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y Talk

[음식과 사람 2017-10 P.57 Easy Talk]

 

계란이 먼저냐, 살충제가 먼저냐?

 

editor. 박태균

 

‘계란이 먼저냐? 살충제가 먼저냐?’

‘살충제 계란’ 사태 이후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소비자가 수두룩하다. 계란을 먹자니 건강이 우려되고, 계란을 외면하자니 그만한 식품을 찾기 쉽지 않아서다.

일반인은 살충제 계란 사태 등 식품안전 관련 리스크(위험)가 문제 될 때 대부분 실상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식품안전 관련 리스크에 대한 일반인과 전문가의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서로 소통이 잘되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전문가는 독성학 등 과학 지식을 토대로 리스크를 분석한다. 이들은 확률이 극히 낮은 리스크에 대해선 ‘리스크가 없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리스크로 생기는 피해가 바로 나타나는, 식중독균 등 미생물에 의한 식품 사고를 중시한다. 일반인은 대부분 리스크를 치명적인 수준으로 인식한다. 과도한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각종 식품에 잔류하거나 오염된 농약, 중금속, 식품첨가물 등이 리스크에 특별히 민감한 사람에게도 안전한 수준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스크에 의한 피해가 당장 일어나지 않더라도 수 년 내지 수십 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일반 소비자가 잔류 농약, 중금속 등 화학물질에 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일반인은 흔히 리스크를 자발적인 리스크와 비(非)자발적인 리스크로 분류한다. 흡연, 음주 등 자신의 선택에 의한 자발적인 리스크는 식품안전 사고나 공해 등 비자발적인 리스크보다 훨씬 가볍게 받아들인다.

일반인은 유해물질의 유무, 전문가는 유해물질의 양을 중시한다. 1958년 미국의 제임스 델라니(뉴욕ㆍ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른바 델라니 조항(Delaney Clause)을 발표했다. 델라니 조항의 요체는 발암물질은 식품에 일절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관용(Zero Tolerance)주의였다. 이에 따라 발암성이 의심된 농약, 식품첨가물, 동물용 의약품이 소량이라도 함유된 식품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1988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델라니 조항이라는 ‘장벽’을 허물었다. 설령 발암물질이 들어 있어도 양이 극히 적어 건강에 해를 미치지 않는다면 사용을 허가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델라니 조항이 용도 폐기되면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리스크 평가(Risk Assessment)다. 특정 유해성분이 포함된 식품의 섭취로 야기되는 건강상의 악영향(리스크)을 과학자가 정밀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식품이든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다. 김치를 항암식품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유해물질이 극소량 들어 있을 수 있다.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모유에도 유해물질이 함유돼 있다. 사과는 건강에 유익한 과일이지만 소독제 성분이 포함돼 있다. 우리가 김치나 사과를 먹고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은 손익 계산 시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살충제 계란 파동 등 식품안전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해당 오염·유해물질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얼마나 들어 있느냐를 살펴야 한다. ‘독성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위스의 의사 필리푸스 파라셀수스는 이미 500여 년 전에 ‘독은 곧 양(Dose is Poison)’이라고 했다. 세상에 독이 없는 것은 없으며,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물과 밥도 극단적으로 과량 섭취하면 독이다.

 

[박태균] 국내 유일의 식품의약 전문기자. 고려대 건강기능식품연구센터 연구교수,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회장,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겸임교수, 서울대 초빙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한국기자상, 올해의 과학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음식과 건강>, <먹으면 좋은 음식 먹어야 사는 음식>, <남의 살 탐하는 104가지 이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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