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3월호

[음식과 사람 2017-3 P.65 Food  Essay]

 

갈치조림과 고추장아찌의 달달한 유혹

 

Editor. 윤동혁 프로듀서

 

몇 달 전에 들렀는데 두부전골이 맛있었다. 국물이 시원했고 두부는 말랑말랑 탄력이 좋았다. 교통만 편리하면 자주 들를 만했다. 가게는 길 바로 옆에 있었는데 가는 길에 들르자면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조금 급하게 꺾어야 한다. 어, 하다가 지나치기도 하는데 그날은 마음먹고 찾아갔다.

두부전골은 이미 맛보았고 밑반찬 깔끔한 거 알고 있으니까… 흠,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강원도 한복판(원주시 흥업면)에서 갈치조림을 시켰다. 1인분에 1만2000원. 물론 2인분 이상이다. 주방에서 토닥토닥 소리가 나더니 주인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졸이는 단계인가 보다. 구석진 창 옆으로 가더니 가루약을 입에 탈탈 털어 넣고는 물로 꼴깍 넘겼다. 그리고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물화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안개처럼 깔렸고, 나는 그 안개 속에서 식당업 하는 사람의 고달픔과 인내를 감지했다.

“아주머니, 방금 드신 약… 뭐 땜에 드시는 거유?”

마치 잘 물어봤다는 듯 금방 대답이 날아왔다.

“관절요.”

그래,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 누구나 손목이며 허리며 무릎 관절 어느 한 군데 안 아픈 사람 있겠는가. 더구나 이 아주머니께서는 ‘계곡장사’를 하셨다고 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계곡에 평상 놓고 닭백숙을 팔았는데, 부엌에서 물가 평상까지 거리가 있는 데다 돌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새 무릎이 고장 나더라고 했다. 직업병이다. 같이 간 후배가 조금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카메라맨들이 허리나 어깨에 크고 작은 통증을 매달고 산다. 동병상련을 느낀 것 같다.

갈치조림이 나왔다. 제주도에 가서 아주 비싼 돈을 내면 모를까, 어쩌다 먹는 이 음식은 항상 모자라게 나온다. 갈치에서 발라먹는 살이 부족하다 보니 양념국물을 짜게 하고 요즘처럼 무값이 비싸면 ‘사실 갈치보다 무가 맛있다’며 위안할 만한 여지도 없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갈치 살을 충분히 발라 먹고도 남아서 후배와 서로 “이거 너 먹어라”, “저는 됐습니다. 큰 토막 남았는데 드세요” 이런 정겨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양이 왜 이리 많은가 추궁(?)했다. 수입산이라고 했다. 물론 수입산인 건 알고 있다고, 그래도 너무 많다고 다그쳤더니 “제가 어디 가서 갈치조림 시켜보면 먹다 만 느낌이라 우리 손님들에겐 그런 생각 안 드시도록 해드리려고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갈치조림이 맵지도 짜지도 않아서 고추장아찌를 맛보게 되었는데 주인 손맛이 어디 가겠는가, 매운맛은 지나치지 않고 짠맛은 달달하되 담백했다. 이 황금 레시피는 과연…? 식초, 간장, 물에다 매실농축액… 아, 매실이 들어가서 단맛을 내는구나. 그런데 주인아주머니, 레시피보다는 ‘고추’에 방점을 찍었다.

“우리 텃밭에서 딴 거예요.”

텃밭에서 기른 것도 자랑스럽지만 청양고추의 매운 정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매운맛이 막 들려고 할 때 고추를 따야만 이런 맛이 난다는 것이다. 시장 가서 사면 그 맛을 어찌 맞추겠느냐는 말씀(!)이셨다.

나는 남는 고추장아찌를 담아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대번 일회용 반찬통에다 고추장아찌를 반쯤 담아 내왔는데, 지금 먹다 남은 것도 함께 싸가라고 했다. 상호는 ‘두레박’이고 주인 이름은 유은자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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