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8-6 P.49 Food  Essay]

 

제비 찾아오면 막국수집 며느리 바빠지는데…

 

▲ 이미지 = https://www.flickr.com/photos/nados802/14913472753

editor. 윤동혁

 

나는 ‘레드벨벳’이란 말을 들으면 칸영화제만 떠오른다. 꼰대다. 평양에 간 남쪽 가수들이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었다고 돌리는 채널마다 냉면 먹는 화면을 쏟아낼 때 아, 레드벨벳이 유명한 가수로구나 처음 알았다. 지금 보아가 몇 살이냐. 서른이 넘었네. 이 친구가 한국보다 일본에서 인기가 뜨겁게 솟아오를 때 도쿄에서 누가 물었다. 질문한 사람은 현지 가이드였는데 ‘선생님, 보아 아시죠?’ 그래서 “응, 큰 뱀 말이지”라고 대답했다. 십몇 년 전에도 꼰대였구나. (^^ ;)

남북 정상회담과 함께 평양냉면이 음식 스타로 떠올랐다. 마침 날씨도 따땃해지던 터라 이래저래 평양냉면집에 줄서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니 음식도 ‘팔자’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강원도 생활이 길어질수록 막국수 사랑도 그만큼 깊어지고 있으므로 평양냉면이 혼자 설치는 게 못마땅했다. 북한에도 막국수가 있나? 있다면 그 맛은 어떨까. 있다면 어디서 맛볼 수 있을까.

‘꼰대’이긴 하지만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니… 기막힌(취재하고 싶은) 내용을 발견했다.

홍길두 할머니(92). 북한에서 넘어오신 분인데 춘천에서 50년이나 막국수 장사를 하셨다고(안타깝게도 과거형) 사진까지 실려 있다. 할머니 말씀이 “냉면뿐 아니라 막국수도 오래전부터 이북에 있었다. 남한에서 동치미에 말아 먹는 전통 방식과 똑같이 해 먹는다”면서 “통일이 되면 이북에 남아 있는 동생들과 막국수 한 그릇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이셨다(라고 쓰여 있다).

다행이다. 통일이 되면, 아니 그 전에 여행 자유화라도 되면 북쪽에 가서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평양냉면 애호가들껜 죄송스럽지만) 슴슴한 평양냉면이 아니라면 그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홍길두 할머니도 말씀하셨다. 막국수는 겨울철에만 먹었다고.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이젠 봄나물 뜯으러 다닐 때 슬금슬금 준비해서 가을바람 서늘해지면 막국수의 한때가 스르르 막 뒤로 사라진다. 내가 살고 있는 원주시 귀래면엔 제비가 많이 날아온다. 그 제비가 시끄럽게 지저귀면 “막국수 먹을 때가 왔다”고 메밀 시장기가 드는 것이다.

나의 숙소 겸 편집실에서 원주 쪽을 향해 고개 하나를 꼬불꼬불 넘어가면 그 유명한 박경리 선생의 토지문화관 입구가 나온다. 지금 한창 논에 물을 대고 있으니 곧 모내기가 시작되리라. 논이라고 해봤자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만 하다. 그래도 그 작은 논을 보고 매년 날아오는 제비가 있어서 올해도 ‘대추나무집’에 알을 까고 새끼를 품었다. 이 식당은 오로지 막국수 하나만 내놓는다. 물론 감자전과 편육도 판다.

누가 “그 집에 가면 제비 똥 조심해야 한다”길래 가봤다. ㅁ자 집이었는데 중간은 뻥 뚫려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제비도 구경할 겸) 나무 탁자에서 먹기로 했다. 과연 제비 한 쌍이 열심히 드나들며 먹이(벌레)를 나르고 있었는데 새끼들이 막 알을 깨고 나온 듯했다. 한적한 논두렁 식당에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리 입맛이 이렇게 계절을 탄다는 말인가, 놀라웠다.

이 집은 가족 식당이다. 나이 드신 부부가 주방에서 국수 뽑고 전 부치시고… 장대한 덩치의 아들이 주방과 계산대를 오가며 균형을 잡았다. “어서 오세요.”, “무얼 드실 건가요.” 이렇게 손님을 맞으며 음식 나르는 여인은 이 집 며느리였는데 한국말을 잘해도 억양이 일본인이었다. 워낙 바쁘게 종종거리며 손님을 맞이했으므로 몇 마디만 물어보았다.

“고향은 어디세요?”

“이바라키현입니다.”

“고향엔 가끔 가시나요?”

“네, 날씨가 추워지면….”

겨울철에만 먹었다던 막국수가 언제부터 여름 음식이 되었을까. 어쨌든 날씨가 추워져야 일본 며느리는 고향 나들이를 할 수 있으렷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으로 귀촌해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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