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7-12 P.65 Food  Essay]

 

이런 유혹이라면 넘어갈 만하다

 

▲ 이미지 = Pixabay

editor. 윤동혁

 

방송사의 간부급 프로듀서 시절엔 말 안 해도 비행기 표가 비즈니스석이었는데 이젠 저가항공사를 이용하면서도 주머니 눈치를 본다. 그러니 일본을 가든 미얀마에 떨어지든 새벽부터 카메라 들고 나가서 밤늦게 숙소(말하면 뭐하나, 사람 하나 누우면 빠듯한)에 돌아와 그날 촬영 분을 노트북에 옮기고 샤워하면 맛집 탐험 따윈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된다.

도쿄에서 전철로 1시간, 사이타마현의 가와고에(川越)로 갈 때 큰맘 먹고 반나절 시간을 뺐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고마 진자(高麗神社)가 30분 거리였으니 촬영을 일찌감치 끝내고 빗길을 냅다 달렸다. 얼마 전에 일본 왕이 찾아가 절을 올린 바로 그 신사가 아니더냐. 고구려 유민들을 제사 지내는 고마 진자는 일본의 ‘천황’도 자신의 뿌리가 조선반도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는 장소다. 아베 총리는 속이 매우 쓰라렸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날은 저물어 바야흐로 술시! 제법 길게 뻗어나간 유흥가로 향했다. 돈을 아끼려면 군만두에 생맥주나 한두 잔 걸치면 될 일이었으나… 저 봐라. 진열장을 통해 보이는 저 구시(串·꼬치구이)의 강렬한 유혹에 식욕이 폴폴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돋아나지 않는가. 비가 와서 쌀쌀하니 가고시마 특산인 기리시마(고구마소주)를 데워 가마보코(오뎅탕)와 함께 이 밤을 따끈따끈하게 보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데 여기도 관광지라서 그런가. 속칭 ‘삐끼’들이 전단지나 식당 간판을 든 채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들의 사열을 받으며 걸어가고 있는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처자가 나를 낚아채려 다가왔다.

“저녁 식사하실 거면… 손님, 혹시 생선 좋아하시나요?”

“음… 그런데 먹을 게 너무 많군.”

“우리 가게에 가시면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서 비행기나 신칸센으로 날아온 싱싱한 생선들을 드실 수 있거든요.”

나는 갑자가 오키나와의 모즈쿠(큰실말·해초)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바다포도가 먹고 싶어졌다. 결국 나는 그 집에 가서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이이치코’라는 브랜드의 고구마소주(일본의 소주는 사케보다 비싼 명품들이 즐비하다)를 시켰다. 입술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뜨겁게 말아달라고 했다. 이이치코는 혀가 돌돌 말리게 감미로웠고, 모즈쿠 다음으로 시킨 정어리회(위 사진)는 가격이 단돈(!) 7000원이었는데 그 예술적인 모양새와 신선도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그때 번뜩 이 감칠맛 나는 소주의 상표명 ‘이이치코’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이치코는 딸기라는 말인데 이이치코는?

귀여운 삐끼 처자가 새 손님을 모시고 가게로 들어왔을 때 물어봤으나 자기는 모르겠노라고 (술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아쉬움이 남았으나 값싸고 맛있는 예술품 생선회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이치코에 대한 궁금증은 금방 사라졌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주방장이 복 껍질 서비스를 접시에 담아 손수 가지고 왔다.

“손님, 사실 저도 이이치코가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팔았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오오이타(大分) 지방의 방언이랍니다. ‘매우 좋다!’ 그런 뜻이라는데 저도 손님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그 감사의 표시로 복 껍질을 내놓는 것이라고 했다. 삐끼 처자가 나의 궁금증을 주방장에게 전달했고, 주방장은 한창 바쁜 시간을 쪼개어 그 뜻을 살펴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이치코라는 고구마소주를 잊을 수 없게 되었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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