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지면으로 떠나는 벤치마킹 투어

[음식과 사람 2017-12 P.62 Benchmarking Tour]

 

▲ 이미지 = Pixabay

외식업체 대표들은 늘 “어디 가서, 뭐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음식부터 경영 기법까지 배우고 싶은 것은 많다. ‘잘나가는’ 가게 주인은 시간, 경비가 넉넉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영이 어려운 가게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각 지역별, 음식별로 ‘지면 벤치마킹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사정상 못 가보는 분들이 ‘힌트’라도 얻기를 바란다.

 

editor / photo. 황광해

 

외식업체 대표들은 가게 위치에 대해 고민이 많다. 조금만 더 큰길 쪽으로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장사가 제법 쏠쏠한데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한다. 장사도 되지 않는데 임대료만 자꾸 오른다. 이런저런 기대도 많고 불만도 많다. 오죽하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구도심이 개발돼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이란 말이 나오고 ‘구세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나왔을까?

예전에는 ‘가게 넓히면 장사 망한다’는 말이 정설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함부로 이사하면 가게 망한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위치가 바뀌면 오던 단골들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시대다. 가게 위치를 찾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래서 달라져야 한다. 음식점의 본질은 ‘음식’이다. 가게 위치가 아니라 음식에 따라 사람들은 움직인다. 지하철역 가까운 대로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 물론 좋다. 문제는 임대료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일이 잦다. 좋은 상권인데 임대료도 싸고, 권리금 없고, 건물주도 착하면 더할 나위 없다. 문제는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는 점이다.

외진 곳에서 장사하다가 대박을 친 경우, 몇 번씩 이사했지만 여전히 장사가 쏠쏠한 가게들을 소개한다.

 

‘정광수의 돈까스가게’

- “임대료 인상으로 세 번 이사… 위치는 옵션이다? 그의 관심은 오직 음식 맛뿐”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망원초등학교 정문 앞 작고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다. 일방통행 길,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길, 문방구 옆의 작은 공간이었다. 1층과 지하 1층. 평수가 모두 합쳐서 6평, 아래, 위가 각각 3평 남짓이었다. 1층은 주방이고, 아래층 지하는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벽을 바라보고 앉는 자리까지 모두 11석이었다.

직원은 사장이자 직원인 정광수 씨 한 명. 주문을 받고 나서 음식을 만든 후 지하 계단을 오르내렸다. 하루 돈가스 100그릇을 팔면 100번을 오르내렸다. 상행, 하행을 합치면 모두 200번.

음식이 좋았다. 장사도 쏠쏠했다. 테이크아웃도 제법 많았다.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옮겼다. 여전히 주차공간이 없고 또 일방통행 길이었다. 음식이 좋으니 방송에도 출연했다. 여전히 장사는 잘되었다. 손님들은 “초심을 잃지 않는다”고 칭찬했다. 역시 음식점의 핵심은 ‘음식’이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마포구청역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대로변이다. 현재 자리에서 네 번째 자리로 또 이사할 예정이다. 임대료 인상을 거부하며 또 자리를 옮긴다. 이사하면서 염두에 두는 것은 단 한 가지. 음식을 좀 더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것뿐이다. 욕심이 하나 더 있다면 작더라도 주차공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

▲ 2012년 3월 11일 촬영한 '정광수돈까그가게'의 돈가스(위)2017년 2월 26일 촬영한 돈가스

 

3대를 잇는 중식당 ‘신승관’

- “원주에서 시작, 서울 피맛골로, 북창동으로… 다시 종로1가로”

3대째 전승된 중식당이다. 업력도 만만치 않다. 처음 문을 연 창업주 장학맹 씨, 2대 대표 장경문 씨, 그리고 현재 3대는 장수영 씨다. 창업주는 강원도 원주에서 문을 열었고 곧 서울 피맛골로 이사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피맛골 ‘신승관’을 기억한다.

피맛골 재개발로 가게를 북창동으로 옮겼다. 장사가 어려웠다. 이사를 해서가 아니라 2대 사장 장경문 씨가 가게 운영을 직원에게 맡겼고 이 직원이 소홀했기 때문이었다. 2012년부터 3대 장수영 씨가 가게를 맡았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일군 가게 문을 닫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2016년 가게를 북창동에서 종로1가로 옮겼다. 지금의 자리다.

북창동보다는 못한 장소다. 북창동은 골목 안이지만 1층이었다. 가게 겉모습도 제법 그럴듯했다. 지금은 지하다. 장소도 좁다. 하지만 가게 운영 상태는 지금이 훨씬 낫다. 3대 사장 장수영 씨가 직접 주방과 운영을 관리하고 있다.

이 중식당은 시금치만두와 해삼주스를 처음 선보인, 의미 있는 음식점이다. 지금도 2대 사장 장경문 씨가 가게에 나와 직접 시금치만두를 빚는다. 딸이 총괄 운영하는 가게에서 아버지가 ‘알바로 가게 일을 돕고 있는’ 셈이다. 가게 운영이 잘되지 않을 리 없다. 손님들도 음식이 거의 예전 피맛골 수준이고 오히려 더 나아졌다고 말한다. 가게 운영의 핵심은 역시 음식이다.

▲ '신승관'이 처음 시작한 해삼주스

 

형제가 운영하는 우동가게 ‘교다이야’

- “서울 목동에서 영등포구청역으로, 합정역으로…좁고 외진 곳에도 음식 맛 알려지니 손님 몰려”

▲ 2012년 3월 10일 목동에 있던 '교다이야'의 우동

서울 목동 SBS 앞에서 시작했다.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지하철 영등포구청역 부근의 좁은 골목 안에 자리했다. 위치는 더 외진 곳이었다. 가게 평수도 좁았다. 음식이 알려지면서 가게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좁아도 너무 좁았다. 가게 앞의 대기 줄 때문에 동네 주민들에게 미안했다. 다시 합정역 부근으로 옮겼다. 그리 좋은 위치는 아니다. 가게 공사를 하고 있는데 이미 지나던 행인들이 “교다이야가 이사 온다”고 수군거렸다. 어렵지 않게 손님을 모았다.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형제가 운영해서 ‘교다이야(兄弟屋)’다. 형과 동생이 오랫동안 운영하다가 이제는 형이 합정동 교다이야를 운영한다. 손님은 꾸준하다. 동생은 양화대교 건너 당산동에 새로운 우동가게를 냈다. 이름이 재미있다. ‘우동가게_당산동 이야기’다. 친구와 더불어 둘이서 운영한다. 개업하자마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가정주부들이 주 고객이다. 퇴근하는 샐러리맨들도 꾸준히 찾는다. ‘혼밥족’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수타면을 고집하다가 ‘기계+수타’ 방식으로 바꿨다. 우동 한 그릇에 4500원.

 

제대로 만드는 돼지국밥집 ‘성화식당’

- “경북대 인근 좁은 골목서 이전… 가게 넓히면 망한다고? 천만에!”

영남지역에서는 흔하디흔한 돼지국밥집이다. 주인의 음식에 대한 열성이 놀랍다. 돼지국밥은 돼지 뼈와 머리고기, 내장 등 살코기를 곤 국물에 밥을 말아 내는 음식이다. 식재료는 가격이 싸지만 손이 많이 간다. 피 빼기부터 삶는 과정이 녹록지 않다. 어렵기보다는 제대로 하자면 번거롭다.

원래 있던 건물도 외진 곳이었다. 경북대와 가깝다는 것을 빼고는 아무런 장점이 없는 곳이었다. 좁은 골목 안에서 두어 번 가게 위치를 바꿨다. 손님은 꾸준했다. 방송에 소개된 후 대기 줄이 길어지자 가게를 옮겼다. 경북대와 더 가까운 곳이다. 공간도 한결 넓어졌다. 서너 배 넓어진 공간이지만 손님은 꾸준하다. 가게를 이전한 후 가봤다. 넓어졌지만 여전히 만석이었다. 음식은 더 좋아졌다.

▲ 2013년 11월 18일 '성화식당'의 돼지국밥

 

공덕동 맛집 ‘마포양지설렁탕’

- “옮길 때마다 손님이 따라오는 건 역시 음식의 힘”

개인적으로 30년 단골 식당이다. 1980년대 후반, 마포 먹자골목에 있던 작은 가게다. 작은 봉놋방이 하나 있고 좁은 식탁이 있었다. 임대기간 중 재건축으로 가게를 옮겼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다. 주인이 가게 밖에 의자를 내놓고 늘 앉아 있었다.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던 단골들이 차량 창문을 열고 “이쪽으로 이사왔느냐?”고 묻곤 했다. 곧 손님은 예전처럼 늘어났다.

옮긴 장소에서도 몇 해 버티지 못했다. 재개발 지역이었다.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손님은 여전하다. 30년간 세 번 이사했으니 많이 옮긴 편은 아니다. 옮길 때마다 손님들이 따라오는 것은 신기하다. 역시 음식의 힘이다.

▲ '마포양지설렁탕'. 2009년 2월 20일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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