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4월호

[음식과 사람 2017-4 P.51 Food  Essay]

 

스테이크에서 건강한 소 울음소리가…

 

Editor. 윤동혁PD

 

‘평창’이 걱정스럽다. 시설이 아니라 먹는 일 때문이다. 홋카이도 동계아시안게임을 취재하고 내친김에 평창까지 둘러본 몇몇 외신기자들이 식사 문제를 거론했다고 한다.

육개장을 ‘YOOKGEJANG[육개장]’이라고 써놓으면 그게 무슨 음식인지 어떻게 알 것인가.

‘KKORIGOMTANG[꼬리곰탕]’은 또 무슨 음식인가. 소의 꼬리로 탕을 만들어 먹는 것 자체가 낯설 텐데, 그리고 사진을 붙여놓아도 내용을 감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꼬리곰탕뿐이겠는가. 외국 기자들은 홋카이도에서 이런 문제로 망설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진열장에 전시된, 실물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모형음식들에 매료당했고, 영어 설명이 간단하면서도 알기 쉽게 쓰여 있어서 식사시간이 매우 즐거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조차 일본에 비교당하면서 외국 기자들의 우려 섞인 충고를 듣는다는 것은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매화가 활짝 필 무렵 일본 오사카와 교토를 다녀왔는데 식사를 할 때 ‘그래, 이 친구들, 그런 점에서 뛰어나다는 거 잘 알고 있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는 심사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일본에 가서 많은 분들이 식당가를 순회할 때 느끼셨겠지만 카레 냄새 폴폴 풍기는 가게 앞에서는 일단 발길이 멈춰진다. 나는 그 유혹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작은 배낭을 메고 있었으므로 살그머니 벗어서 식탁 아래에 내려놓았다. 종업원이 잰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손님, 그 배낭은 여기에 담으세요” 하며 식탁 옆에 놓여 있는 바구니를 가리켰다.

카레 향을 음미하면서 손님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살펴보니 짐바구니들이 참 유용하게 쓰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의를 벗어 의자에 걸쳐놓을 일도 없다. 한국 식당들도 이미 이렇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짐들을 예쁜 바구니에 담아 보드라운 천으로 덮어놓은 걸 보니 작은 감동이 느껴졌다.

더 놀라운 것은 식사가 끝난 후였다. 자리를 뜨는 손님들이 짐만 챙겨서 나가는 게 아니라 짐 덮었던 붉은 천을 애초 모양대로 예쁘게 접어서 처음 놓여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살짝 걸쳐놓는 것이었다. 아름답고 품위 있는 식당은 주인과 손님이 함께 만드는 거구나!

오사카 역 맞은편에 있는 카메라 전문점에서 실컷 눈요기를 한 다음 옆 건물 식당가로 갔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은 육류가 아니라 생선이나 소바 쪽이다. 그런데 어느 스테이크 전문점 앞에서 발길이 멎었다. 포스터의 내용이 장황하고 상세했다.

살펴본즉 “우리 가게에서는 시가현 어느 어느 마을에서 키우는 검정소의 고기만 사용한다”는 것이었고, 검정소가 자라는 목장과 사육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사진). 사료에는 항생제가 들어 있지 않고, 좁은 우리가 아니라 충분히 운동할 수 있는 공간에서 키운다는 설명도 있었다. 그 사육자가 어떤 사람인지 신상 명세가 자세히 쓰여 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뿐이겠는가. 스테이크가 나올 때 함께 곁들이는 채소며 과일의 생산 이력 역시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었다. 식당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손님들에게 이런 정보를 알차게, 기분 좋게 알려주는 일이 몹시 어려운 일일까? 방송용 카메라의 거의 90%를 일본제에 기대고 있는 것은 그렇다 치고, 자신의 식당에 자신 있게 포스터 한 장 붙이는 일이 정말 어려운 일일까?

평창동계올림픽 개막까지 시간은 아직 충분하게 남아 있고, 우리는 음식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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