016년에는 1815년 간행된 <규합총서>에 장 담그는 법이 수록돼 있는 ‘팥장’이 유일하게 예비 후보로 등록돼 심사를 받고 있다. 팥장은 주로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담그던 전통 장으로, 팥과 밀가루로 메주를 쑤어 말렸다가 소금물을 부어 담근다.

맛의 방주에 등재되는 음식은 전통 음식을 계승하고, 다양한 향토음식의 맥을 이어가며, 좋은 국산 식재료를 이용해 맛의 발전을 꾀하는 이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제주 푸른콩장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제주도 방언으로 ‘푸른 독새기콩’이라고 불리는 푸른 콩으로 만든 된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맛의 방주에 등재된 식품이다. 푸른 콩으로 담근 된장과 간장은 가볍고 산뜻하면서도 깊은 맛을 지녔다. 맛의 방주에 등재되면서 새롭게 조명된 푸른콩장은 제주도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푸른 콩을 재배하는 농가, 장을 담그고 생산 · 판매하는 농장들, 또 푸른콩장을 이용해 제주 전통 밥상을 차려내는 다양한 향토음식점들이 모두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콩과 장을 이용한 요리가 무궁무진하다 보니 푸른콩장을 활용한 음식점의 종류도 한정식부터 고깃집, 퓨전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최근 지자체들이 맛의 방주에 등재시키기 위해 한 개인을 넘어 지역사회와 함께 적극 나서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식업계, 특색 있는 웰빙 메뉴 개발에 활용해볼 만

2015년 맛의 방주에 오른 품목은 골감주, 산물, 다금바리, 오분자기, 감태지, 낭장망 멸치, 지주식 김, 파라시, 황녹두, 보림백모차, 하동 잭살차, 밀랍떡(밀떡) 등 23개 품목이다. 선정 기준만큼이나 선정 절차 또한 엄격하다. 맛의 방주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7가지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맛의 방주’ 선정 기준

1. 맛이 뛰어나야 한다.

2. 특정 집단의 기억과 정체성과 연결된 것이어야 한다. 특정 지역에서 긴 세월 동안 존재했던 다양한 종의 채소, 환경친화적인 가축이어야 한다.

3. 식품의 원료가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재료이거나 그 지역에서 조달된 것이어야 한다.

4. 제품 생산에 이용된 보조적인 재료(양념, 조미료 등)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일 수 있으나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것이어야 한다.

5. 그 지역의 환경·사회·경제·역사적으로 연결된 생산물이어야 한다.

6. 농민이나 소규모 가공업체에 의해 제한된 양으로 생산되어야 한다.

7. 현재 또는 미래에 소멸 위기에 처해 있어야 한다.

 

맛의 방주에 탑승하려면 우선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를 통해 등재 신청 양식을 내려받아 작성한 후 제출하면 된다. 맛의방주위원회에서 1차 심사를 하고 2개월간의 온라인 검증을 거친 후 관련 서류들을 번역해 이탈리아의 ‘국제생물다양성재단(Slow Food Foundation for Biodiversity)’으로 보내진다. 심사기간은 대략 1년여가 소요된다.

늘 새로운 메뉴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외식업 경영자들에게 ‘맛의 방주’에 오른 품목들은 훌륭한 메뉴 개발 소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웰빙’, ‘건강’, ‘특별한 음식’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추기 위해 세계가 인정한 한국 고유의 재료를 활용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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