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2018-2 P.86 Food & Ingredient]

 

▲ 이하 이미지 = PIXABAY

2월과 3월은 사랑의 계절이다. 그리고 초콜릿의 계절이다.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뿐 아니라 졸업과 입학 시즌에 맞춰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입안에 넣으면 사르르 부드럽게 녹으며 단맛이 퍼지는 초콜릿. 매서운 추위도 잊을 만큼 강렬한 맛이다. 이토록 짧은 순간에 행복감을 주는 먹거리가 또 있을까.

 

editor 강보라 / 참고자료 한국 카카오·초콜릿기술협의회

 

3000년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초콜릿

- 화폐로 쓰였던 카카오빈… 10알에 토끼 1마리, 100알에 노예 1명

- 걸쭉한 음료 형태로 출발해 19세기에 지금과 같은 형태 갖춰

초콜릿의 기원은 약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멕시코만 접경의 고온다습한 저지대에서 살며 아메리카 대륙 최초로 문명을 이룩한 올멕족이 인류 최초로 초콜릿을 만든 것으로 학계에선 추정한다. 물론 당시 초콜릿은 지금과 달리 카카오빈을 으깨서 만든 걸쭉한 음료 형태로 쓴맛이 났다. 올멕족의 음료는 마야인과 아즈텍인들에게도 전해졌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카카오는 올멕어인 ‘Kakawa’에서, 초콜릿은 마야의 언어인 ‘Xocoatl(초코아틀)’에서 유래되었다.

아즈텍 제국에서는 향신료를 더해 피로 회복 음료와 자양강장제로 사용하는 등 이전보다 발전된 초콜릿 음료를 만들었다. 마야, 아즈텍문명 시대에는 카카오빈을 화폐로 사용할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녔다. 당시 카카오빈 10알로는 토끼 한 마리를, 100알로는 노예 한 사람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초콜릿 음료 역시 권력과 부를 지닌 소수 지배층만 맛볼 수 있었다.

카카오빈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당연히 당시 최고 권력인 황제였으며, 그중에서도 몬테수마 황제의 초콜릿 사랑은 대단했다. 그는 초콜릿 음료를 한 컵만 마셔도 온종일 행진할 수 있을 만큼 원기를 돋우는 사랑의 묘약이라 믿었다. 그래서 황금 잔에 담은 음료를 하루 50잔이나 마셨을 정도로 신봉했다고 한다.

초콜릿을 유럽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하지만 당시엔 그가 가져온 카카오빈을 여러 종의 농산물 중 하나로 취급했다. 아즈텍 제국을 점령해 끝내 멸망시킨 에스파냐(오늘날의 스페인)의 에르난도 코르테스가 카카오빈과 제조 도구를 고국으로 가져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쓴맛이 나는 기존 카카오 음료에 계피 등 향신료와 설탕을 넣어 달콤한 맛을 추가하는 비법을 고안해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음료는 에스파냐 왕실에 헌납됐고, 100년 가까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상류계급만의 독점적 음료로 존재하게 된다. 이후 이탈리아 상인인 안토니오 카를레티가 이탈리아에 초콜릿을 알리면서 유럽 곳곳에 전파됐다. 일부 상류층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으나 점차 즐기는 이가 많아져 유럽에선 초콜릿 인기가 급상승했다.

1828년 네덜란드에서 카카오 분말을 얻는 성형 기술이 개발됐고, 1847년 영국에서 고형 초콜릿이 발명됐다. 그 덕분에 마시는 초콜릿 음료에서 지금처럼 씹어 먹는 초콜릿으로 변모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계기로 초콜릿의 대중화가 이뤄졌고, 영국 초콜릿 회사 캐드베리가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비로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의 메신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특정 지역에서만 자라는 ‘신의 음식’

- 까다로운 성장 환경…가나·코트디부아르가 양대 생산지

- 맛난 초콜릿은 ‘카카오매스, 카카오버터’ 많이 든 것 골라야

학명으로 테오브로마 카카오(이하 카카오나무)의 열매인 카카오가 초콜릿 원료로 사용된다. 테오브로마는 그리스어로 ‘신의 음식’이라는 뜻으로, 이처럼 거창한 이름이 붙은 데는 카카오나무의 까다로운 성장 환경이 한몫했다. 카카오나무는 20℃ 이상의 따뜻한 온도와 연 200㎖ 이상의 강수량이 일정하게 유지돼야 잘 자라며, 북위 20도와 남위 20도 사이에서만 열매를 맺는다. 다른 나무 그늘 밑에서 뜨거운 태양빛과 바람을 피할 때 가장 잘 자란다.

이렇다 보니 카카오 생산도 특정 지역에서만 가능하다. 그중 아프리카의 가나와 코트디부아르는 양대 카카오 생산지로 꼽힌다. 전 세계 초콜릿의 절반 이상이 이 두 나라에서 재배된 카카오를 쓴다. 그 외에도 브라질, 에콰도르, 나이지리아 등 열대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카카오에는 하얀 과육이 20~40여 개 정도 알알이 박혀 있는데 이것이 ‘카카오빈’이다. 이 카카오빈을 발효시키고 말리면 카카오 원두가 되고 껍질을 제거해 잘게 부수면 ‘카카오닙스’가 된다. 카카오닙스를 가열해 얻은 기름을 굳히면 ‘카카오버터’, 카카오닙스를 분쇄하면 ‘카카오매스’, 기름이 빠져나가 건조한 카카오닙스를 분쇄하면 ‘카카오 분말’이 된다. 카카오매스 함량에 따라 초콜릿의 색깔과 맛, 향이 결정된다면 카카오버터는 초콜릿의 식감을 좌우한다. 다크초콜릿은 카카오매스, 카카오버터, 설탕이 들어가고 밀크초콜릿은 카카오매스와 카카오버터, 우유 가루, 설탕으로 맛을 내며 여기에서 카카오매스만 빼면 화이트초콜릿이 된다.

우리나라에선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 유형별 기준을 보면 코코아 가공품류 또는 초콜릿류를 코코아 고형분 함량에 따라 나눈다(참고로 처음 카카오파우더를 상품화한 제품명이 ‘코코아’여서 지금까지도 카카오와 코코아를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즉 카카오 고형분과 코코아 고형분, 카카오버터와 코코아버터 모두 같은 말이다). 초콜릿(카카오 고형분 함량 30% 이상), 밀크초콜릿(20% 이상), 준초콜릿 (7% 이상), 화이트초콜릿(카카오버터 20% 이상 함유, 유고형분 14%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카카오매스에 대한 기준이 없다 보니 제조업체들은 카카오매스 함량을 낮추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카카오프리퍼레이션(분유와 카카오매스를 섞어 만든 조제물)을 사용한다. 반면 외국에서는 카카오 고형분이 아닌 카카오매스 함량을 초콜릿의 기준으로 규정한다. 유럽은 35% 이상, 미국은 15% 이상 카카오매스를 포함해야 초콜릿으로 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맛있는 초콜릿을 고르려면 어떤 것을 봐야 할까? 먼저 초콜릿 포장지에 표기된 카카오 함량을 살펴보면 좋다. 카카오 함량이란 카카오매스와 카카오버터가 첨가된 비율을 적어놓은 것으로 함량이 높아질수록 초콜릿 가격이 비싸다. 전문가들은 카카오 함량이 50% 이상 함유된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그다음은 카카오버터를 보면 된다. 마땅히 들어가야 하는 카카오버터를 기준 이하 혹은 최소한으로만 첨가하거나 심할 경우엔 전혀 넣지 않은 경우도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저급한 오일이나 유화제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상당수 팜유라고 부르는 식물성 경화유지가 대신 들어가는데 맛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몸에 나쁜 트랜스지방이 생성될 가능성이 높아 심혈관 건강에도 좋지 않다. 포장지에 적힌 구성성분을 잘 살펴보면 좀 더 건강하고 맛있는 초콜릿을 고를 수 있다.

 

나라별 유명 초콜릿 어디까지 먹어봤니?

- 미국은 초콜릿 대중화 이룬 반면 유럽은 고급스러운 초콜릿 문화 고수

- 미군 전투식량에 초콜릿 포함…연합군 통해 우리나라 전해져

유럽 국가들 상당수는 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초콜릿 브랜드를 갖고 있을 만큼 초콜릿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나라마다 추구하는 맛과 질감이 달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벨기에는 견과류나 크림, 버터로 속을 채운 후 초콜릿을 씌운 작은 모양의 프랄린 초콜릿을 최초로 개발한 나라다. 아기자기한 모양, 강한 단맛, 부드러운 질감으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초콜릿이다. 예전에는 벨기에와 독일을 오가는 열차를 ‘프랄린 익스프레스’라고 불렀다. 독일 사람들이 프랄린 초콜릿을 많이 사 가서 붙은 별칭으로 당시 대단한 인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국내 수제 초콜릿 전문점에서 벨기에 스타일의 초콜릿을 많이 만들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스위스는 유럽에서 초콜릿이 가장 늦게 유입된 나라다. 하지만 현재 1인당 초콜릿 소비량뿐만 아니라 생산량, 판매량, 수출량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인다.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초콜릿, 바로 밀크초콜릿을 1875년에 세계 최초로 만들어냈다. 낙농업 국가의 장점을 활용해 신선한 우유로 풍미가 좋고 녹는 맛이 부드러운 초콜릿을 탄생시켰다. 또 초콜릿에 헤이즐넛을 첨가한 것 역시 세계 최초다. 스위스는 초콜릿 제조의 혁신지로도 꼽히는데 1876년 건조 우유 가루를 개발했고, 1879년 다크초콜릿의 쓴맛을 줄이고 식감을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처럼 만드는 콘칭 기법을 개발했다. 1970년 이후에는 초콜릿에 얼룩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템퍼링을 발명했다.

프랑스는 스페인의 왕녀 앤이 프랑스 루이 13세와 결혼하면서 카카오 음료가 프랑스 왕궁에 전해졌다. 왕족과 귀족들이 설탕과 버터를 듬뿍 넣고 기교를 부린 달콤한 초콜릿을 즐기면서 프랑스 초콜릿 문화가 시작됐다. 현재까지도 프랑스는 초콜릿 고급화를 고수하며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정부는 아예 초콜릿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저급 초콜릿 유통을 막고 높은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는 데 힘쓴다. 특히 장인들은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질 좋은 카카오빈만을 고집하고, 기교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제품을 선보인다. 프랑스인들은 유난히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초콜릿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원재료인 카카오의 맛을 즐기려는 미식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초콜릿이 지금처럼 로맨틱한 이미지를 얻기 전 카톨릭 국가에서는 초콜릿을 환각제, 최음제로 보고 특히 성직자들의 섭취가 문제시되었다. 카톨릭 국가인 이탈리아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의 초콜릿은 디저트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다크초콜릿과 분쇄한 헤이즐넛을 섞어 만든 잔두야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초콜릿이다. 초콜릿에 헤이즐넛의 고소함이 더해져 부드럽고 향과 맛이 풍부하다.

유럽의 초콜릿 문화가 상류사회를 기반으로 발달했다면 반대로 미국은 서민과 함께 대중화를 이뤘다. 정통 초콜릿보다는 캐러멜이나 땅콩, 비스킷 등의 상품이나 설탕 입힌 초코볼 등 다양한 초콜릿 상품들이 개발됐다. 미국은 전투식량에 초콜릿을 포함시켰는데 이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아시아 지역에 초콜릿을 소개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 역시 본격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초콜릿이 소개된 것도 연합군인 미군이 진주하던 시기였다. 미국 초콜릿 기업인 허쉬가 초콜릿 제조에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하면서 시장을 석권하며 초콜릿 대중화를 이뤘다.

 

건강을 해치는 주범? 초콜릿에 대한 오해

- ‘카카오’엔 폴리페놀 등 좋은 성분 풍부… 가공 과정의 설탕·지방이 문제

- 카카오 함량 50% 이상, 설탕 적은 다크초콜릿 소량 섭취하는 게 좋아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을 섭취할 경우 혈관 보호, 혈관 기능 개선, 심장 보호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발표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이는 활성산소 제거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폴리페놀이 카카오에 풍부하기 때문이다. 폴리페놀은 ‘제4의 비타민’이라고 불릴 정도로 효능이 다양하다. 카카오에는 폴리페놀이 역시 그 성분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루이보스 차보다 21.7배가 많고 녹차의 44.5배에 달할 정도다.

폴리페놀은 동맥경화를 방지하는 데 도움을 주며 뇌졸중, 심근경색, 심장질환, 노인성 치매를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또한 폴리페놀 성분의 일종인 프로시아니딘은 혈관 내막의 산화질소 합성을 조절해 혈압을 낮추고 고혈압을 예방하는 데도 좋다. 폴리페놀의 좋은 효과는 또 있다. 피부 주름과 탄력 개선 등 미용 효과와 혈당 조절은 물론 플라그 발생을 억제해 충치를 예방하며, 뇌 기능 향상과 기억력 감퇴 방지에도 도움을 준다.

초콜릿으로 다이어트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단맛이 적고 쓴맛이 강한 다크초콜릿을 식전에 조금 먹으면 입맛이 감소해 식사량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카카오의 섬유소와 단백질이 천천히 소화돼 포만감을 지속하며 카카오버터가 식욕 억제 호르몬이 분비되도록 포만 호르몬을 자극해 식욕 조절이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중에 판매하는 초콜릿은 카카오 본래의 씁쓸한 맛 대신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기 위해 설탕 성분이나 트랜스지방 등을 듬뿍 넣는다. 소량의 카카오에 설탕과 지방을 다량 넣다 보니 원래 가지고 있는 좋은 효과보다는 나쁜 효과가 더 커진다. 이런 고칼로리 초콜릿을 많이 먹게 되면 혈액 내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혈관질환 발병 위험이 커지며, 100g당 500kcal 이상의 높은 열량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시중 초콜릿은 입 냄새와 충치를 유발하기 때문에 섭취 30분 이내에 양치를 해야 한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우울할 때 초콜릿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 음식을 먹으면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낮춰주고 세로토닌 분비를 늘려 기분을 좋게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효과가 매우 일시적이라 우울한 감정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다. 초콜릿보다는 차라리 세로토닌을 만들어주는 콩, 바나나, 붉은 고기를 먹는 것이 영양학적으로 낫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 외에도 초콜릿에는 다량의 카페인이 포함돼 있어 혈류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과 먹을수록 중독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앞서 말한 좋은 효과를 보려면 카카오 함량이 50% 이상으로, 카카오버터 외에 다른 지방 성분은 없고, 설탕 함량이 적은 다크초콜릿을 소량으로 먹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도가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이 그러하겠지만 초콜릿 역시 마찬가지다. 초콜릿이 가장 많이 팔리는 2월에는 평소보다 더 많이 섭취하기 쉽다. 초콜릿의 좋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나쁜 효과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달콤한 찰나의 행복감을 맛보는 데 ‘정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저작권자 © 한국외식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