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8월호

[음식과 사람 2017-8 P.65 Food  Essay]

 

잭슨빌 비빔밥과 우리 콩나물

 

▲ 이미지 = Pixabay

editor. 윤동혁

 

‘살다 살다’라는 말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좋지 않은 쪽으로 뭔가를 온몸으로 부딪칠 때 쓰는 말이다. 평생 떠돌이로 살면서 떠안게 된 방랑자의 숙명 중 하나는 세계 여러 나라의 공항 세관에서 당하는 모욕이다. 이번에는 ‘살다 살다’ 한국 공항에서 우리 동포에게 당했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1차 검색은 ‘무사히’ 통과했는데 비행기 타기 직전 특별히 선택되어 제대로 털렸다. 미국 가면 그곳에다 버리고 오려 했던 매우 지저분한 슬리퍼도 구석구석 검사했다. 70을 바라보는, 게다가 사람 좋게 생긴 온화한 얼굴의 이 늙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어찌하여 테러리스트 용의자 취급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어찌 됐건, 나는 엉덩이를 까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늙은이가 불쌍해 보였던 것일까 선물도 하나 주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알몸 검색도 사양하지 않았으리라. 갑자기 나의 좌석이 이코노미에서 비즈니스석으로 격상된 것이다. 무려 비행시간만 14시간 이상이 걸리는(인천~애틀랜타), 그야말로 긴 여정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애틀랜타에서 환승을 해서 잭슨빌까지 또 1시간을 날아가야 했으니 이 뜻밖의 좌석 격상은 꿈만 같았다.

얘기의 들머리를 이처럼 주절주절 꺼내놓은 까닭은, 바로 그 ‘비즈니스’ 손님으로 맛본 비빔밥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첫 번째 식사는 3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나는 비빔밥을 선택했다. 한식 애호가여서는 아니었고, 이코노미석과 차이가 무엇인가를 감별하려는 ‘투철한’ 직업의식의 발로였던 것이다.

역시 비싼 값을 했다. 나의 잔에는 계속 샴페인이 채워졌고, 몹쓸 일을 겪고 나서였는지 금방 몽롱해졌다. 막상 비빔밥이 나왔을 땐 나의 직업의식도 흐리멍덩해져서, 나중에 글을 어떻게 쓰나 걱정되었다. 그래도 비빔밥을 비비며, 뒤적거리며 뭔가를 살폈다. 그리고 두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

콩나물이 매우 조금이다. 그것도 대가리가 작아서 숙주나물이 아닌가 착각할 뻔했다. 또 고사리 대신 가지나물이 들어 있었다. 색깔로 멋을 내기 위해서였는지 당근채는 풍성했다. 계속 샴페인을 마시며 식사를 했으므로 더 정밀한 감별은 불가능했고, 과제는 잭슨빌로 넘겨졌다.

순전히 숙제를 하기 위해, 민박 아줌마를 앞세워 잭슨빌의 한국식품점을 찾아갔다. 그곳 한구석에 분식점이 있고 비빔밥도 판다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기쁜 발걸음이었다. 정식 메뉴만 12가지였다. 비교적 맛깔스럽게 찍어놓은 사진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외국인도 쉽게 고를 수 있겠다 싶어서 “사진 붙여놓으니까 좋네요” 했다가 한방 맞았다.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 없어요.” 죄다 단골들이고 점심시간엔 길게 줄을 선다며 음식 전문 PD를 전혀 ‘우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때가 오후 3시쯤이어서 손님이 아예 없었던 게 다행이었다. 종업원인 필리핀 아저씨도 그때 점심(짬뽕)을 먹고 있었으니까. 나는 힘을 내어 뻔한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서 뭐가 제일 많이 나가냐고. 그랬더니 서슴없이 ‘짬뽕’이라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비빔밥(사진)을 시켰고, 비행기 안의 비즈니스석에서 비빔밥을 먹으며 품었던 질문을 던졌다.

“고사리는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가지나물로 대신하는 것이고 콩나물은…” 한국 사람들이 더 이상 콩나물을 안 키우고, 그나마 조지아나 캘리포니아주에서 중국 사람들이 키운 콩나물을 가져다 쓴다는 것이었다. 아, 조선 사람들의 아이덴티티인 콩나물도 중국인들(정작 그들은 먹지도 않는데) 손에서 자라는구나.

또 하나, 비즈니스석에서도, 잭슨빌에서도 그리고 돌아오는 이코노미석에서도 어김없이 따라나왔던 ‘진한 참기름’을 나는 한 번도 개봉하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고소하고 달콤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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