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8-4 P.51 Food  Essay]

 

문어와 모래시계

 

▲ 이미지 = Pixabay

editor. 윤동혁

 

3년 전 이맘때, 강원도 고성의 대진 포구를 서성거렸다. 짠 냄새 맡고 싶어서 훌쩍 떠난 여행이 아니다. 다들 배 타고 나가서 촬영하는데, 쓸모없는 늙은 PD는 깜깜한 새벽에 그들 떠나는 모습을 몇 커트 찍고서는 그냥 버려졌다.

누구는 군부대 관측소에서 대형 드론을 날리고, 누구는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배 위에서 촬영을 맡은 카메라맨 두 명도 서로 일을 분담했는데 한 사람은 하이 스피드(화면에서 매우 천천히 움직이는 모양)만 찍는다고 했다. 그날은 군사분계선 바로 코앞까지 다가가 문어를 잡을 수 있는, 그 지역 어업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었다.

문어잡이 어선들이 황급히 출항하고 나서도 여전히 포구는 어둠 속에서 분주했다. 해녀들도 시끌벅적 바쁘다. 배 위에 커다란 솥이 실려 있고 장작이 수북이 쌓여 있다. ‘잡은 물고기를 삶아 먹으려나? 선상에서 조업 중에? 설마, 아니겠지….’ 차갑게 식어버린 몸을 따뜻하게 달래줄 용도라고 생각하니 새벽 냉기가 조금은 덜 얄미웠다.

해녀들도 떠나고 햇살이 포구를 어루만지자 갑자기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었다. 양지바른 곳에서 때 이르게 꽃을 피운 벚꽃나무에는 벌들이 윙윙거리고 참새들이 날아와 함께 꿀을 빨았다. 올봄에는 잘 살펴보시라. 참새며 곤줄박이 같은 새들도 꿀을 탐해 꽃이 만개한 벚나무 가지 사이를 날아다닐 것이다.

간밤에 잠을 잔 여관 앞 공터에 큰 솥이 걸렸고, 할머니 몇 분이 일하고 계셨다. 새벽 일찍 조업하러 나갔던 문어잡이 어선들 중에 가장 먼저 들어온 배가 문어를 막 선창에 내려놓고 있을 때였다. 배와 할머니 사이는 꽤 먼 거리였는데 사람들이 큰 문어를 망태에 담아 거의 뛰다시피 달려왔다. 할머니는 문어를 받아 들면서 “음, 수진이네 14kg, 상범이네는 12kg…” 하면서 무게를 일일이 체크했다.

“할머니, 무게는 왜 달아보세요?”

“음, 나는 그냥 삶아주는 사람이야. 품삯 받는 거지.”

14kg이면 1만4000원이 품삯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냥 만 원만 주고 간다니 인심 참 야박해졌다. 그리고 가스값이 올라가면 힘들다고…, 그러면서도 끓는 물에 문어를 넣고 이리저리 뒤집어주는 손놀림과 얼굴 표정엔 팔팔한 생기가 가득했다.

그날 나는 수없이 들었다. 문어를 어떻게 삶느냐, 중요한 건 시간 맞추는 일이다, 조금만 오래 삶아도 질겨서 맛이 없다… 등등. 나는 촬영비 대신 캔맥주 10통을 샀다. 그리고 할머니들과 함께 (문어의 진짜 살코기가 아닌) 문어 내장을 안주로 화려한 점심식사를 즐겼다.

시간을 맞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문어는 특히 잘 삶아야 (시간을 맞추어야) 맛있다는 글은 공통적이었으나 그게 ‘5분이면 된다’에서부터 ‘60분은 삶아야 좋다’까지 다양한 의견이 올라와 있었다. 배에서 막 내린 것이나, 운반차로 산 채 10시간쯤 달려왔거나, 수족관에서 며칠 연명한 문어 등등 상황에 따라 삶는 시간의 차이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원주 시내에서 손님들과 식사하기로 했는데 미리 정해놓은 식당이 없어서 헤매다가 ‘문어로’라는 간판이 보여 그리로 돌진했다. 한상차림으로 나오는 집, 문어전골이 상 한복판에 떡 버티고 앉았다. 여러분은 이런 안내 말에 익숙할 것이다. “일단 한 번 삶았으니 끓어오르면 드세요.” 그러면 다 그렇게 한다고 말없이 동의했을 것이다.

이 식당에서 일하는 분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작은 모래시계를 냄비 옆에 살짝 놓았다.

“이 모래시계가 다 내려가면 드셔도 됩니다.” 아, 오래간만에 상큼한 식당에서 문어를 맛있고 즐겁게 먹었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으로 귀촌해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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