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사람 2018-4 P.44 Hot Issue]

 

▲ 이미지 = Pixabay

2월 28일 근로시간 단축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된 법안은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고, 시간 제한 없이 근로가 가능한 특례업종을 5개 업종으로 축소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음식점업(외식업)은 이번 법 개정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추가 인건비 부담이 불가피해졌다.

 

editor 김지은, 김선호

 

근로시간 6852시간, 특례업종 26 5개로 축소

“외식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것은 최저임금 인상보다 더 큰 충격입니다. 근로시간 단축은 일자리 창출과 반대되는 정책으로, 고용을 축소시키고 음식 가격을 높일 겁니다.”

한국외식업중앙회(이하 중앙회) 제갈창균 회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외식업이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분노와 참담함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주당 최대 68시간으로 책정된 현행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토·일요일을 포함한 1주일, 즉 7일 동안 일할 수 있는 법정 기준근로시간은 최대 40시간(하루 8시간)으로,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해 총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것. 언뜻 보면 현행 표준근로시간 주당 40시간과 같아 보이지만 지금까지 ‘일주일’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은 주말을 제외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즉 주 5일만을 지칭해왔다. 즉, 주말을 제외한 평일 5일 동안 표준근로 40시간에 12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별도로 하루 8시간 근로가 가능해 결과적으로는 주 7일 동안 68시간까지 허용됐던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에 대한 논란은 줄곧 노사 갈등의 쟁점으로 이어져왔고,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일주일을 주 7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었다. 상위기관인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국회가 먼저 나섰다. ‘일주일’에 대한 기준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7일간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마련함에 따라 논란의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국회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들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 규모별로 ▲300인 이상 사업장 및 공공기관은 오는 7월 1일부터 ▲5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은 2020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도록 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차등 적용 규정을 마련했다.

 

과연 ‘저녁이 있는 삶’ 보장될까?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2071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연간 근로시간 1692시간과 비교하면 379시간이 많다. 대략 47일을 더 일하는 셈이었다. 정부는 “세계 두 번째 장시간 노동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첫 발을 떼었다”고 자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발은 만만치 않다. 특히 시간 제한 없이 근로가 가능한 특례업종을 기존 26종에서 5종으로 축소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외식업도 이번에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갑작스러운 추가 고용의 부담을 지게 됐다.

현재 외식업계의 주당 영업 일수는 6.71일이고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1.54시간이다. 법이 개정되고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주당 평균 영업 일수는 6일,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0시간으로 줄어들게 된다. 영업 일수를 줄이거나 근로자 채용을 늘려야 한다.

노동자들도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전체 소득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7530원을 적용하면 기존에는 최대 222만4936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52시간으로 줄어들면 170만1421원으로 소득이 감소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됐지만 맛있는 저녁은 어렵게 됐다는 호소가 나오는 실정이다.

일부에서는 개정된 근로기준법이 투잡족을 양산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단시간 노동자들 중에는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뛰거나 평일과 주말에 업종을 변경해가며 일하는 투잡족이 적지 않았다. 기존 소득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투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고용이 증가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다른 방식의 해법을 마련하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공장 폐업과 해외 이전 등이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 상당 부분을 비정규직과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존하고 있는 업종은 더 이상 인건비 상승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대응 방안의 하나로 자동화와 무인화 시스템 도입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미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업계에서는 무인화 사업장이 속속 오픈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세븐일레븐이 국내 최초의 무인시스템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1호점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31층에 오픈한 데 이어 이마트24도 조선호텔점과 성수백영점에 무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달콤커피는 지난 1월부터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무인 로봇카페 ‘비트’를 선보였다. 늘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하는 것보다 자동화 설비를 갖추는 것이 장기적으로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이득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외식업 특수성 고려한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돼야

하지만 자동화 설비의 도입은 업종에 따라 한계가 있다. 공장이나 편의점 등은 무인화 설비를 도입할 수 있지만 음식점은 무인화 설비 도입이 쉽지 않다. 음식점은 특성상 주방의 요리사처럼 대체가 불가능한 인력들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인력을 늘리는 것은 더욱 힘들다. 음식점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지난 2016년 3월 자영업자 정책연대 및 생존권 사수 출범식을 필두로 정치권과의 정책 간담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근로시간 특례업종 존치를 요구해왔던 중앙회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30인 미만 사업장은 2022년까지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중앙회와 전국 지회·지부가 노력해온 결과로 보인다”면서도 “청년 일자리 창출,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노사정 합의 및 정부 여당의 노동개혁 대명제에는 이견이 없으나, 외식업계는 김영란법,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이미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건비 부담과 인력난까지 가중된다면 외식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 대표적인 소상공인 업종이자 상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외식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숙박·음식업과 같은 생활밀착형 업종들은 특히 물가 불안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만큼 정책 운영 시 이들 업종의 특성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들 업종의 근무 특성을 고려해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최근 최저임금 상승으로 업계가 크게 부담을 느끼고 있는 만큼 임금 수준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 더욱 적극적으로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숙명여대 신세돈 교수는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업종별 고용률만 살펴봐도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면서 근래 식품 · 외식업의 고용률 하락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업종별 상황을 너무 간과한 채 특례업종을 축소한 것이 오히려 경기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4개월간 식품·외식업의 고용률은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지만 오히려 특례업종에 포함된 운수업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식품·외식업계의 상황은 아주 나쁘게 흘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식업계의 특성상 인테리어와 설비 등에 투자된 자본을 회수하고 월세 등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영업을 풀가동해 공간 이용률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영업시간을 줄여나갈 수밖에 없어서 고정비 부담이 더 커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성됐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가를 높여야 하지만, 그 경우 부담은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전가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우리 사회의 오랜 이슈였음에도 이와 관련된 실증적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못했던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업종마다 다른 근무 환경을 고려해 그에 맞는 근무 조건을 제시할 만한 근거가 마련되지 못했던 것이다. 모든 업종에 52시간 근무를 강제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고민이 부족했다. 업장의 규모만을 따져 제도를 차등 적용하는 것은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으로, 업종별 특성에 따라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신세돈 교수 역시 “식품·외식업은 이들 영세업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데다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물가 상승을 체감할 수밖에 없는 업종인 만큼 이런 부분에 대한 섬세한 고민 없이 일괄적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한 것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꼬집었다. 소규모 자영업체들의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고민이 우선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외 선진국은 어떤가?

유럽 선진국의 근로시간 단축 과정과 특별연장근로제, 근로시간저축제 등의 보완책을 눈여겨볼 필요도 있다. 이들 국가 대다수는 우리나라보다 법정 근로시간은 짧지만 노동생산성이 월등히 높고, 삶의 질 또한 높은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노동생산성 극대화로 삶의 질 향상

OECD 국가 중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 연간 근로시간은 1430시간,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45시간이지만 노동생산성은 한층 우위에 있다. OECD 기준 네덜란드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최상위권인 60.2달러로, 한국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8.9달러를 기록하고 있는 형편이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바세나르 협약 등을 통해 수년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노사 및 여야 간 합의가 이뤄져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한 것은 물론 노동시간 단축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충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네덜란드의 경우 파트타이머들도 정규직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는 등 각자가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독일] 근로시간 저축계좌 도입으로 유연한 제도 운영

우리나라가 모델로 삼은 것으로 전해지는 독일의 근로시간 단축제의 경우 긴급구조 및 소방, 공공의 안전과 질서 유지, 노사 합의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요일과 법정휴일의 근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독일의 근로시간 단축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근로시간 저축제이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에 자신이 초과한 근로시간을 저축해뒀다가 나중에 휴가로 쓰는 제도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독일은 일요일 근무 시 2주 이내에 대체휴일을 사용해야 하며, 법정휴일에 근무를 하게 될 경우 8주 이내에 대체휴일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2000만 원 상당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프랑스] 산업별·기업별 예외규정 두어 노사 협약 가능

프랑스는 1980년대 주당 근로시간을 39시간으로 단축한 이래 18년간 제도를 유지하며 보완책을 마련했다. 1998년에는 주당 근로시간을 35시간까지 단축하는 방식을 택했다. 산업별·기업별로 연장근로에 대해 협약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두어 탄력적으로 정책을 운영하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1906년부터 주휴일 근로 금지 원칙이 유지되고 있지만 병원, 언론, 관광업 등 공공 분야에 대해서는 일요일 근로를 허용하는 대신 대체휴일을 마련하도록 예외규정도 함께 마련해두고 있다.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고 실업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는 국제관광지구의 백화점 등 일부 상점의 일요일 영업을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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