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8-5 P.31 Food  Essay]

 

102세 할머니의 제주도 몸국 이야기

 

editor. 윤동혁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해외 여행지가 오사카란다. 그곳의 번화가 도톤보리에는 중국인들도 많지만 한국인들이 와글와글, 보행이 어려울 정도다. 돈키호테(잡화 빌딩)는 또 어떤가. 아예 일본말은 들리지도 않는다. 싸니까, 친절하니까, 게다가 위생적이잖아. 카레집, 우동집, 회전초밥…. 한국인들이 중국 사람에게 치이기 싫어서 제주도 가기 싫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이곳 일본인들은 한국인 등쌀에 외출하기 싫다는 소리를 한단다.

나도 오사카가 좋다. 특히 한국 반찬 가게와 야키니쿠(고기구이)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쓰루하시는 (장삿속으로 많이 변질됐다는 소리를 듣고 있긴 하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정감이 솟아오른다. 이 국제시장은 제주특별구나 다름없어서 제주 사투리의 원형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찾아오곤 한다. 4·3사건의 증언을 듣기도 하고, 심지어는 나처럼 제주 향토음식의 흔적을 찾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방’이라 이름 붙인 요양원을 찾아갔다. 어린 나이에 제주도에서 부모 등에 업혀 건너온 사람도 있고, 아예 이곳에서 2세로 태어난 분도 계셨는데 할머니들만 모시는 곳이었다. 제일 연장자인 현인산(玄仁山) 할머니는 1917년에 태어나셨으니까 우리 나이로 102세! 귀가 잘 안 들리시는 걸 빼면 120세는 무난해 보일 정도로 정정하시다. 한글 공부 시간엔 연필로 ‘떡국’, ‘한국’ 이런 글자를 공책에 꾹꾹 눌러 쓰셨다.

할머니 귀에 바짝 입을 대고 큰 소리로 여쭈었다.

“할머니, 제주 음식 중에 뭐가 제일 잡숫고 싶으세요?”

잠깐 사이를 둔 다음 할머니는 거의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국!”

열 몇 살에 건너오셨다니까 제주도에서 몸국(원래 표기는 아래아가 들어간 국, 몸은 조류인 모자반의 제주도 방언으로 몸국은 몸과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을 먹어봤다고 해야 몇 번이나 드셨겠는가. 몸국에 들어가는 해조류는 바닷가에서 얼마든지 건져 올릴 수 있었지만(12월에서 이듬해 2월 사이) 몸국이란 음식이 이 바다풀만 갖고 만드는 게 아니라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맛볼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몸국은 결혼식이며 환갑잔치 같은 동네 경조사 때, 마을 사람 다 드시라고 만드는 특별 음식이었다. 내장만 빼버린 돼지가 통째로 들어갔다니 얼마나 기름지고 고소했겠는가. 기름 둥둥 뜬 그 국물 맛이 “배지근배지근했다”고 몸국 전문 식당 ‘신설오름’의 안주인 박성열 씨가 말해주었다.

“사실 요즘 몸국은 옛날 형태만 남아 있는 거지요. 돼지의 잡뼈와 고기가 들어가긴 해도 옛날 그 ‘배지근’한 맛은 느낄 수 없으니까….”

박 씨는 옛날 몸국은 ‘돼지 통육수’에 담겨 나왔으며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야만 만들어지는 음식이었으므로 잘해야 1년에 서너 번 맛보는 게 고작이었다고 말해주었다.

현인산 할머니는 일본으로 떠날 때까지 이 ‘돼지 통육수 몸국’을 몇 번이나 드셨을까. 오사카에 자리 잡은 할머니의 가족들은 과연 이 몸국을 단 한 번이라도 만들어 먹었을까. 한국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곳에서 돼지를 잡기는 했을 테지만 몸국에 들어갈 모자반이 오사카 앞바다에 서식하기는 했을 것인가.

나는 제주도에 가서 ‘4·3사건 기념식’에 참석하신다는 현인산 할머니를 기다렸다. 비록 통육수 몸국은 아니더라도 따끈한 몸국 한 그릇에다 옥돔도 한 마리 구워서 천천히 고향 맛을 음미하시도록 해드릴 요량이었다. 그러나 휠체어에 앉아서라도 꼭 제주 땅을 밟으시겠다던 현인산 할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건강이 비행기 타는 여행을 떠받칠 수 없어서 포기하셨다고 했다.

벚꽃은 멀미가 날 만큼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나는 몸국 담을 빈 뚝배기를 가슴에 품고 바다만 바라보았다. 할머니 생전에 국은 몸국으로 변했고, 통육수는 잡뼈 국물로 바뀌었으며, 이제는 제주의 젊은이들도 별로 즐겨하지 않는 음식이 되었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으로 귀촌해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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