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9월호

[음식과사람 2017-9 P.35 Uncut News]

 

독서의 계절, 음식만큼 귀한 역사의 자양분을 나누자

 

editor 김홍국 정치평론가

 

계절은 무더웠던 여름과 작별하고, 고대하던 가을로 접어들었다. 가을은 결실을 거둬들이는 ‘추수의 계절’이고, 책 읽는 모습이 아름다운 ‘독서의 계절’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들의 다툼과 경쟁은 치열하고, 김정은발 북한의 도발과 트럼프발 미국의 퇴행적 공세, 위기의 민생을 포함한 내우외환의 현실을 살아가기에 험난하다.

그렇기에 책을 통해 경험과 지혜를 얻고, 인문학적 통찰과 세상의 흐름에 대한 치열한 공부를 통해 복잡다단한 세상사의 변화에 맞서는 것은 지친 우리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필자가 주목한 책은 언론인 출신인 조선희 작가의 새 장편소설 <세 여자>다.

<세 여자>는 우리가 잊고 있거나 또는 무관심했던 세 명의 여성 혁명가를 통해 1920~1950년대에 걸쳐 펼쳐진 험난했던 한국 현대사를 복원하고 있다.

작가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청계천에서 단발머리의 세 여자가 물놀이를 하는 사진 속에서 허정숙을 발견한 후 신여성이자 독립운동가라는 새로운 인물 군상에 관심을 갖고 작품 구상을 시작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세 여자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는 혁명의 여정에서 남편을 잃고, 투옥되고, 고문을 당하고, 아이를 잃고, 마침내 시베리아에서, 평양에서, 경성에서 외롭게 죽어갔다.

작가가 구상을 시작해 취재와 소설 쓰기 작업에 나선 지 12년 만인 올해 6월 마침내 출간할 정도로 공력과 열정을 투입한 이 작품은 그만큼 복잡다단한 한국 현대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작가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여성들에 대한 대중적인 조명은 거의 이뤄지지 못한 것이 현실임을 자각하며, 이 작품을 계기로 격랑의 근현대사 속에서 치열하게 살다 간 많은 여성들의 삶이 우리 곁으로 되돌아와 역사를 밝혀주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세 여자의 인생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1920년 상하이에서 한국 공산주의운동이 시작돼1955년 북한에서 주체사상이 등장하고 1958년 연안파 숙청으로 공산주의가 소멸하기까지의 과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역사 기록에 반하는 상상력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주의했다는 작가의 이야기처럼 소설은 현실과 상상력을 오간다.

작가는 작품 속 40년의 시간의 궤적에서 해방 공간과 6·25전쟁에 대해 주목하고, 분단과 전쟁 그리고 역사적 아픔을 지닌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직설적으로 파헤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독립운동과 사회주의운동 과정에서 잊혔던 여성 혁명가들을 조명하면서 백지 상태였던 한국 역사와 문학사를 복원하고, 언론인 특유의 실사구시와 사실에 근거한 작법을 통해 한국 문학을 재구성했다.

보수 또는 진보의 입장을 막론하고 21세기의 한반도는 세 여자가 살았던 1900년대 초·중반의 풍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겨울 촛불혁명의 열정이 민주주의와 정의에 기반을 둔 새 정치를 통해 개혁을 진행 중이며, 어려운 민생과 경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우리 사회를 재구축하려는 노력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한반도의 위기와 어려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시대의 아픔을 고민하는 좋은 책을 나누는 독서의 힘으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맛있는 가을, 제철 음식으로 입맛을 돋우는 계절에 사고와 성찰의 힘이 또 다른 결실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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