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야기

[음식과 사람 2017-11 P.88 Food & Ingredient]

 

한국인의 소울 푸드 '돼지고기' Part.1

 

▲ 이하 사진 = Pixabay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민 1인당 육류 소비량은 46.8㎏으로 그중에서도 돼지고기 소비량이 가장 많았다. 또한 농촌진흥청의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3명은 일주일에 한 번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답할 정도로 한국인은 유독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editor. 이선희 /

참고도서. <글로벌 시대의 음식과 문화> (우문호 외, 학문사 刊) /

참고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한돈자조금위원회 한돈닷컴

 

[해로운 음식에서 서민 대표 메뉴로 변신]

-조선시대엔 소고기에 밀려 찬밥 신세, 1970년대 이후 소비 증가

한자 ‘집 가(家)’자를 보면 ‘집 면()’자 아래에 ‘돼지 시(豕)’자가 있다. 이렇듯 돼지는 인류와 오래전부터 함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8000년 전부터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면서 야생의 돼지를 길들여 가축으로 키운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돼지가 등장하는 역사는 아주 깊다. 부여를 건국한 동명이 죽을 뻔한 위기의 순간에 돼지의 도움을 받았다는 건국 신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한 고구려 주몽의 건국 신화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돼지가 등장한다. 신화 외에도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유리왕 19년에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낼 때 돼지를 제물로 삼았다는 것과 21년에는 돼지를 뒤쫓다가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돼지를 일찍부터 사육한 데 비해 지금처럼 돼지고기를 즐겨 먹지는 않은 듯하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영향으로 육식을 금했고, 조선시대에는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 중심의 육식 문화가 자리 잡았다. <태종실록>에는 ‘명나라 황제가 말하기를 조선 사람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사신들에게 소고기나 양고기를 주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에는 유독 돼지고기가 인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당시 돼지를 키우는 목적이 있었다. <성종실록>에 실린 성종 12년 5월 경기도관찰사 손순효의 상소에는 돼지고기가 제사를 지내거나 손님을 대접할 때 쓰인다고 적혀 있다. 그래도 돼지고기 요리법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다.

정부인 안동 장씨가 쓴 조리서 <음식디미방>에는 멧돼지와 집돼지고기 삶는 법이 기록돼 있고, 빙허각 이씨가 정리한 <규합총서>에는 기름장을 바른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 방법이 적혀 있다. 양반가에서는 주로 찌거나 삶는 조리법으로 돼지고기를 먹었다면 서민들은 국으로 끓여서 여러 사람이 나눠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몇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풀을 먹는 소에 비해 돼지는 감자나 콩, 곡물 등 사람이 먹는 것을 사료로 한다. 당시 작물 생산성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던 터라 사료가 많이 드는 돼지를 사육하는 것은 어려웠을 듯하다. 또한 돼지고기는 해로운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규합총서>에는 ‘돼지고기는 본디 힘줄이 없으니 몹시 차고 풍을 일으키며 회충에 해롭고, 풍병 있는 사람과 어린애는 많이 먹으면 못 쓴다’고 했고 <임원경제지>에는 돼지고기는 약간의 독이 있어서 오랫동안 먹으면 온몸의 근육이 아프며 기력이 없어지고 약효가 받지 않는다고 소개돼 있다. 앞서 말했듯이 돼지는 설화나 신화 속에서 신비한 힘을 지닌 신성한 동물로 비춰진다. 이것이 조선시대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기피한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돼지고기를 지금처럼 먹게 된 건 1970년대 이후부터다. 당시 정부가 소고기값 폭등을 막기 위해 돼지고기 소비 권장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 양돈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서민들이 소고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돼지고기를 즐겨 먹을 수 있게 됐다.

또한 냉장고가 대중화되면서 고기 보관이 쉬워진 것도 한몫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식육가든 식당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돼지고기 소비를 이끌었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외식, 회식 메뉴가 소고기에서 삼겹살로 바뀌게 되었다. 이때부터 삼겹살이 대중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오늘날까지 서민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인들의 유별난 돼지고기 사랑… 쌀 생산도 추월]

- 1인당 약 23kg 소비… 도축한 지 3~5일 이내가 가장 맛있어

지난해 우리나라 농업 분야에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돼지 생산액이 6조8000억 원, 쌀 생산 추정액은 6조5000억 원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쌀이 2위 자리로 밀려난 것이다. 우리 민족의 주식(主食)인 쌀 생산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편에선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별난 돼지고기 사랑을 감안하면 예견된 결과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0년 사이 돼지고기 생산량은 30.3%, 국민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28.7% 증가했다. 지난해 돼지고기 생산량은 88만2000톤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국민 1인당 23.3kg을 소비했다.

우리나라 돼지고기 시장은 요크셔, 듀록, 랜드레이스 교잡 돼지 품종인 삼원교배종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하얀 백색 돼지로 성장 속도가 빠르고 고기 생산량이 많아 양돈업계에서 많이 키운다. 1960년대까지는 우리의 토종 돼지를 사육하기도 했으나 외래종에 비해 자라는 속도가 더뎌 흰색 계통 돼지로 품종이 바뀌었다.

제주도에서 먹을 수 있는 흑돼지는 대부분 재래 흑돼지와 외국산 품종을 교잡해 개량한 것이다. 제주도 재래 돼지 혈통의 고유성을 지닌 토종 흑돼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며 축산진흥원에서만 사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돼지고기 전문 음식점을 중심으로 흑돼지나 갈색돼지 품종 돼지고기를 파는 등 새로운 맛과 육질을 선보이며 돼지고기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중이다.

고기는 도축 후 강직 상태에 들어가는데 단백질 조직을 풀어주는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사후 강직이 풀리는 데 1, 2일이 소요되며 이 기간 동안 숙성이 이뤄진다. 다만 지나치게 숙성된 고기는 신선도가 떨어진다. 숙성은 돼지고기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단계로,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돼지고기는 도축한 지 3~5일째 되는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드라이에이징 등 최근에는 까다로운 환경 조건에 따라 고기를 숙성시키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지만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돼지고기가 유통되고 있는 동안에도 숙성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유통기한 내에 구입한 제품의 도축일자를 확인하고 도축한 지 3~5일 내에 먹어야 돼지고기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밝혔다.

신선한 돼지고기는 살 전체가 분홍색에 가깝고 고기 결이 고우며 탄력이 있다. 지방의 색이 희고 견고한 고기가 대체로 연하고 잡내가 없으며 맛있다. 특히 삼겹살은 지방과 살코기 색이 선명하게 대조되는 것이 좋은 상품이다. 또한 칼질을 할 때 끈기가 있고 지방이 약간 묻어나는 것이 좋다. 돼지고기 색깔이 지나치게 창백하면 조리 시 질감이 퍽퍽해지며 씹을 때 푸석푸석해져 맛이 좋지 않다.

반대로 붉은색이 지나치게 진하면 늙은 돼지이거나 오래 보관된 고기일 가능성이 높다. 고기 표면이 갈색이나 녹색을 띠거나 혈액이나 이물질이 묻어 있는 고기는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있거나 부패 우려가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부위별로 조리 용도가 달라지는 팔방미육(肉)]

- 저지방 고단백 부위부터 풍미가 좋은 부위까지 메뉴 따라 선택

돼지고기 살코기는 크게 7가지 부위로 나뉘고 세분하면 25가지가 된다. ▲안심(안심살) ▲등심(등심살, 알등심살, 등심덧살) ▲목심(목심살) ▲앞다리살(앞다리살, 앞사태살, 항정살, 꾸리살, 부채살, 주걱살) ▲뒷다리살(볼기살, 설깃살, 도가니살, 홍두깨살, 보섭살, 뒷사태살) ▲삼겹살(삼겹살, 갈매기살, 등갈비살, 토시살, 오돌삼겹살) ▲갈비(갈비, 갈비살, 마구리)로 나뉜다.

등심은 등에 길게 형성된 단일 근육으로 운동량이 적어 육질이 부드럽다. 고기의 결이 곱고 지방이 없는 저지방 고단백 부위로 다이어트 식재료로 활용도가 높다. 돈가스, 탕수육, 장조림, 스테이크, 불고기 등에 이용된다. 목심은 등심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부위로 근육과 근육 사이에 소량의 지방이 고르게 분포돼 있어 부드럽고 풍미가 좋다. 돼지고기의 지방과 살코기 비율이 적당하며 육즙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소금구이로 구워먹으면 제격이다. 그 외에도 주물럭, 보쌈, 수육으로 조리하기에 적합하다.

앞다리살, 뒷다리살은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은 부위로 다용도로 조리할 수 있는 부위다. 불고기, 주물럭, 찌개는 물론 앞다리살은 수육, 보쌈, 카레용으로 많이 쓰고 뒷다리살은 돈가스, 잡채, 탕수육에도 잘 어울린다. 안심은 허리 부분 안쪽의 지방이 거의 없는 근육으로 등심보다 더 부드럽고 연하다. 장조림, 탕수육, 구이, 스테이크, 꼬치구이로 요리하면 담백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갈비는 옆구리 갈비의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를 말하며 뼈에서 나오는 골즙과 육즙이 어우러져 특유의 감칠맛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주로 찜갈비, 생갈비, 양념갈비, 바비큐 등으로 조리한다. 삼겹살은 근육의 지방이 삼겹으로 층을 이루고 있는 복부 근육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위로 꼽힌다. 구워 먹는 조리법이 가장 대표적이며 삼겹살을 염지한 후 훈연해 만든 베이컨으로도 많이 즐긴다. 삼겹살에 붙어 있는 껍질을 제거하지 않으면 오겹살이 되는데, 껍데기와 안쪽 살코기가 더해져 총 5겹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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