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8-1 P.73 Food  Essay]

 

자라와 철갑상어가 들어간 ‘어죽’

 

▲ 이미지 = Pixabay

editor. 윤동혁

 

강의 상류는 내륙 한복판이기 마련이다. 옛날 같지는 않아도 물이 맑아서 발 담그고 싶은 계류에는 올갱이(다슬기)가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고… 이런 곳에 가면 찾게 되는, 아직 서울에서는 맛본 적 없는 바로 그 음식! 태어나서 지금껏 이 맛을 못 본 분도 계실 텐데, 바로 ‘어죽’이다. 붕어나 피라미, 쏘가리, 빠가사리(동자개), 메기 같은 민물고기의 내장을 제거하고 뼈를 발라 국수와 밥을 넣은 채 푹푹 끓여낸 음식이다.

프랜차이즈 죽 전문점이 도처에 들어섰지만 이 어죽은 지금도, 앞으로도 메뉴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강이 있는 곳이라 해서 아무나 어죽집을 차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싱싱한 물고기를 끊어지지 않게 받아놓을 수 있는 공급원이 있어야 하고, 양념을 알맞게 섞어서 비린내를 없애는 기술도 있어야 하니까.

충주댐에서 산 쪽으로 한참 들어간 곳(충주시 노은면)이어서 ‘화랑매운탕’이라는 간판을 봤을 때도 메기잡탕이나 하는 곳이려니 했다. 어죽이 가장 빨리 나온다기에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햇빛 좋을 때 몇 커트라도 더 찍자는 심산으로 “그럼, 어죽 맛을 한번 봅시다” 하고 여주인의 권유에 응했다. 하지만 옥천이나 진안에서 맛본 그런 수준은 아닐 거라고, 아예 기대도 하지 않았다.

국수와 밥이 반반씩 섞였다. 전라도에선 밥을 말아주는데 나는 국수를 좋아하므로 우선 국수를 한 젓가락… 그리고 국물 맛을 봤다. 비린내를 없앴다기보다 아예 비린내가 나지 않아 섭섭할 정도였다. 국물은 텁텁했으나 말간 장국 맛이 났다. 어죽은 집집마다 사용하는 물고기와 양념 조절이 달라서, 그리고 물고기들은 이미 푸욱 삶아져서 원래의 모습을 찾을 길 없어서 “무슨 물고기가 들어가 있나요?”라고 물어보게 된다.

기본이 민물장어와 붕어라고 했다. 그 비싼 민물장어를 쓸개와 함께 통째로, 말간 국물이 사골처럼 우러날 때까지 곤다고 했다. 그리고 붕어는 ‘떡붕어’가 아니라 ‘참붕어’만 넣는다고 했는데, 낚시 다니시는 분들은 ‘떡’과 ‘참’의 차이를 잘 아실 것이다. 떡붕어는 일본 국적으로 뼈가 드세고 살도 퍼석퍼석하다. 민물장어와 참붕어 소리만 들어도 특급 대우를 받는 기분인데, 그다음 말이 기절할 지경! “철갑상어가 꼭 들어가요.” 물론 양식일 테지만 철갑상어라니, 눈치나 피라미만 추가해도 충분할 텐데 TV에서나 보던 철갑상어가? 5월부터 8월까지는 철갑상어 대신 자라를 사용한다고 했다. 이 어죽을 맛볼 때가 늦가을이었는데 양지바른 곳에서 캐왔노라며 달래가 죽 속에서 향기를 뿜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돼! 잡고기만 잘 섞어서 끓여낸다고 탓할 사람 없지 않은가. 무슨 보약처럼 만들어서, 그것도 1인분에 달랑 8000원 받으면서 민물장어는 뭐고 철갑상어는 웬 말인가. 안주인 민영자 씨는 이런 심문을 기다렸다는 듯 좔좔 사연을 쏟아놓았다.

“저이(남편 정용호, 58세)가 술을 어찌나 마셔대던지….” 매일 소주 3병이 기본에다 담배도 골초, 그러더니 당뇨 수치가 600을 넘어가면서 손발 저림 현상이 나타나더란다. 시동생 두 사람이 당뇨로 세상을 먼저 떠난 가족력도 있어서 앞이 캄캄해졌다고 한다. 좋아하던 육류를 일절 금하고 좋다는 건 다 해 먹였는데 그중 어죽이 제일 좋더라고 했다. 자라와 철갑상어는 치료용으로 사다 끓였는데 남편이 이틀을 내리 먹더니 “소변 거품이 푹 가라앉았다”고 ‘간증’했다는 것이다.

“원래 그냥 매운탕만 팔아도 장사 잘되거든요. 그런데 이 어죽이 남편을 살려주었으니까….” 민영자 씨는 “사회 환원”이라고, 남들이 적어도 1만 원은 받으라고들 난리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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