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ESSAY

[음식과 사람 2017-7 P.65 Food Essay]

 

‘버섯전골’의 추억

 

editor. 윤동혁

 

일본 오사카에서 버섯 요리 전문 식당이 눈에 띄어 문을 살그머니 밀고 들어갔다. 진열장이며 간판이며 모든 게 식당 같지 않고 카페 분위기가 나서, 그리고 식사 시간이 아니어서 ‘살그머니’ 문을 밀 수밖에 없었다. 실내가 눈에 다 들어오자 “이크, 잘못 열었다” 싶었으나 이미 젊은 주인과 눈이 마주쳤으므로 엉덩이와 두 다리도 안으로 진입시켰다.

메뉴는 딱 한 가지, 버섯전골! 게다가 알코올성 음료도 딱 한 가지, 와인뿐이었다. 이 가게는 여성들이 건강, 주로 다이어트를 염두에 두고 버섯의 독특한 향과 맛을 즐기려고 찾아오는 곳이라 분위기 설정을 카페 스타일로 한 것 같았다. 비쌌다. 2인용 코스가 (전골 외에도 자그마한 접시가 대여섯 개 따라 나왔지만) 7만 원. 그런데 기분 좋은 이벤트가 있었다. 전골이 막 끓기 시작하자 젊은 셰프가 묵직한 나무토막을 들고 왔다. 표고버섯 재배목이었는데 버섯 수십 개가 올망졸망 붙어 있었다. 한 사람이 한 개를 딸 수 있으니 고르라고 했다. 물론 전골에 넣어 드시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만은 가격을 잊었다.

첫 번째 손댄 자연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버섯’이었다(1993년의 일이다). 5년 전쯤에 만든 다큐멘터리 ‘한라산 버섯’은 이탈리아 공영방송인 R1에 팔려 유흥비 조달에 크게 기여했다. 요즘은 ‘독버섯’에 꽂혀 있는데, 항상 전문 감수를 해주시는 우리나라 버섯 분류의 1인자(본인은 스승을 앞세워 2인자라고 말하나)인 석순자 박사가 한번 가보라고 한 버섯 전문 식당이 있다.

전주 혁신도시까지 정말 ‘시간 내서’ 찾아갔다. 야, 이것 봐라. 갖가지 버섯을 병에 담아 키우고 있네. 커다란 진열장 안에 애느타리, 노루궁뎅이, 황금송이, 누에동충하초… 팽이도 흰색과 노란색이 피어 있었으니 나에겐 화려한 버섯화훼단지나 다름없었다.

“처음엔 밀봉 버섯을 사용했어요. 편리하긴 했지만….” 그렇다. 오사카 그 식당에서도 어디선가 가져온 밀봉 버섯(비닐봉지에 담아놓은)을 사용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밀봉한 버섯은 알게 모르게 ‘쉰내’를 풍기더란다. 그래서 병 재배 버섯으로 바꿨다고 했다.

“병에다 키우니까 손님들이 눈으로도 볼 수 있고, 맛보기 전에 이미 신선하다는 이미지를 갖게 되지요.”

버섯 전문 식당 사장인 한양수(51) 씨는 왠지 식당 주인 같아 보이지 않았다. 좋은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맑은 눈을 가졌다면 이분도 시를 쓰셔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시 쓰는 정성으로 버섯에 마음을 바치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예 버섯 재배회사를 운영한다. 그러니까 전문 버섯인이다. 버섯을 시장에 내다 판다. 그리고 유통 과정에서 괜찮은 버섯들을 조금씩 선별해 식당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이 집 버섯전골은 샤브샤브. 쇠고기를 살짝살짝 데쳐서 먹는데, 대여섯 가지 버섯의 국물이 배어들어 오묘하고 부드러운 맛을 낸다. 한 씨는 전골 속에서 익어가고 있는 노루궁뎅이 버섯을 가리키며 “이거, 날로 드셔도 맛있는데” 하더니 생버섯 하나를 그냥 먹으라고 권했다. 오랜 세월 버섯과 함께 생활했지만 노루궁뎅이 버섯을 날로 먹기는 처음이었다. 기름소금장에 살짝 찍어 먹으니 별미였다.

촬영 장비를 챙겨 나오는데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벽에 붙여놓은 글귀 하나.

“하늘에 별이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장부엔 매상이 있어야 한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