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9월호

[음식과 사람 2017-9 P.86 Food & Ingredient]

 

고마운, 가을걷이 삼총사 밤 대추 은행

 

▲ 이미지 = Pixabay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다. 밤, 대추, 은행은 가을의 대표적인 과실로 높은 영양가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추석 차례상은 물론 혼례에도 빠지지 않는 민속 과일이기도 하다. 이들 과실은 식품 가치 외에도 비만, 고혈압, 암 등 각종 성인병 예방에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해 최근에는 현대인의 힐링 푸드로 재조명받고 있다.

 

editor. 강보라

 

가을 열매는 뛰어난 약성(약재의 성질)이 특징이다. 강력한 태풍과 뜨거운 뙤약볕을 묵묵히 견뎌낸 과실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상징성을 가지기도 한다. 새 식구를 맞이하는 폐백에서 시부모는 신부의 치마에 밤과 대추를 던져주며 “아들 딸 쑥쑥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라는 덕담을 건넸다. 대수롭지 않은 의식 같지만 대추 한 알, 밤 한 톨에도 자식을 위한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대추’는 백 가지 유익함이 있는 붉은 열매란 의미로 ‘백익홍’이라 부르는데, 길한 과일이라 여겨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다. 대추 고임은 폐백상에서 시아버지 앞에 놓이는데, 열매가 주렁주렁 많이 열리는 대추는 다산과 풍요를 의미한다. 특히 대추는 씨가 하나 있는 과실로 남편에게 ‘다른 씨앗을 보지 마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한 송이에 세 알이 들어 있는 ‘밤’은 자식을 낳아서 삼정승에 이르도록 귀하게 키우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자손을 벼슬 할 큰사람으로 키우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씨앗은 썩어 없어지지만 밤은 땅에 심으면 밤나무가 다 자랄 때까지 뿌리에 붙어 있기 때문에 조상과 자손을 이어주며 잘 섬기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은행’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수종인데, 지금까지도 많은 결실을 맺을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약성을 가진 세 열매는 공통의 특징이 있다. 첫째는 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비바람과 폭풍우가 아무리 몰아쳐도 열매를 맺기 전에는 쉽사리 꽃이 지지 않는다. 둘째는 나무 한 그루에 많은 과실을 맺는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가장 좋은 미덕은 다산이다. 셋째로 이들 열매는 무척 단단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련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후대에 번창하고 단단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라는 의미를 투영하기에 가장 적합한 셈이다. 더욱이 맛과 영양, 약성까지 가지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과실이다.

 

“허, 이거 참 놀라운 보약일세~”

- 기력 회복에 탁월, 노화·치매 예방까지!

▲ 이미지 = Pixabay

밤은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과실이다. 민간에서도 기력이 쇠했을 때 밤을 많이 권한다. 밤은 허약한 사람들의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데, 다리에 힘이 없어서 잘 걷지 못하는 사람들의 기운을 보강해주는 데 탁월하다. 옛 문헌에 다리가 약해서 3, 4세가 되어도 걷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매일 밤을 먹였더니 걷게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성질이 따뜻한 밤은 맛이 달아서 위장 기능을 강화시키며, 배탈이나 설사가 잦고 땀이 많은 사람에게 좋다. 밤에 들어 있는 타닌 성분은 설사를 그치게 하고, 배고픔을 참게 해주는 효능도 있기 때문에 비만 치료용으로도 이용된다. 밤의 타닌 성분은 설사를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

젖먹이 어린애들이 설사를 할 때 밤을 껍질째 달인 물에 우유를 타서 먹이거나 밤을 암죽으로 만들어 먹이면 효과가 있다. 차가운 음식을 먹은 뒤 급성 장염에 걸렸을 때도 밤을 구워서 먹으면 나을 만큼 밤은 설사를 그치게 만드는 묘약이다.

아랫배가 차고 아파서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여성들도 밤을 먹으면 아랫배가 따뜻해지면서 생리통이 완화된다. 밤은 어혈이 풀려서 생리불순이 낫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좋은 과실이다. 밤의 효능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방에서 가시가 붙어 있는 밤의 겉껍질은 종기를 치료하는 약으로 쓰이고, 고동색 겉껍질은 코피가 나거나 대변에 피가 비칠 때 달이거나 가루로 만들어 먹는다. 옻 알레르기가 발생했을 때 밤나무 잎을 달여서 바르고, 피부염에는 줄기의 껍질을 달여서 바르거나 먹는다.

밤의 속껍질로 불리는 ‘율피’는 뇌신경세포를 보호하고 인지장애를 회복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밤이 치매 예방과 노화 방지에도 효과적이라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밤의 속껍질에 함유된 풍부한 폴리페놀 성분은 피부 미백 효과와 주름 완화 효능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밖에도 밤에 함유된 비타민A는 체내 점막 등의 면역계를 유지해주며, 비타민C는 항산화 효과와 함께 콜라겐 합성을 촉진한다.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비타민B6와 엽산도 밤에 많이 함유돼 있다. 이처럼 많은 효능이 있지만, 따뜻한 성질을 가진 만큼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 다량 섭취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대추 “효능이 열 손가락을 꼽아도 모자랄 지경”

- 한약·보신 음식에 빠지지 않는 팔방미인!

▲ 이미지 = Pixabay

예로부터 “대추를 보고도 먹지 않으면 늙는다”, “양반 대추 한 개가 하루 아침 해장”이라는 속담이 있다. 대추가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이야기다. 옛날부터 대추는 복숭아, 자두, 살구, 밤과 함께 오과(五果)라 해서 귀한 대접을 받았고, 한약을 달일 때나 삼계탕 등 보신 음식을 만들 때에도 빠지지 않았다. 이것은 대추가 모든 약과 잘 어울리기 때문인데, 특히 약의 부작용을 막아주고 위장이 상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대조(大棗)라 불리는 대추는 과일 중의 왕으로, 과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약재로 많이 쓰인다. 각 약재들의 성질을 서로 조화시키며 기를 보해주고 비장의 기운을 활성화해주는 데 특효가 있다. 옛날 민간에서는 이뇨제, 진해제, 영양제, 강장제 등으로 널리 사용됐다.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심장의 기운을 강하게 하며,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는 몸을 덥혀주는 효과를 낸다.

중국의 전설을 모은 동진시대의 <습유기(拾遺記)>에는 50세나 된 목왕이 동쪽 지방을 순시하다가 선녀계의 미인인 서왕모를 만나 잠자리를 하게 된 내용이 적혀 있다. 이때 서왕모가 잠자리에 들기 전 자신의 음부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왕에게 먹였고, 왕이 밤새도록 넘치는 정력을 과시했다고 씌어 있다. 그것이 바로 말린 대추였다고 한다.

대추는 신경을 안정시켜 불면증을 개선하는 데도 좋다. 실제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빠지지 않고 처방되는 약재 중 하나가 대추다.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거나 어깨 근육이 뭉쳐 잠을 못 이루는 이들에게도 대추가 많이 권해진다. 일반적으로 대추의 단맛을 내는 성분이 긴장을 풀어주고 흥분을 가라앉혀 불면증 해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대추 속의 사포닌 성분에도 주목한다. 사포닌은 중추신경 억제 작용, 진통 작용, 정신 안정 작용, 해열 작용 등으로 숙면을 돕는다. 특히 대추에만 함유돼 있는 고유한 사포닌 성분은 장기 복용을 해도 습관성이 되지 않아 약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대체제로 떠오르고 있다. 높은 항산화 활성 작용 역시 몸속의 노폐물 배출과 피로 해소를 도와 숙면을 취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와 함께 대추에서 가장 주목할 성분은 탄수화물이다.

마른 대추에는 100g당 무려 73.7g의 탄수화물이 포함돼 있다. 아침밥을 먹어야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말이 있는데, 탄수화물은 그만큼 뇌 기능 활성화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포도당 재료다. 신경 안정 작용도 뛰어나기 때문에 성격이 급한 사람이나 수험생에게 더없이 좋은 식품이며,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이 있어 몸이 차갑거나 감기에 자주 걸리는 사람이 대추차에 꿀을 넣어 상복하면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최근에는 대추가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피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간 기능을 좋게 하고 동맥경화와 뇌혈관질환 등을 예방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그 밖에도 대추의 효능은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랄 정도로 많다. 특히 최근에는 대추의 식이섬유가 발암 물질을 흡착해 몸 밖으로 밀어내는 항암 효과를 가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또 다른 항암 성분인 베타카로틴 역시 풍부하게 들어 있다. 비타민A로 활성화되는 베타카로틴은 노화를 방지하는 성분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평소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 과다 복용할 경우 복통이나 발열이 발생할 수 있고, 특히 설익은 풋대추를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할 수 있으므로 하루 4~8알 정도를 적절하게 섭취하는 것이 좋다. 몸에 체지방이 많고 소화가 잘 되지 않거나 땀이 많고 가래가 많은 사람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대추는 독성이 없어 오랫동안 장복해도 부작용이 없지만, 속이 더부룩하거나 갑갑하고 구토를 하거나 열이 많으면서 가래가 있는 사람은 섭취를 삼가도록 한다. 특히 대추는 당도가 높아서 많은 양을 먹게 되면 살찔 염려가 있으므로 적당량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대추나무의 열매만 몸에 좋은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대추나무 껍질은 설사가 날 때, 대추나무의 어린잎은 전갈에 물렸을 때 사용해왔다고 한다. 대추를 고를 때는 과육이 두껍고 단맛이 강한 것을 구입하고, 반점이 있거나 벌레 먹은 자국이 있는 대추는 피하는 것이 좋다.

 

은행 “혈액순환·탈모 개선에도 그만일세~”

- 인간의 장수를 도와주는 푸른 보약!

▲ 이미지 = Pixabay

은행나무는 1억5000만 년 전에 지구에 터를 잡은 장수목으로 알려져 있다. 수종이나 형태가 거의 변하지 않아 찰스 다윈은 은행나무를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렀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경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1100살로, 조선 세종 때는 정3품 벼슬인 당상직첩(當上職牒)을 하사받기도 했다.

은행(銀杏)은 모양이 은빛 살구 같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글을 읽고 제자를 가르쳤다는 의미로 행단(杏壇)으로 불리기도 한다. 옛 사람들은 은행나무가 장수하기 때문에 열매인 은행도 장수를 돕는 식품이라 믿었다.

은행은 예로부터 몸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자양강장 식품으로 여겨져왔다. 은행에는 신경 조절 성분인 레시틴과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돼 있어 피로감을 쉽게 느끼거나 신경이 쇠약해진 사람들에게 좋다. 은행은 성욕 감퇴 개선에도 좋은 음식이다. 은행에는 정력 강화에 효과를 보이는 카로틴이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평소 기침이 심하고 호흡기가 약하다면 은행을 먹을 것을 추천한다.

은행에는 면역력을 높이는 비타민C가 다량 들어 있다. 이 때문에 감기 예방에 효과가 있고, 기침과 가래를 멎게 하는 진해 거담 작용이 있어 기침 가래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 또 폐와 기관지를 보호하기 때문에 천식이나 기관지염 같은 호흡기 질환 개선에도 효과를 보인다.

은행은 익혀 먹으면 쫄깃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어 주로 볶아 먹거나 전골 등의 음식에 고명으로 이용된다. 밤이나 대추 등을 함께 넣어 영양밥으로 먹어도 좋다. 하지만 은행 속에는 청산배당체나 메틸피리독신, 아미그달린 등의 독성 물질이 들어 있어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섭취하거나 충분히 가열하지 않고 섭취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성인의 경우 하루 5, 6개 정도 먹을 경우 강정 효과와 함께 혈관을 건강하게 하는 효능을 볼 수 있다. 덜 익은 열매일수록 청산 화합물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조리해서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한꺼번에 150개 이상 은행을 먹을 경우 구토와 호흡 곤란 등 중독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학계의 보고도 있다. 은행 표피에는 알레르기 질환을 유발하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은행을 수확한 뒤 껍질을 벗길 때 특이체질이나 알레르기 질환이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은행의 대표적인 성분으로 꼽히는 것은 플라보노이드이다. 이 성분은 혈관을 보호하고 모세혈관 벽을 강화하는 효능이 있어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은행 속 레시틴이라는 성분은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은 탈모에도 좋다. 이 역시 혈류의 흐름을 좋게 해주는 효능 때문이다.

탈모는 두피의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기는 경우가 많다. 모세혈관까지 혈액이 원활히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흰머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은행을 섭취하면 혈액순환을 돕고 혈관 벽의 탄력성을 좋게 해 모근까지 충분히 영양이 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은행잎도 열매만큼 건강에 도움이 되는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 은행잎에는 징코라이드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모세혈관의 확장에 관여해 혈압 조절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잎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약품 ‘징코민’도 천연 혈액순환 촉진제였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선 은행잎 추출물로 만든 혈액순환제가 혈관 장애나 치매증, 뇌기능 개선제로 판매되고 있다.

은행잎은 잘 말려 차 등으로 섭취하면 좋은데, 가을철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아닌 4~7월경의 초록빛 은행잎만 해당된다. 은행나무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은 뛰어난 살충·살균 효능을 보인다. 실제로 은행잎을 책갈피에 끼워두면 멋스럽기도 하지만 책에 좀이 스는 현상도 없어진다. 옛사람들은 잎을 헝겊에 싸서 집안 구석에 놔둬 해충 등이 없어지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요즘처럼 매스컴이 발달하고 광고가 넘치는 세상에서는 특별한 약이나 유행 따라 변화하는 음식을 알리는 정보가 쏟아진다. 하지만 오랫동안 변함없이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부작용이 적고 효능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가장 흔하고 구하기 쉬운 것들이 명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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