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7-11 P.65 Food  Essay]

 

아름답다, 시골 식당의 작은 푯말

 

editor. 윤동혁

 

오후 2시 넘어서, 그것도 한적하기 그지없는 산골 마을에서 점심을 먹으려 하니 뭔가 룰을 어기는 느낌이 들었다. 식당은 서너 곳 눈에 띄었으나 동네 전체가 적막 속에 잠겨 있는지라 차라리 원주나 충주 쪽으로 나갈까… 엉거주춤 진로 모색을 했다. 이런 시간이라면 대처(시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을 밀고 들어설 때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아주 편한 상태로 누워 계시다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는, 그래서 도로 나가지도 못하고 썩 내키지 않은 채 (미안한 마음까지 품고서) 불편한 식사를 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준비시간(브레이크 타임) 오후 3~5시

저녁 준비와 주방 정돈 시간입니다.

잠시 문을 닫고 빠른 시간에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식 세계화를 외치기 전에 ‘준비 중’, ‘영업합니다’ 이런 푯말을 식당마다 준비해서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시간 날 때마다 읍소하다시피 부탁해왔지만 아직도 그런 푯말들은 (최소한 내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

그런데 적막하기 그지없는 산골 마을에서, 원주나 충주로 나갈까 망설이던 바로 그 엉거주춤하던 순간에 나의 눈을 사로잡은 저 푯말! 읽어드리겠다.

오후 3시까지는 충분히 식사를 마칠 수 있다. 사소한 걱정이 다 사라지니 자신 있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주인아주머니는 충청도, 강원도 그 어느 쪽도 아닌 서울분이셨다. 신랑 고향에 와서 식당을 차렸는데 ‘돌판 돼지고기’ 딱 한 가지로만 승부를 건다고 했다. 예상대로 2인분 이상 주문을 해야 했는데 추가는 1인분도 가능했다. 주방에서 이미 완성시킨 돌판 돼지고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상 위에 올랐다.

직접 굽지 않고 달아오른 돌판에다 돼지고기를 얹어놓은 채 먹기는 처음이다. 뜨거운 기운이 오래 지속되어 고기가 식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은 사라졌고, 처음 나올 때부터 파절이가 듬뿍 올라앉아 있었기에 상추나 깻잎에 싸 먹기 편했다. 게다가 상추, 깻잎, 풋고추는 다 텃밭에서 따왔다고 하니 싱싱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기 맛이 덩달아 좋아졌다.

우리는 숯불구이를 최고 또는 정석이라고 확신한다. 숯에서 내뿜는 열기 속에는 원적외선이 함께 배출돼 고기를 속에서부터 익혀주는 특별한 기능도 있다. 그러나 번개탄에 가까운 불량 숯을 사용하면 이산화탄소를 많이 마시게 되고, 또 고기 표면이 검게 타서 발암물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어쨌든 정석대로 구워 먹으면 방송으로 치자면 생중계로 즐기는 것이고, 주방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내오면 녹화방송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할 것이다.

나와 친구는 1인분을 추가로 주문했다. 냉장고에는 작고 예쁜 병들이 무수히 진열돼 있어서 무언가 살펴보았다. 잼이었다. 딸기, 포도, 키위 등등 갖가지 재료의 잼들이 도저히 하나만 고를 수 없게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집에 미륵산 된장집에서 준 오디잼이 큰 통에 가득 들어 있었지만 예쁘고 작은 병의 시골식당 아줌마표 잼을 3병이나 샀다.

그리고 나오면서 브레이크(휴식) 안내 푯말을 다시 바라보았다. 웬만하면 이 집에 다시 오고야 말리라. 올 때마다 잼을 몇 개씩 사서 큰딸도 주고 곤충농장 마누라에게도 갖다 줄 것이다. 휴식시간을 알리는 안내 푯말을 진심으로, 정성스럽게 써서 붙여놓은 아주머니가 아름답고 고맙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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