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원 따로 둘 수도 없고… 서빙하랴 계산하랴 서비스 질 저하 우려

[음식과 사람 2017-4 P.28 Cover Story]

 

▲ 사진 = 한국외식신문 DB

장기 불황으로 지갑이 얇아지면서 소비자들이 자신이 먹은 밥값을 각자 내는 ‘더치페이(Dutch Pay·각자내기)’가 크게 늘었다. 음식점 주인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 각자 카드로 결제하려는 손님이 줄 서 있으면 서빙 등 고유 업무에도 차질이 생기는 등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 반면 소비자들은 각자 계산할 권리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치페이에 대한 서로 다른 속내를 들여다봤다.

Editor. 정성민

 

“한 명씩 계산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일손이 부족해져요. 서빙도 밀리고

서비스를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 다른 손님에게

피해가 갈까 봐 죄송스럽고 마음이 불편하죠.”

- 신당동 중화요리 전문점 ‘이화원’ 주지현 매니저

 

“요즘 직장인치고 더치페이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점심시간에 한 사람이 다 내긴

너무 부담스러워요. 일행이 여럿이면 금액도

상당하니까요.” 김진수(직장인)

 

요즘 음식점의 달라진 풍경이다. 손님들은 편리하다는 등의 이유로 점점 더 더치페이를 선호하고, 이를 감당해야 하는 음식점들은 다양한 고충에 시달린다. 과거에는 계산대 앞에서 서로 내가 내겠다고 승강이를 벌이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드물다.

여럿이 와서 식사를 해도 나갈 때는 “각자 계산해달라”는 손님들이 대다수다. 금액이 제각각인 음식을 여러 가지 시켜 먹고 “인원수대로 똑같이 나눠 계산해달라”는 경우도 빈번하다. 취재하며 만난 음식점 경영자들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최근 1, 2년 사이에 더 심해졌다. 특히 20, 30대 젊은 층과 직장인의 비율이 높다. 점심시간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이 카드로 각자 계산하는 것이 익숙한 모습이다.

장기 불황으로 살기가 팍팍해지고 지갑이 얇아진 탓이기도 하고, 각자내기가 합리적 소비라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도 한몫한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28일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528명을 대상으로 ‘더치페이’ 문화 확산 여부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보니, 전체 응답자의 50.7%가 ‘확산될 것’이라고 답해 ‘우리 문화에서는 잘 안 될 것’이라는 예상(35.9%)을 크게 앞섰다.

 

직원 한 명 잡아먹는 더치페이?

인건비 상승과 노동 강도 증가는 고스란히 업주 몫

더치페이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리한 측면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음식점 입장에서는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직장인 최승태 씨는 “각자 계산한다 해도 심하게 힘들거나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닌데, 그렇게 싫어할 일이냐?”고 반문했다. 음식점 측이 겪는 고충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대표적인 문제는 일손 부족 현상이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손님이 집중되는 점심시간에는 안내, 주문, 조리, 서빙 과정만으로도 분주하다. 각자 계산하는 손님들이 늘어나면서 계산대에 직원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연스레 다른 과정에서 결손이 생기고 나머지 직원들이 더 힘들어졌다. 대형 음식점의 경우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직원을 추가 고용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 그만큼 업주의 이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건비 상승은 비중이 큰 고정 지출이기 때문에 음식점 입장에서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요소 중 하나다. 소형 음식점들은 사람을 쓰기가 더 힘들다. 43석 규모의 한식집인 ‘인간중심’ 김봉순 대표는 “더치페이 문화로 예전보다 일이 힘들어졌지만 사람을 더 쓰면 인건비 감당이 안 돼서 참고 일한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손님들의 불만이 높아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경우도 많다. 음식점 사장님들에 의하면 ‘빨리빨리’ 문화가 만연한 우리나라의 특성상 주문한 음식이 늦게 나오거나 반찬 추가가 빨리 되지 않을 때 불만을 표하는 손님들이 많다. 더구나 회사 밀집 지역에는 음식점 수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계산 줄이 너무 길게 늘어서 있어 혼잡해 보이면 “딴 데 가자”고 쉽게 발길을 돌려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이유로 음식점 입장에서는 고객 서비스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화원’의 주지현 매니저는 “각자 내겠다는 것 자체는 손님의 권리인 걸 안다. 그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부족해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고 손님들이 떨어질까 봐 염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식당은 식권발매기 들이고, 손님은 더치페이 앱 쓰고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음식점들이 더치페이 시스템을 구비하는 등 대응책을 적극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무인식권발매기를 구비하는 음식점들이 점차 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학교나 구내식당 등을 시작으로 국내에 도입돼 요즘은 일반음식점에서도 계산 과정 간소화를 위해 설치하는 곳이 늘었다.

고객이 직접 주문부터 계산까지 하므로 담당 직원이 필요 없어 인건비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업주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소비자들도 각자 원하는 메뉴를 골라 선결제를 하면 되니 간편하다는 반응이다.

다만 식권발매기 등 기기 설치에 대해서는 많은 음식점들이 “아직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인간중심’ 김봉순 대표는 “계산 줄이 길더라도 손님과 잘 드셨냐고 한마디씩 주고받는 것이 정감 있는 고객관리인데 기계로 대체하고 싶진 않다”고 밝혔다. 강남구 역삼동 ‘오징어 생선구이’ 김대경 대표는 “메뉴가 간단한 곳은 편리할지 몰라도, 메뉴가 복잡하고 조리시간이 긴 음식을 파는 곳은 사람이 주문·계산을 하는 게 대처하기가 낫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대응을 하는 곳도 있다. 동대문구의 한 중화요리 전문점은 ‘각자 계산 불가’라는 안내문을 붙여 화제가 됐다. 최근까지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 음식점의 더치페이 거부를 두고 “소비자의 권리를 무시한다”, “바쁠 때 각자내기를 하려면 현금을 준비해가는 배려도 필요하다” 등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소비자들과 금융, IT 업계는 더치페이를 더 편리하게 만드는 방법에 골몰하고 있다. 직장인들은 각자내기가 여의치 않을 때 한 사람이 몰아서 계산하고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를 이용해 편리하게 송금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엔빵’, ‘더치페이 종결자’, ‘뿜빠이’ 등의 각자내기 계산 프로그램도 인기다.

▲ 식권 발매기 / 사진 = 한국외식신문 DB

총액과 인원수를 입력하면 각자 결제할 액수를 빠르게 알려주고 상세 내역은 ‘카카오톡’ 등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어 편하다는 반응이다. 은행들도 다양한 관련 상품을 내놨다. KB국민은행 ‘리브’, 우리은행 ‘위비뱅크’, IBK기업은행 ‘아이원뱅크’ 등이 대표적이다. 각자내기 서비스를 선택한 후 총액, 인원수를 입력하면 1인당 금액이 자동 계산되고, 계좌번호를 입력해 상대방에게 실시간 송금도 가능해 호응을 얻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외식문화도 급변하고 있다. 누군가의 편리를 위해 누군가는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선진 문화가 아닐 것이다. 업소는 계산 손님을 상대하느라 기본적인 서비스에 소홀해지지 않도록 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소비자는 바쁜 시간대에 더치페이를 할 때는 미리 잔돈을 준비하거나, 한 명이 계산한 후 나중에 계산을 나누는 등의 배려가 필요하다.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더치페이의 부작용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the 친절한 기자의 추가 정보!]

식권발매기는 주로 쌀국수, 도시락, 라면 등 메뉴가 단순한 곳에서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식권발매기 업체에 알아보니, 메뉴는 원하는 만큼 줄이거나 늘려 입력할 수 있다고 하네요. 가격대는 기기의 크기에 따라 보통 100만~700만 원대 정도랍니다.

식권발매기 기업 ‘티엔에스’의 신영묵 대표는 “대형 음식점도 문의를 많이 해오지만, 오히려 인건비 절감이 중요한 20~30평대 음식점에서 설치가 느는 추세”라며 “특히 최근 1, 2년 사이에 문의가 급증했다”고 하네요. 신 대표는 “현재 국내에 열 군데 남짓한 업체가 있는데, 기기 품질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 본인의 예산과 매장에 놓고 싶은 크기에 맞춰서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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