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8-3 P.39 Food  Essay]

 

2000원짜리 콩나물해장국을 먹으며…

 

▲ 이미지 = Pixabay

editor. 윤동혁

 

“노다지 추우면 못 해묵어.”

두꺼운 목도리 안으로도 찬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추운 아침. 여기가 어디라고 해야 알아듣기 쉬우려나. 낙원상가… 파고다공원 뒷골목… 노인들 많이 모이시는… 그래, 그곳에 가면 노인 냄새가 난다.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누룩이나 곰팡이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그곳에 가면 우리나라를 통틀어 가장 싼값으로 한 끼 식사를 때울 수 있다.

내가 들어간 식당의 할머니가 ‘너무 추우면 장사하기 힘들다’는 뜻으로 혼잣말처럼 하신 것인데 이럴 때 ‘노다지’라는 말이 왜 붙을까.

‘대박 난다’는 뜻의 노다지가 말이다. 그러나 알아들었다. 같은 땅에서 오래 말을 섞고 살면 문법이나 어원 따윈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언어 공감대’가 형성되나 보다.

“너무 추운께 밥맛도 없네.” 구석에서 벽을 보며 식사하던 할아버지가 할머니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지도 않고 정담을 나누었다. 이럴 때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다음 장면이 마구 궁금해진다. 그때 식사를 마친 노인 한 분이 계산을 마치고 느릿느릿 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마자 화살처럼 날아가는 할머니의 촌평.

“저 사람 절밥 얻어먹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지청구여.”

불교 재단에서 노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해드리는데 방금 나간 노인께서 밥을 너무 많이 드셔서 배식하는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내용이었다. 할머니는 팩트를 드라이하게 전달했다.

“할머니는 연세가?”

“70 넘었어요.”

“이 가게 차리신 지는?”

“20년 넘었어요.”

10년 단위로 잘라서 단호하고 건조하게 말씀하셨다.

“인물도 반들반들하고… 그런 것들만 뽑았응께.”

TV 화면은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응원단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벽을 살펴보았다. 콩나물해장국 2000원. 밖에서 가격을 알고 들어온 터라 새삼 놀랄 일은 없었다. 2000원이라… 하긴 동대문 어딘가에는 1500원에 콩나물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는데 파고다공원 일대에선 2000원이 가장 싼 가격이다. 그런데 찬찬히 훑어보니 일본 글씨도 보인다. 황태해장국, 콩나물해장국, 우거지탕 모두 2000원 균일. 일본인도 2000원.

“일본 사람들도 더러 오나요?”

‘더러’ 오냐고 여쭈어봤다. “재작년까진 많이 왔어.” “먹고 나선 뭐라 하던가요?” “맛있다고들 그랴.” “요즘엔 어때요?” “얼굴 보기 힘들어. 일본 관광객들 덜 온다고 하더구만, 그래서 그런가 봐.”

콩나물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전주 남부시장 콩나물국밥과는 ‘멀고 먼 거리’가…. 달걀 반숙이나 김도 물론 없다. 어쩐지 공사 현장 식당에서 공짜로 내주는 콩나물국물 맛이었다. 그런데 그 국물 맛이 가슴을 적셨다. 따라 나온 김치는 짜디짜서 젓가락으로 잘게 해체한 다음 조금씩 먹어야 했다. 밥은 소위 ‘정부미’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의 빈곤하고 초라한 조합들이 배 속에서 (아니 가슴속에서) 요상한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래, 어린 날 유난히도 맑게 흘렀던 추억의 그 개천 물소리가 들렸다. 먹을 게 너무 없어서 황룡강 모래를 뒤져 조개 캐내고 인천 송도 야산에선 부추를 뿌리째 뽑아 반찬 재료로 썼던, 유년의 그 가난한 개천 물소리가 콩나물국물과 어울려 눈물겨운 신음 소리를 낸 게 아닐까.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으로 귀촌해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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