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재료

[음식과 사람 2018-1 P.88 Food & Ingred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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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바야흐로 귤의 계절이 시작됐다. 귤은 먹기 쉽고 비타민C도 풍부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과일이다. 신맛이 나는 귤을 겨울에 먹는 데는 이유가 있다. 풍부한 비타민과 구연산이 겨울철 건강관리에 탁월하기 때문이다. 과육부터 껍질까지 버릴 것 없는 귤은 겨울나기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식품이다.

 

editor. 강보라

 

지금은 대중적인 과일로 꼽히지만, 과거에 귤은 임금의 은혜와 효도의 상징이었다. 대표적인 육적회귤(陸績懷橘)은 <삼국지> 오지(吳志)에 나오는 고사이다. 여섯 살이었던 육적이 친구 집에서 대접받은 귤 3개를 품에 넣었다가 인사를 하면서 떨어뜨리게 된다. 왜 귤을 숨겼느냐는 물음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께 드리고 싶어서라고 답하고 통곡한다.

이후 귤은 효도의 상징이 됐다. 고사의 주제는 효심이지만 귤이 얼마나 귀한 과일이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도 귤은 쌀보다도 비싼 과일이었다. 그래서 4·19혁명 당시 부정축재를 드러내는 지표로 지배계층의 집에서 귤 한 박스가 발견된 것이 언급될 정도였다.

일본에서는 불량 학생이나 낙오자를 ‘썩은 귤’로 부르기도 한다. 귤 하나가 썩으면 같은 상자에 있는 다른 귤도 같이 썩게 되는 특성에서 유래한 별칭이다. 불량 학생이 주변 학생들까지 물들인다는 뜻이다. 범접할 수도 없던 귤이 우리 주변의 친근한 과일로 변모해가는 과정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도 같다. 귤 속에 녹아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조선시대 왕들도 먹기 힘들었던 귀한 몸?

국가에서 열매 수까지 관리… 귤 공납 폐단 심해

귤 진상을 축하하는 과거 ‘황감시’ 300년간 열려

귤은 조선시대만 해도 임금마저 애태우던 귀한 몸이었다. 제주의 귤은 <고려사> 등 옛 문헌에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록을 보면 탐라국(제주의 옛 명칭)이 고려에 조공하는 감귤을 연간 100상자로 정한다는 내용이 나오고, 조선시대 법전인 <대전통편>에는 동정귤 10그루를 심은 자에게는 조세나 국가 부담을 면제하고, 15그루를 심은 자에겐 면포 30필을 주는 등 감귤을 국가에서 관리한 기록이 있다. 바꿔 말하면 감귤의 역사 속에 제주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워낙 귀한 진상품이다 보니 관청에서 가가호호 감귤 나무의 수와 열매가 몇 개 열렸는지까지 상세히 기록해 손실이 생기면 농민들이 변상을 해야 했다. 그 집 주인이 귤을 따도 절도죄로 다스렸다.

정약용 역시 <목민심서>에서 제주 백성들에 대한 조정의 귤 공납 강요가 얼마나 심했는지 적고 있다. 여름에 귤이 녹색으로 작게 열리면 나무 둥치에 몇 개인지 표시해놨다가 귤이 익으면 그 양만큼 바쳐야 해서 바람에 떨어지거나 벌레가 먹으면 다른 곳에서 사서 바쳐야 하는 등 부담이 컸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관리들의 수탈도 있어서 결국 이에 시달리다 못한 농민들은 일부러 귤나무를 죽이기도 했다.

‘귤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초(胡椒)를 집어넣어 나무가 저절로 말라죽으면 (공납) 대장에서 빠지게 된다. 그루터기에서 움이 돋으면 잘라버리고 씨가 떨어져 싹이 나면 보이는 대로 뽑아버리니, 이것이 귤이 없어지는 까닭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귤 사랑이 대단했던 영조가 신하들에게 귤 공납 폐단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온다. “감귤(柑橘)의 진공(進貢)에 폐단이 있어 여염집에서 이 나무가 나면 반드시 끓는 물을 부어 죽인다고 하니, 사실이 그런가?”라고 친히 묻는다. 귤은 이처럼 임금까지 신경 쓸 정도로 특별한 과일이었다.

제주 바다를 건너는 과정에서 귤이 썩고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잦자 육지에서 귤을 재배하는 실험도 시도됐다. 제주도의 귤나무를 순천 등 남쪽 바닷가 마을에 수백 그루 옮겨 심어 여러 번 실패한 흔적도 있다. 세종 때는 강화도에 높이가 10척이 넘는 나무로 집을 짓고 온돌까지 만들어 귤을 재배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귤에 대한 애착은 그만큼 대단했다.

귀한 진상품이었던 감귤은 외국에서 사신이 올 때나 종묘 제사에 사용됐다. 이뿐만 아니라 왕실, 궁중의 의료와 시약을 관장하는 전의감과 일반 서민을 치료하는 혜민서에서도 귤을 썼다. 제주의 감귤을 공공의료의 치료 약재로도 썼던 것이다.

조선 8도의 여러 진상품 중에서도 특별히 제주에서 귤이 올라오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성균관과 서울의 4개 학교 유생들에게 황감시(黃柑試)라는 특별과거를 보게 하고 귤을 나눠주었다. 이것이 황감제(黃柑製)이다. ‘황감’은 노란 감귤이란 뜻인데, 명종 때 시작돼 19세기 말까지 300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당시 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점잖은 선비들도 귤을 더 받겠다고 분탕질이 상당했다는 기록들이 많다. 급기야 정조 때에는 난동사건으로 지금의 국립대 총장이 파면되고 난동이 심한 유생은 과거 응시 제한 조치까지 받았다 하니 당시 귤의 위상이 어땠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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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힐 땐 귤을 먹어라?

스트레스로 막힌 기를 뚫어주고 몸의 순환 도와

귤껍질은 약재… 소화제, 감기 치료제로 쓰여

귤은 희소성만큼이나 의학적 효험도 크다. 심지어 옛날에는 의사를 ‘귤정(橘井)’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진나라 소탐이라는 사람이 귤나무 옆 우물물로 병자를 치료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귤은 한방에서 기(氣)의 소통을 돕는 약재로 알려져 있다. 중국 명나라 때 의서인 <의학입문>에는 ‘기가 막힐 경우 증상이 가벼우면 그냥 움직이기만 해도 곧 낫지만 심할 때는 귤껍질만으로 끓인 귤피 일물탕을 써야 한다’고 적고 있다. ‘기가 막힌다’는 말은 우리 몸속의 기가 움직이는 미세한 통로가 막힌다는 뜻으로, 한방에선 귤의 고유한 향기가 막힌 기의 통로를 뚫어준다고 봤다.

귤껍질은 날것은 소화제로 쓰이고, 묵은 것은 기침이나 목이 쉰 증상을 없애주는 감기 치료제로 쓰인다. 청귤의 껍질인 청피는 현대인에게 더욱 좋다. 스트레스로 막힌 기를 뚫어주고 가슴에 맺힌 것을 풀어주는 해결사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귤 속살에 붙은 하얀 실 같은 알베도는 음주로 속이 쓰린 애주가에게 좋다. 갈증을 멎게 하고 술 마신 뒤에 토하는 증상을 치료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는 귤피(진피· 陳皮)라 하여 말린 귤껍질만을 약재로 쓴다. 그것도 3년 이상 오래 묵은 것을 상품으로 친다. 사실 대부분의 곡식, 과일들이 그렇듯이 껍질 부분에 유효 성분이 많다. 귤 하면 떠오르는 비타민C도 껍질인 진피에 열매보다 4배나 더 많이 함유돼 있다. 식이섬유인 펙틴, 콜레스테롤 성분을 낮춰주는 테라빈유, 항암작용을 하는 베타카로틴, 과일 중 유일하게 귤에만 있는 비타민P도 껍질인 진피에 더 많이 들어 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귤껍질의 효능을 보면 ‘가슴에 기(氣)가 뭉친 것을 치료하며 음식 맛을 나게 한다. 또한 기운이 위로 치미는 것과 기침하는 것을 낫게 하고, 구역을 멎게 하며 대소변을 잘 통하게 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한마디로 소화기를 따뜻하게 도와주고 순환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일생 동안 ‘기가 막히는’ 일을 많이 겪었던 영조는 귤껍질에 다른 약재를 첨가한 차를 달여 먹으며 건강을 지켰다. 귤껍질에 향부자를 넣은 향귤차, 소엽을 넣은 소귤차, 인삼을 넣은 삼귤차, 계피를 넣은 계귤차, 살구 씨를 넣어 기침을 없애는 행귤차, 생강을 넣은 귤강차, 꿀을 넣어 달콤한 귤병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특히 귤과 생강을 같이 달여 차로 만든 귤강차를 상복했는데, 임종의 순간에도 귤에 계피와 생강을 함께 넣은 계강차와 샘물을 백 번 끓여 만든 백비탕을 기사회생의 명약으로 사용한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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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나무는 ‘대학나무’?

귤나무 한 그루로 대학 보내던 시절도 있어

1970년대까지 쌀보다 비싸… 부정축재 지표로 표현되기도

귤은 연평균 기온 15~18℃, 최저온도 5℃의 온난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영하 7℃ 이하에서는 얼어버리기 때문에 온대성인 제주의 기온에 가장 적합한 작물이다. 초여름에 하얀 꽃이 피고 여름에 열매를 맺어 겨울에 새콤달콤하게 익는다. 귤이 제주도에 들어와 재배된 것은 삼국시대로 추정되는데, 본격적인 재배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됐다.

1911년 제주산 벚나무를 일본에 있는 신부(神父)에게 선물하고 답례로 온주밀감 15주를 심은 것이 제주 온주밀감의 효시다. 현재 제주에서 나는 감귤의 92%가 온주밀감에 속한다. 감귤이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는 나무 한 그루로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을 정도여서 ‘대학나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감귤은 우리가 흔히 귤이라고 부르는 온주밀감과 만감((晩柑)류를 모두 일컫는 말이다. 보통 재배 방식과 수확 시기에 따라 구분된다. 감귤은 우리가 흔히 먹는 귤 종류를 말하고, 만감류는 나무에서 완전히 익도록 두었다가 따는 밀감을 말한다. 밀감류와 오렌지를 교잡해 만든 청견에서부터 한라봉, 천혜향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귤이라고 다 같은 귤이 아닌 것이다. 과거에는 겨울에만 귤을 먹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하우스 감귤부터 귤의 친척인 만감류들이 시즌별로 선을 보인다.

노지 감귤 수확은 대부분 추운 겨울에 이뤄진다. 이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감귤 수확을 하다가 주변에 피워둔 모닥불에 감귤을 구워 먹으며 추위를 이겨냈다. 그런데 이렇게 먹게 된 구운 감귤 맛이 별미라고 소문이 퍼져 요즘은 제주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감귤 구워 먹기를 시도해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냉동 귤이라고 해서 귤을 얼려서 먹기도 한다. 외피를 제거한 귤을 냉동한 것으로 적당히 해동해 먹거나 언 상태로 먹는데, 귤 자체에 수분이 많아 셔벗 같은 느낌으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때때로 시고 맛없는 귤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귤을 40℃ 정도의 따뜻한 물에 10분간 넣어두자. 귤의 아코니타아제라는 효소가 따뜻한 물과 반응하면서 산을 분해해 단맛을 높여준다. 간편한 방법으로는 먹기 전에 귤을 고르게 주물러주는 것이다. 이렇게 주무르면 신맛을 내는 유기산이 귤 전체에 고르게 퍼져 상대적으로 신맛이 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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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귤을 먹어야 하는 이유?

하루 2개면 비타민C 하루 권장량 충족

귤에만 들어 있는 ‘비타민P’도 주목

귤은 과육에서 껍질까지 버릴 게 없는 비타민 덩어리이다. 특히 추울 때 수확하는 귤은 비타민C의 함유량이 높기 때문에 요즘 먹으면 건강에 더욱 좋다. 귤의 89%는 수분으로 이뤄져 있고, 비타민을 비롯해 당분, 유기산, 아미노산, 무기질 등 여러 성분이 함유돼 있다.

귤 100g당 비타민C는 55~60mg 정도 들어 있다. 한국영양학회가 정한 비타민C의 성인 하루 섭취 권장량이 60~100mg이므로 중간 크기의 귤을 하루에 2개만 먹으면 하루 권장량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비타민C는 겨울철 추위를 견딜 수 있게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고 면역력을 키워줘 감기 예방에 좋다. 이뿐만 아니라 신맛을 담당하는 구연산은 피로를 풀어주고 피를 맑게 해준다.

귤은 손으로 껍질을 까서 먹는 과일인데, 껍질을 까내고 나면 속 내용물 표면에 흰색 실처럼 생긴 것들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흰색 실들을 알베도라고 부르는데 쓴맛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곤 한다. 그래서 알베도를 떼고 먹는 경우가 많은데 건강을 생각한다면 흰색 실까지 함께 먹는 것이 좋다. 우리 몸에 좋은 성분들이 귤 속에 포함돼 있는데 이런 성분이 알베도에 가장 많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과일 중 유일하게 귤에만 있는 비타민P 역시 알베도에 많다. 비타민P는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고혈압 예방, 노화 지연 등의 항산화 효과, 항염증에 탁월한 효과를 낸다. 게다가 알베도에는 식이섬유도 풍부하게 함유돼 신체 활동이 적은 겨울철 변비를 예방할 수 있다. 감귤에는 살찌는 것을 억제하는 항비만 효과도 있다. 감귤에 함유된 플라보노이드가 60여 종에 이르는데 이 성분이 지방세포 분화를 억제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해 음식물 섭취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겨울철 간식으로 귤이 탁월한 이유다.

물론 약간의 부작용도 있다. 신나게 까먹다 보면 손바닥이 노랗게 변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귤에 함유된 소량의 수산 때문이다. 과다한 귤 섭취는 몸을 차갑게 만들고 신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냉증이나 신장염이 있는 사람은 섭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당뇨가 있는 경우에도 하루 한 개 정도로 섭취를 제한하고, 위산 과다로 속이 쓰리거나 역류성 인후염으로 기침이 있다면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 섭취를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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