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야기

[음식과 사람 2017-12 P.88 Food & Ingredient]

 

▲ 명태의 주 어장인 고성군 거진항 / 이하 사진 통일고성명태축제 홈페이지 캡쳐

생태, 동태, 황태, 북어, 노가리, 코다리 등 이름도 많은 명태는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식재료다.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선 잘 먹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선 1년에 25만 톤을 소비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식탁뿐 아니라 우리의 노래, 소설, 속담 등 문화에도 곳곳에 등장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혹자는 명태를 가장 한국적인 생선이라 말했는지도 모른다.

 

editor. 이선희 / 참고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성통일명태축제위원회 <근현대 생활문화 조사보고서 -명태와 황태덕장>(국립민속박물관)

 

우리나라 국민은 명태를 연간 25만 톤가량 소비할 정도로 좋아하고 자주 밥상에 올리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명태는 그다지 선호하는 생선이 아니다. 일본은 명란젓을 좋아하지만 명태는 다른 생선보다 맛이 떨어진다며 명란젓 외에 어묵 원료로 사용하는 정도다. 이웃 국가인 중국 역시 잘 먹지 않으며,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곁들인 ‘피시앤칩스’를 즐겨 먹는 영국인들도 명태보다는 대구를 선호한다.

일본에서 명태를 멘타이(또는 스케토다라), 중국에서는 밍타이위(또는 샤쉐), 러시아에서는 민타이라 부르는데 모두 한국어 ‘명태’에서 유래됐다. 또한 명란젓을 소비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 단 두 나라뿐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0배 이상 많은 명란젓을 소비하지만 명란젓의 종주국은 엄연히 한국이다. 조선은 강화도조약 체결로 명태 최대 집산지인 원산항을 개항하게 된다. 이때 일본 상인에 의해 조선의 명란젓을 일본으로 ‘수출’하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가 명태의 조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례, 제사, 굿이나 고사상 등에 올라가는 신성한 제물이며, 새로 이사할 집터나 묏자리에 가묘를 할 때 북어를 묻어두는 등 액막이용이기도 했다. 소설가 채만식은 수필 ‘명태’에서 일제강점기에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고, 양명문의 시 ‘명태’는 가곡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국민이 좋아하는 노래로 꼽힌다.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우리의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은 명태는 국민 생선이자 한국인과 역사를 함께한 가장 한국적인 생선이다.

 

명태 이름의 기원을 찾아서

- 명천 지방 어부의 성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가장 유명

명태라는 이름의 기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함경도 삼수갑산처럼 산세가 험하고 추운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풍토병을 많이 앓았다. 그들 사이에선 한 달 동안 명태를 먹으면 눈이 맑아진다는 말이 돌게 되었다. 풍토병 환자들은 겨울 동안 가까운 어촌에 내려와 명태를 먹고 눈이 잘 보이게 되면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눈을 밝게 해주는 생선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됐다는 설이다. 또한 예로부터 명태 간의 기름을 짜서 등불을 밝혔다. 이에 밝게 해주는 물고기라 해서 명태라고 불렀다는 설도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조선 헌종 때 벼슬을 지낸 이유원이 1871년에 쓴 <임하필기>에 남아 있는 유래가 가장 유명하다. 함경도 명천(明川) 지방에 태(太)가 성을 지닌 어부가 어떤 물고기를 잡았다. 이것을 관찰사에게 바쳤는데 그 맛이 너무 맛있어 이름을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관찰사는 명천의 ‘명(明)’과 어부의 성인 ‘태(太)’자를 따서 명태라 이름을 지었고, 그때부터 모두들 이 물고기를 명태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앞선 효종 3년(1652년) <승정원일기>에 ‘명태’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등장한다. ‘강원도에서 올리는 진상 어류 중 대구 어란 속에 명태 어란이 섞여 있다’며 불량 진상품을 올린 담당 관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추정컨대 명태라는 이름은 조선 전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남아 있는 조선 전기 문헌 중에는 명태 이름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명태로 추정되는 다른 이름이 등장한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무태어’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1884년 황필수가 편찬한 의서 <방약합편>에 ‘명천에서 난다. 일명 무태어이다’라고 돼 있어 무태어를 명태로 추정하지만 아직 확정할 수는 없다. 1798년 <재물보>와 1820년 <물명>에는 북쪽 끝(북해)에서 나기 때문에 ‘북어(北魚)’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저장과 보관, 운반에 용이한 마른 명태로 전국적으로 유통되면서 북쪽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라고 해서 명태 말린 것을 북어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름이 가장 많은 생선 ‘명태’

- 동태·생태·황태 ·백태 등… 어획 시기·방법·크기 등에 따라 다르게 불려

명태는 조업, 건조, 가공 방법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존재하는데 그 수가 상당하며 우리나라 물고기 중 가장 많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근현대 생활문화 조사보고서 <명태와 황태덕장>에서 명태의 다양한 이름을 소개했다.

▲어획 시기에 따라서 춘태, 하태, 추태, 동태 등으로 불리고 ▲어획 장소에 따라 강원도 바다에서 잡히면 강태, 강원도 고성에서 나는 북어는 간태, 수입한 명태는 수입태 등으로 부른다. ▲어획 방법에 따라 그물로 잡으면 그물태, 낚시로 잡으면 낚시태라 하고 ▲명태 새끼를 노가리, 명태 크기에 따라 소태·중태·대태·왕태라 한다. ▲건조 정도에 따라 속살이 노랗게 마른 황태, 하얗게 마른 백태, 소금을 뿌려 짠맛이 나도록 말린 짝태, 겉껍질이 검게 마른 먹태, 그냥 건조시킨 북어, 반쯤 말린 코다리 등으로 부른다. ▲가공 방법에 따라 얼리면 동태, 잡은 그대로는 생태, 갓 잡아 싱싱한 것은 선태,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만 걸어 건조시키면 무두태 등이라 한다.

이 밖에도 과거엔 산더미처럼 많이 잡힌다고 해서 산태였지만 최근엔 찾아보기 힘든 귀한 어종이 돼 금태라고 부르는 것처럼 ‘태’만 붙이면 명태의 이름이 된다. 명태를 부르는 명칭이 수십 가지를 넘어 수백, 수천 가지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명태를 이토록 다양하게 부른 이유는 뭘까. 조선시대에는 명태 어획량이 많은 데다 오랫동안 저장을 해도 맛을 잃지 않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도 건조, 냉동, 염장 등으로 저장해놓고 두고두고 먹을 수 있었다. 찜, 찌개, 국, 조림, 부침 등 조리법을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밥상의 효자다.

게다가 살과 뼈는 물론 내장으로는 창란젓, 알은 명란젓, 아가미는 서거리젓을 만들고 간은 간유로 활용하며 북어 껍질과 눈알까지 식재료로 사용할 수 있어 명태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알뜰한 생선이다. 새끼부터 성어까지 세세하게 이름을 붙인 것은 물론 잡는 방법에 따라 명칭을 달리한 것을 보면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의 밥상에 자주 올랐던 식재료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그 많던 국산 명태는 어디로?

- 무분별한 남획, 지구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으로 품귀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에는 ‘내가 원산을 지나는데 명태가 마치 오강(한강 일대)에 쌓인 땔나무처럼 많아서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 물고기가 해마다 수천 석씩 잡혀 팔도에 두루 퍼지게 되었는데, 북어라고 불렀다’라고 하여 조선시대에 명태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를 알 수 있다.

김기수가 쓴 <일동기유>(1877년)에는 ‘많이 나고 값이 싼 까닭으로 우리나라 사람은 산골짜기의 노인, 여자, 어린아이들까지 북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으며, 서유구가 쓴 <난호어목지>(1820년)에도 ‘명태가 다산하여 전국에 넘쳐 흐르며 우리나라 수산물 중에서 명태는 청어와 더불어 가장 많이 나는 것’이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로 흔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옛말이 되었다. 1980년대 초반엔 연간 15만 톤까지 어획해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1990년대엔 1만여 톤으로 급감했다. 점점 어획량이 감소하더니 2000년대 중반에는 100톤을 넘지 못했고 급기야 2008∼2009년에는 공식적으로 어획량이 보고되지 않아 ‘0톤’으로 기록됐다.

2009년 이후엔 1톤 내외로 극히 적은 양만 잡히고 있는 실정이다. 한때 동해에서 가장 생산량이 많은 어종이었건만,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 많던 명태가 사라져버렸다.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명태는 러시아나 일본 수역에서 잡아오거나 수입해온 것이다.

무분별한 남획이 명태가 사라진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와 학계 등에선 국내 명태잡이 어선 수가 적정 수준보다 11~17% 정도 많다고 추정하는데 이는 잡아들이는 속도가 물고기 번식 속도보다 더 빠를 수 있음을 나타낸다. 1971년 정부는 명태 새끼인 노가리 어획을 허가했는데 이것 또한 명태가 사라지는 데 한몫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전체 명태 어획량의 70%가 노가리일 정도였다. 게다가 명태가 북한 수역에서 남하하는 시기에 중국 쌍끌이 어선들이 길목에서 무분별하게 싹쓸이를 해버리니 우리 동해 연안에 도착하는 명태는 극히 적을 수밖에 없다.

또한 지구온난화 등으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우리나라 물고기 어획지도가 바뀌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변 해역 수온은 1968년 연평균 16.14℃에서 2014년 17.32℃로 46년 만에 1.18℃ 올랐다.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 수온에 비해 약 3배 이상 높은 상승률이다.

특히 남해(1℃), 서해(1.18℃)에 비해 동해는 1.34℃ 올라 해양생태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한류성 어종인 명태 대신 멸치, 오징어 등 난류성 어종이 북상해 출몰하고 있다. 1℃의 수온 상승이 명태의 삶의 터전을 뒤흔든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2014년부터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는데 최근 반가운 소식이 연이어 들리고 있다. 2016년 세계 최초로 명태 완전양식 기술 개발에 성공해 대량 생산의 길이 열렸다. 올해 2월에는 지난해 6월 속초 앞바다에서 방류한 명태가 무사히 자연에 정착해 살고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해수부는 명태 자원 회복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앞으로 방류사업을 더욱 확대해나갈 계획을 밝혔다. 이르면 2020년부터 국내산 명태가 우리 밥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어 ‘집 떠난 명태’가 다시 돌아오는 그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황탯국이 해장에 좋은 이유 있었네!

- 단백질, 비타민 등 필수영양소 풍부… 숙취 해소, 해독 효과까지

명태는 두부의 8배, 우유의 2배에 달하는 단백질을 함유한 고단백 식품으로 특히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다. 필수아미노산은 우리 신체 조직을 구성하고 혈액의 중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황탯국이 해장 음식으로 유명한데 이것도 필수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알코올이 분해되지 않고 간에 축적된 아세트알데히드를 해독해 간을 보호해주는 것은 물론 간 기능을 높여준다.

명태에 있는 칼륨은 역시 숙취 해소를 도우며 알코올 섭취로 배출된 칼륨을 보충해줄 수 있다. 그 밖에도 베타인, 타우린이 많이 함유돼 있어 숙취와 피로 해소에 좋다. 비타민A가 대구보다 3배나 많고, 칼슘과 인, 세포 발육에 필요한 리신과 뇌 영양소인 트립토판까지 있어 영양분이 아주 풍부하다. 그럼에도 지방이 적고 열량은 100g당 98kcal에 불과해 고구마(100g당 128kcal)보다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제격이다.

한의학적으로 명태는 따뜻한 성질의 식품으로 1884년 출판된 조선 말 의학서 <방약합편>에 보면 ‘명태는 성질은 따뜻하면서 맛은 짜다’고 기록돼 있다. 소화 기능을 높여줘 식욕이 없고 저체중인 사람이 먹으면 허약한 몸과 체력을 보강해준다. 감기 몸살로 열이 나고 오한이 들 때 명태를 먹으면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고 땀이 나서 열이 내려간다.

그 외에도 급성질환 등 열이 많이 나는 질환에도 뜨거운 명탯국을 먹으면 회복이 빠르다. 체질적으로 몸이 찬 사람에게는 좋지만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너무 많이 먹지 않아야 한다. 말린 명태는 몸에 쌓인 독성을 풀어주는 해독 작용이 강하다. 술독은 물론 연탄가스 중독과 후유증, 독사와 지네의 독, 광견독, 공해독이나 약품 중독 등을 푸는 데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명태를 이용해 중독을 푸는 민간요법이 전해진다. 마른 명태 5마리와 물을 넉넉히 넣은 후 한약 달이듯이 푹 달인 국물을 마시게 하면 중독을 풀 수 있다고 한다.

명태 부위별로 효능을 살펴보자면 간에는 비타민A와 D가 많이 들어 있어 야맹증을 예방해주고 눈을 밝게 해준다. 마땅한 눈 영양제가 없던 시절부터 시력을 좋게 하는 영양식품으로 널리 애용됐다. 명태 알, 즉 명란은 뇌와 신경에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해주며 피부 건강에도 좋고 식욕을 돋우고 소화력을 높여준다. 또한 비타민E인 토코페롤이 많아 생식 기능의 정상화와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다.

명태 아가미에는 멸치보다 많은 칼슘을 함유하고 있어 골다공증, 골연화증 예방에 좋다. 명태 정소(이리)에는 단백질과 인이 풍부해 뼈, 치아를 튼튼하게 해주는 데 관여한다. 명태 살은 고등어와 달리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아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칼슘, 인, 철 등을 골고루 함유하고 있어 어린이 이유식과 노인 영양식으로 적합하다.

앞서 말한 <임하필기>에는 ‘명태는 300년 동안 우리나라의 보물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대목도 나온다. 그로부터 150여 년이 흐른 지금, 명태는 정말로 보물이 됐다. 식탁에서 명태가 없어진다면 당장 많은 음식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 문화의 많은 부분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남은 150년은 물론 500년, 1000년 후에도 명태는 우리의 ‘보물’로 자리 잡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