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7-10 P.65 Food  Essay]

 

검정빵과 니싱소바, 그리고 짜장면

 

 

editor. 윤동혁

 

온통 맛에 감동한다. 셰프는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가 샘솟아나는지 모양새 좋고 맛은 더 죽여준다며 요리 접시를 끝없이 내놓는다. 리모컨이 헤매고 다닐 수 있는 채널은 자꾸 늘어나고, 그만큼 음식 프로그램도 생겨난다. 셰프는 그렇다 쳐도 음식을 맛보면서 그 맛을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연예인들을 보면 때때로 안쓰럽다.

입을 통해 음식이 들어가는 장면을 화면 가득 보여주는 것도 도가 지나치다. 이제 식당은 그냥 배만 채우고 가는 장소가 아니라 손님의 마음(거창하게 말하면 영혼)도 달콤하게 채워주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권 받으려면 한국반공연맹에 가서 3일이나 ‘교양’ 연수를 받아야 했던 1970년대 중반부터 해외를 많이 다녔다. 사람들이 묻는다. 어느 나라가 가장 좋더냐? 대답할 수 없다. 가보았던 나라(나라라고 해봤자 취재 지역 몇 군데)의 특징 같은 걸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나라와 나라를 비교해서 어찌 순위를 매길 수 있단 말인가.

음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 음식이 제일 맛있더냐? 역시 대답할 수 없다. 내가 맛본 몇 안 되는 음식을 놓고 어찌 한 나라의 음식을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맛의 순위에 대신해서 ‘음식 감동 시리즈’를 풀어놓는다.

 

우선 밥맛 떨어지는 이야기부터

독일의 시골 마을, 소박한 민박집에서 아침상을 받았다. 어디에 부딪치면 딸그락 소리가 나는 딱딱한 검정빵에 자디잔 베이컨 몇 조각, 그리고 형식만 갖춘 채소 샐러드 한 접시가 전부였다.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초라한 아침상을 앞에 놓고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아, 이게 독일의 맨 얼굴이고 문화고 역사로구나. 유색인종을 깔봐서가 아니라 그들의 아침도 나와 같았다.

 

일본 나가노현 깡촌 마을의 단 하나밖에 없는 식당

그곳에 들른 것이 오후 2시쯤, 다들 배가 많이 고팠다. 그 집은 면류 전문이었다. 나는 산채소바를, 미식가인 카메라맨은 니싱(청어)소바를 주문했다. 니싱소바는 구운 청어 한 마리를 소바 위에 통째로 올려놓은 것인데 나는 딱 한 번 먹어보고는 리스트에서 빼버린 음식이다.

카메라맨은 그 비린 소바를 다 먹더니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 먹겠다고 했다. 혼자 가게를 지키던 여주인(종업원일지도 모른다)이 미안하다고, 점심 때 밥이 다 떨어졌노라고 고개를 몇 번이나 숙였다.

“야, 카메라에서 비린내 풍길라. 포기해라.”

그런데 여주인이 다가오더니 “마을의 집에 가면 밥이 있으니까 좀 기다려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식당은 길가에 있었고 마을은 길 건너 200m쯤 떨어진 곳이었다. 그녀는 마치 선착순 얼차려를 받는 신병처럼 뛰어나가더니 잠시 모습을 감췄다. 그러고는 금방 다시 놀라운 속도로 달려왔는데, 우리는 유리창을 통해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카메라맨은 국물에 밥을 말면서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베트남 호찌민의 짜장면 전문 식당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국 아빠와 베트남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종업원이고, 사장님은 그 아이들이 전부 짜장면집을 차려 독립하기를 원했다. 섬유공장이나 가방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직공들이 이 집 짜장면을 참 좋아했다. 사장님의 꿈은 곧 실현될 것 같았지만 7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났다. 성은 정씨였고 나보다 열 살쯤 위였다. 짜장면을 먹을 때면 정씨 형님 생각에 가슴이 짠하다.

왠지 ‘먹방’의 순화와 진화가 곧 시작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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