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지면으로 떠나는 벤치마킹 투어

[음식과 사람 2017-11 P.62 Benchmarking Tour]

 

▲ 이미지 = Pixabay

외식업체 대표들은 늘 “어디 가서, 뭐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음식부터 경영 기법까지 배우고 싶은 것은 많다. ‘잘나가는’ 가게 주인은 시간, 경비가 넉넉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영이 어려운 가게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각 지역별, 음식별로 ‘지면 벤치마킹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사정상 못 가보는 분들이 ‘힌트’라도 얻기를 바란다.

 

editor / photo. 황광해

 

“괜찮은 아이템 없어요?”

외식업 창업자나 운영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다. 이렇게 답한다.

“많고도 많다. 찾아보지 않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니 보이지 않을 뿐이다.”

실제 그렇다. 숱하게 많은 집들이 성업 중이다. 그중에는 대박이 난 가게도 있고 좋은 아이템인데 돈을 까먹는 가게도 있다. 아이템은 많다.

외식업체의 아이템은 잘되는 가게의 것을 보고 참고해야 한다. 잘되는 가게 아이템을 베끼고, 그보다 좀 더 나은 음식, 스토리가 있는 음식을 만들면 된다.

웬만한 음식점 아이템은 이미 다 나왔다. 일본, 홍콩까지 가서 새로운 아이템을 배워 오는 이들도 많다. 일본에 대단한 아이템이 있을 리 없다. 일본의 히트작도 대부분 베끼고 새롭게 변형한 것이다. 일본은 일찍부터 서구화했고 서양의 음식, 문화를 받아들였다. 서양 음식과 동양, 일본의 음식을 섞고, 거르고, 얼마간 변형한다.

섞고, 비비고, 얼마간 변형하는 일은 우리도 잘한다. ‘일본 벤치마킹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베끼되 잘 베끼고, 베낀 것을 바탕으로 나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굳이 외국까지 나갈 필요도 없다. 우리 음식을 베끼고, 새롭게 해석해 창조해도 좋다.

 

“창조적으로 베껴라”

떡볶이가 유행이라고 해서 남 따라서 떡볶이집을 내면 망한다. 베끼되 잘 베껴야 한다. “저 집 음식보다 내가 나은 것 같은데 저 집은 잘되고, 나는 망했다”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저 집’이 잘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정작 잘되는 이유는 모른 채 그대로 따라 하면 반드시 망한다. ‘저 집’의 잘되는 이유를 확실히 파악하고, ‘저 집’과는 다른 무기를 장착해야 한다. ‘저 집’만큼 해내는 것은 모방, 베끼기지만 ‘저 집’과는 다르게 내가 해내는 것은 창조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모방, 베끼기에서 시작한다. 새로운 나만의 것을 창조하기는커녕 제대로 베끼지도 못하는 이들이 “비슷하게 했는데, ‘저 집’보다 나은데, 망했다”고 이야기한다. 비슷하게 할 것이 아니라 확실히 ‘저 집’을 넘어서야 한다.

비슷하게 베끼면 짝퉁이지만, 확실히 베끼고 나만의 것을 덧붙이면 ‘재해석’이다. 단순히 베낄 것이 아니라 재해석을 해야 한다. 재해석은 새롭다. 새로운 것은 창조다.

 

“진주 음식을 베끼다”

100년 넘은 진주비빔밥 종가

[진주 ‘천황식당’]

조선시대 진주(晋州)는 ‘삼남(三南)에서 손꼽히는 큰 도시’였다. 삼남은 호남, 충청, 전라를 일컫는다. 서울, 경기 이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큰 도시였다. 큰 관청이 있었고, 고급 관리들도 많았다. 영남치고는 물산도 풍부했다. 바다도 가깝고 평야도 넓다. 지리산도 가깝다. 음식이 발전할 여건을 고루 갖췄다. 진주 음식은 화려하고 풍부한 음식이었다.

지금 진주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가 ‘천황식당’이다. 이른바 진주비빔밥의 종가다. 진주 음식, 진주비빔밥을 벤치마킹할 만한 곳이다. 딱 하나 베낄 수 없는 게 있다. 천황식당의 업력이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천황식당의 업력을 이길 방법은 없다. 이미 100년을 훌쩍 넘긴 업력을 따라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다른 가게에서는 진주 음식이나 진주비빔밥을 내놓을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또 다른 진주 음식 노포

[울산 ‘함양집’]

천황식당 100년의 역사에 필적하는 가게가 울산에 있다. ‘함양집’이다. 1924년에 문을 연 집으로 알려졌다. 천황식당보다는 20년쯤 뒤졌지만 역시 노포다. 함양집은 진주 인근 함양군과 관련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함양군은 진주 문화권이다. 진주에서 그리 멀지도 않다. 함양집의 음식은 결국 진주 음식이다.

천황식당과 함양집의 음식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천황식당의 진주비빔밥은 대한제국 시기, 일제강점기에 진주 ‘나무전 거리’ 인근에서 대중적으로 팔던 음식이다. 진주비빔밥은 고위 관료들, 반가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도 먹었다. 이른 아침 나무전(廛)에 나무를 팔러 온 이들이 편하게 한 그릇 먹었던 음식이다. 선지국을 내놓는다. 가까운 곳에 날고기를 파는 이들이 있었으니 육회도 한두 점 올렸을 것이다.

함양집의 음식은 진주(함양군) 음식이지만 다르다. 함양집을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함양집 비빔밥에 고명으로 올라온 전복을 특이하다고 여긴다. 함양집의 전복은, 말하자면 함양집의 상징물인 셈이다. 날전복이 대단한 맛을 지닌 것은 아니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시각적으로 전복은 대단한 역할을 한다. 고급스럽다.

그릇도 다르다. 천황식당의 오리지널 비빔밥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아 낸다. 투박하고 서민적인 느낌이다. 함양집의 비빔밥 그릇은 유기(鍮器)다. 고급스럽고 넉넉한 느낌을 준다. 식탁도, 내부 인테리어도 모두 다르다. 천황식당은 서민적인 느낌으로, 함양집은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각각 성공한 것이다. 함양집이 천황식당을 베낀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벤치마킹이 아니다. 함양집은 울산에 자리 잡으면서 울산에 맞는, 고급스러운 진주비빔밥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진주 음식의 창조적인 베끼기

[‘진주부엌 하모’]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사거리 부근의 ‘진주부엌 하모’는 또 다른 경우다. 진주 음식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는 앞의 두 외식업체와 같지만, 음식의 내용이나 경영 방식 등은 전혀 다르다. 진주비빔밥은 함양집이나 천황식당과 닮은 면이 있지만, 하모는 한상차림 밥상에 서양식 코스 요리 방식을 빌렸다.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면서 가격대도 비싸다.

그야말로 진주 음식으로 치자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전통을 가져왔지만 새롭게 해석했다. 재해석하고 창조했다.

만약 오래전 진주 관청에 잔칫상이 있었다면 오히려 ‘하모’의 음식과 같은 밥상이 차려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고급스러운 육전이 있는가 하면 진주, 통영 일대에서 서민들이 늘 먹었던 ‘빼때기죽’도 내놓는다. 빼때기죽은 납작하게 썰어서 말린 고구마를 끓여 만든 ‘고구마죽’이다. 주전부리로 내놓기도 하고, 가난한 이들의 식사 대용 음식이기도 했다.

‘한식 세계화’는 철저한 로컬라이징(Localizing, 지역화·현지화)에서 시작된다. 철저한 상업화는 외식업체의 근본인 음식에서 시작돼야 한다.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는 대박을 꿈꾼다면 외식업체의 기본인 음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모는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면서 진주 음식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광화문에서 맛보는 진주 음식

[‘소문’]

서울 광화문에는 진주 음식을 내놓는 ‘소문’이 있다. 주상복합 건물 지하에 있다.

내놓는 음식 중에 대구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구전은 상당히 비싼 음식이다. 내륙이지만 진주 정도면 반건조 대구도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 대구를 구할 수 있었을까? 진주에서 대구전을 먹었을까?”라고 묻는 것은 우문이다. 진주는 큰 도시였으니 대구전을 먹지 않았을 리 없다. 진주 음식 전문점이고 대구전을 내놓으니 소비자,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찾는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 외식업체의 저녁 술안주 아이템으로는 안성맞춤이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한식과 한식의 장(醬), 김치, 식초(食醋) 등에 관심이 깊다. 현재 동아일보에 ‘역사 속 한식 이야기’를 연재 중이며 <한국 맛집 579>, <줄 서는 맛집>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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