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지면으로 떠나는 벤치마킹 투어

[음식과사람 2017-9 P.62 Benchmarking Tour]

 

외식업체 대표들은 늘 “어디 가서, 뭐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음식부터 경영 기법까지 배우고 싶은 것은 많다. ‘잘나가는’ 가게 주인은 시간, 경비가 넉넉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영이 어려운 가게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각 지역별·음식별로 ‘지면 벤치마킹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사정상 못 가보는 분들이 ‘힌트’라도 얻기를 바란다.

 

editor / photo 황광해 음식평론가

 

음식의 재료가 되는 것을 ‘식재료’라고 한다. 우리는 식재료를 먹는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식재료를 조리(요리)해 먹는다. 음식점은 식재료를 조리(요리)해 제공한다. 식재료는 음식이 된다. 식재료의 맛은 음식의 맛을 결정한다. 식재료는 외식업체의 주요 마케팅 요소다. 식재료는 ‘특급 레시피’보다 더 소중하다. 이번 호는 사소한, 그러나 ‘특급 레시피’를 사용하는 외식업체 이야기다.

 

왜 ‘몸국’을 먹을까?

경주 ‘팔우정해장국’

▲ 경주 팔우정해장국 / 이하 사진 황광해 제공

외식업체 대표 혹은 주방 스태프들을 만나서 ‘좋은 식재료’를 이야기한다. 대부분이 “우리 가게는 대중적인 집이라서 비싼 식재료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대답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비싼 것=좋은 것’이라고 믿는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제주도에 가면 ‘몸국’이라는 음식을 만난다. 대단히 비싸거나 고급 음식이 아니다. 몸국은 ‘모자반 국’이다. 돼지고기 국물에 국수나 밥을 만다. 이때 모자반을 넣는다. 어느 식당이나 “국물 낼 때 다시마 넣는다”고 하면서 정작 다시마와 비슷한 효능의 ‘몸=모자반’은 잊어버리고 있다.

모자반은 한때는 무침으로 먹었던 해초다. 모자반의 제주도 사투리가 ‘몸’이다. 돼지고기 살코기나 뼈를 우려 여기에 곡물을 넣는다. 맛이 심심하다. 여기에 모자반을 넣는다. 모자반은 조미료다.

경북 경주에 가면 팔우정해장국 골목이 있다. 골목의 원조는 ‘팔우정해장국’이다. 연세 든 할머니가 주인이다. 묵해장국과 선지해장국 등을 판다. 맛이 은은하면서 깊다. 어느 날 물어봤다. “할머니, 여기에 조미료는 뭘 쓰는가요?” 인공 조미료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작은 주방 선반에서 보여준 것이 바로 ‘말린 모자반’이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돼지고기 국물을 먹을 때 사용했던 ‘천연 조미료’다. 맛이 없을 리 없다.

다시마만 챙길 때가 아니다. 미역국도 맛있고 모자반 무침도 맛있다. 말린 모자반이 맛없을 리가 없다. 작은 식재료, 말린 모자반이 이 집의 핵심 식재료이자 마케팅 포인트다.

▲ 경주 팔우정해장국

 

주방이 아니라 홀에 있는 된장독

전주 ‘중앙회관’

▲ 전주 중앙회관

대도시 외식업체 홀에 장독대를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독대를 비치할 필요도 없다. 전주의 비빔밥 전문점 ‘중앙회관’ 홀 구석에는 장독대가 있다. 하루에 몇 번씩은 뚜껑을 열고 손님들에게 장독 안의 된장을 보여준다.

주인이 직접 장을 담그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전북 진안에서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담그고 딸이 운영하는 가게로 보낸다. 이런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전주 ‘중앙회관’의 마케팅 포인트는 엉뚱하다. 세 말들이 독을 식당 구석에 놓았다. 된장이 가득 들어 있다. 일주일 이상 쓸 된장을 이 독에 담아둔다. 손님들이 “이게 뭐냐”고 묻는다. 장독 뚜껑을 열고 된장을 보여준다.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다. “어머니가 진안에서 장을 담가서 보내준다. 일주일 정도 사용할 양을 여기에 보관한다.”

손님들은 감동할 수밖에 없다. 어떤 식당에서도 손님들에게 장독대나 된장 담은 독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중앙회관’에서는 “음식 맛이 좋다”는 말이 나오면 손목을 끌고 장독대를 보여준다.

“음식 맛은 장맛이다. 우리는 진안에서 장을 담가서 가게로 운반한 뒤 일주일 치씩 보관해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더 이상의 마케팅, 음식 설명이 필요치 않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연예인의 사진이나 사인보다 투박한 장독 하나가 가지는 힘이 훨씬 강하다. 전주 ‘중앙회관’의 된장독은 힘이 세다.

 

메밀 제분기와 메밀쌀 포대

서울 ‘무삼면옥’

▲ 서울 무삼면옥

얼마쯤은 엉뚱한 집이다. 2017년 여름, 냉면이 핫 아이템이었다. 서울 강남에만 여러 냉면 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냉면 마니아들은 이집 저집 다니면서 면을 평가하고 블로그에 포스팅했다. 이른바 ‘면스플레인’이라는 신종어도 나타나고 ‘냉면성애자’라는 표현도 나왔다. ‘먹방’마다 냉면을 내세웠다. 이 가게도 방송국의 ‘먹방’에 소개됐다.

마포의 ‘무삼면옥’은 조용한 골목에 있다. 손님은 꾸준하다. 문을 연 지 오래되지 않은 가게지만 ‘냉면성애자’들은 모두 이 집을 주목한다. 육수 등은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주방에서 꾸준히 개선하고 있는 것이다.

주방에서 주인이 직접 면을 만진다. 100% 메밀면도 가능하다. 주인, 종업원 모두 합쳐서 3, 4명을 넘지 않는다. 가게도 좁은 편이다. 그러나 냉면을 즐기는 이들, 막국수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꾸준히 주목한다. 음식은 냉면인지, 막국수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입구에 제분기를 설치했다. 그 옆에 보면 메밀 포대가 보인다. ‘메밀쌀’을 담았던 포대다. 이 포대를 보는 순간, 손님들은 “어, 진짜 국산 메밀을 제분하는가보네”라고 신뢰를 가진다. 메밀 포대에는 ‘강원도 봉평’이라는 글귀가 찍혀 있다. 국산 메밀을 구입해 직접 제분한다는 뜻이다. 메밀 포대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무삼면옥’의 음식을 믿는다.

‘무삼’은 세 가지가 없다는 뜻이다. 조미료, 인공 감미료, 색소. 실제 넣지 않는다. 일반 소비자들은 구분하기 힘들지만 제분기, 메밀 포대 등을 보면 믿을 수밖에 없다.

 

“구경시켜줄 게 있으니 따라와봐요”

서울 ‘제일콩집’

▲ 서울 제일콩집

어느 주간지에 소개할 목적으로 ‘제일콩집’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제법 긴 시간 인터뷰를 했다. 한식이라는 게 참 평범하다. 사진을 촬영해도 근사하게 나오기 힘들다. 인터뷰도 참 밋밋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자그마한 음식점을 열었고 성실하게 해서 성공했다. 무난한 이야기다. 이게 인터뷰로는 빵점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뭐, 좀 새로운 게 없을까?”라고 생각하는데 불쑥 주인이 “구경시켜줄 게 있다”고 일어섰다.

반전이었다. 건물 위에 창고가 있었다. 1년 사용할 식재료와 짧게, 길게 보관할 각종 식재료가 가득했다. 국산 콩을 담은 자루가 여러 개 있었다.

평범한 음식이다. 그러나 손님은 늘 많다. 외곽에 농장이 있고, 건물 위층에는 별도의 공간이 있다.

외식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공간이 넓은 식재료 냉장창고’를 가지는 게 꿈이다. 넓은 가게가 아니라도 언젠가는 식재료 냉장창고를 가지겠다고 꿈꾸는 이들을 많이 봤다. 좋은 식재료를 잘 보관했다가 손님들에게 더 맛있고 좋은 음식을 싸게 공급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에게 한 가지를 더 권장한다.

“식재료를 잘 보관하고 사용하는 것을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여주라. 오픈 주방이 유행이라면 앞으로는 ‘오픈 창고’가 필요하다.”

▲ 서울 제일콩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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