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SOS 김현수가 간다

[음식과 사람 2018-6 P.86 Consulting]

▲ 이하 사진 외식경영 제공

신생 함흥냉면 전문점 ‘신부자면옥’ 신섬길 대표(38)는 서울 강남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부친의 대를 이어 부자(父子)가 외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미국 유학 시절, 방학 때면 귀국해 부친의 식당 일을 도왔다. 그에게 식당 일은 낯설지 않았다. 고령에 접어든 부친은 “공부 마치고 남 밑에서 일해도 언젠가는 그만둘 텐데 차라리 내 일을 일찍 시작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아들은 부친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고깃집을 오래 경영했던 부친에게 식당 운영 노하우를 충분히 배웠지만 새로 시작한 함흥냉면 전문점은 또 다른 세계였다.

 

consulting. 김현수 editor. 이정훈 <월간 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Why]

삼겹살집 내려다 차린 함흥냉면집

김현수 외식콘셉트기획자(월간 외식경영 대표, 이하 김 기획자)는 신 대표의 부친이 한우 전문점을 운영할 때 ‘나도 한우 등심 맘껏 먹을 수 있다’는 임팩트 있는 카피로 전단지를 제작해 성공시킨 적이 있다. 이후 계속 인연을 유지해오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식당 경영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부친이 고령이어서 고깃집 운영이 힘에 부치자 점포를 이전하고 주꾸미 전문점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신 대표가 부친과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당시 김 기획자는 “주꾸미는 유행을 타는 아이템이니 하지 말라”고 말렸다. 아닌 게 아니라 개점 초반에는 주꾸미 장사가 잘됐지만 유행이 지나자 한풀 꺾였다. 2년 뒤 김 기획자의 조언대로 다시 삼겹살 전문점으로 업종을 바꾸고 현재 순조롭게 운영 중이다.

삼겹살집 경영이 호조를 보이자 부자는 2호점을 낼 준비를 했다. 반 년 동안 새 점포를 물색했으나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점포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몇 년 새 삼겹살은 경쟁이 심해졌다. 게다가 삼겹살집은 영업시간이 너무 늦게 끝난다. 고령의 부친과 신혼인 신 대표가 심야에 두 곳을 관리하기에는 어려움이 예상됐다. ‘삼겹살 2호점 프로젝트’가 교착상태에 빠졌던 그때 김 기획자가 “이 집 냉면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니 수도권 대로변에 냉면 전문점을 내보라”고 귀띔했다.

부자는 삼겹살 2호점 프로젝트를 잠시 보류하고 방향을 선회했다. 두루 고려해보니 냉면집은 삼겹살집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 같았다. 김 기획자는 분당 이남을 점포 후보지로 추천했다. 수도권에서도 그 일대에는 뛰어난 냉면집이 드물다. 포지셔닝의 중요성을 고려한 조언이었다. 2018년 1월, 부자는 분당선 보정역 근처에 함흥냉면 전문점을 개업했다.

 

[Problem]

철도와 도로 사이 낀 점포

한겨울에 개업… 타이밍 부적절

삼동의 한겨울에 개업하다 보니 냉면집으로서는 타이밍이 적절치 못했다. 냉면 성수기인 여름을 앞둔 봄철에 개업일을 맞췄어야 했다. 한겨울에 검증도 안 된 신생 냉면집에 냉면을 먹으러 올 용감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상권도 불리했다. 입지가 이른바 지나가는 자리였다. 대로변에 위치했지만 1차 상권 내에 다른 주택가나 사무실이 없어 마치 섬 같았다. 입점한 장소가 분당선 철도와 8차선 자동차 도로 사이에 낀 점포였다. 두 지점을 연결해주는 철도와 도로가 오히려 외부와 고립시키는 구실을 하는 지역이다. 이전에 같은 이유로 여러 가게들이 입점했다가 망해서 나가곤 했다. 그런 까닭에 고객들에겐 좋지 않은 이미지로 인식된 자리였다. 권리금이 없고 주차장이 넓은 것이 그나마 장점이었다.

 

[Solution]

‘육수 맛있는 함흥냉면’과 육개장·만두로 위기 탈출

김 기획자는 평소 냉면집은 많아도 ‘육수 맛있는 함흥냉면’은 드물다는 걸 절감했다. 육수가 맛있는 냉면만 내놓는다면 그만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신씨 부자는 고깃집을 18년간 운영하면서 충분할 만큼 함흥냉면 실력을 쌓았다. 특히 육수가 뛰어났다. 그 점을 인지하고 있던 김 기획자가 함흥냉면을 권유했던 것이다.

김 기획자가 육수 맛있는 냉면에 꽂히게 된 사연이 있다. 몇 해 전 일본에서 모리오카 냉면으로 유명한 냉면집 주인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에는 육수가 맛있는 냉면이 없다”고 했다. 그 주인은 함경도 출신 재일동포의 후예였다. 선대로부터 함경도식 농마국수의 일본 버전인 모리오카 냉면 전문점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냉면 원조인 모국에 가면 훨씬 우월한 냉면 맛을 만나리라 기대했으나 막상 한국 냉면들이 그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김 기획자는 외식업 종사자 강연 때마다 이 사실을 환기시켰다.

지금 함흥냉면은 세대교체기에 접어들었다. 기존 함흥냉면 레시피는 재일교포 냉면집 사장의 지적처럼 육수의 깊은 맛이 없다. 함흥냉면이 외식업계 강자로 뜨다가 한풀 꺾인 것은 그 맛이 하향 평준화됐기 때문이다. 이 틈에 최근 평양냉면집들이 우후죽순 불어났다. 하지만 새로 생긴 평양냉면집들 역시 그 맛이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오래된 것은 저물어가고 새로운 것은 아직 나오지 않은 지금이 맛있는 육수를 장착한 냉면을 내놓을 적기라는 것이 김 기획자의 주장이다.

냉면은 계절적 한계가 분명하다. 냉면 전문점이라면 비수기에 냉면을 보완할 메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종의 ‘넘버 투(2)’ 메뉴다. 신씨 부자는 갈비탕을 상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 기획자는 이에 반대했다. “갈비탕은 원가가 높고 무거운 메뉴다. 대신 육개장으로 바꾸라”고 강력히 조언했다. 갈비탕은 1만2000원 정도 받아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갈비탕은 부담스러운 식사 메뉴다. 업주 입장에서도 원가가 너무 높아 이익률이 낮다.

육개장은 고연령층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메뉴다. 노년층뿐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모든 연령층에서 두루 선호하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막상 잘 구현해내는 식당이 거의 없다. 식재료 원가도 좋은 편이다. 갈비탕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육개장은 신 대표 부자가 고깃집을 하면서 그동안 조리 노하우를 갈고닦아온 터였다. 여기에 김 기획자가 육개장 조리법 기술 일부도 전문가에게 전수받을 수 있도록 했다.

주변에 사무실이 없어서 직장인이 좋아하는 칼칼한 해장국 스타일이 아닌 담백하고 맑은 국물로 내고 푸짐하게 제공했다. 신 대표 부친의 식재료 고르는 안목이 매우 높아 양질의 육개장용 한우를 구매한 것도 큰 힘이 됐다. ‘한우육개장’의 가격은 1만 원이다.

만두는 사이드 메뉴이자 함흥냉면 전문점에서는 필수 메뉴다. 김 기획자는 반드시 사이드 메뉴로 만두를 채택할 것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공장 제품 만두를 받아서 썼다. 역시 손님들 반응이 좋지 않았다. “다른 음식들은 다 맛있는데 만두만 별로”라는 것이었다. 메뉴 구성상 만두를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만두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직접 만두를 빚기에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일이 많고 일손도 추가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이곳저곳에서 맛있다는 기성품 만두를 두세 차례 받아 썼다. 그럼에도 고객들의 불만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때 김 기획자가 양질의 만두소를 생산·판매하는 업소를 추천했다. 현재 그곳의 만두소를 구매해 만두를 빚어 내놓고 있다. 사실 만두는 만두소 만드는 작업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다. 맛있는 만두소를 구입해 업소에서 만두를 빚어 내놓으니 만두 맛이 웬만한 수제만두보다 훨씬 나아졌다.

만두소를 바꾸자 만두 인기가 아주 뜨거워졌다. 초여름으로 이어지는 냉면 비수기의 만두 매출이 점포 운영에 적잖은 도움이 됐다. 앞으로 가을과 겨울이 오면 만두전골과 떡만둣국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훌륭한 냉면 대체 메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육과 회무침도 사이드 메뉴로 구성하고 있다. 모두 손님들이 부담 없이 추가로 주문하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After]

강력한 사이드 메뉴와 탄탄한 상품력으로 비수기 돌파

개업 초기에는 계절적 요인에다 열악한 주변 상권과 홍보 부족 등으로 매출이 하루에 40만~50만 원도 안 되었다. 그러나 인접 보정동 아파트 주민들을 중심으로 육수가 맛있는 함흥냉면이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재방문 고객이 늘었다. 여기에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으로 중·장년층 고객들의 마음을 흔든 육개장과 발군의 만두가 쌍끌이로 매출을 견인했다.

김 기획자는 “신 대표가 미국에서 오래 공부했기 때문에 시야가 넓을 것이다. 이제 외식업에 뛰어들었으니 식당 운영을 좀 더 시스템화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신 대표는 현재 주방 운용과 접객 서비스를 매뉴얼화하고 있지만 운영 변수가 많아 쉽지는 않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삼겹살 2호점 출점 계획을 함흥냉면 2호점으로 변경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함흥냉면은 삼겹살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다. 아무나 뛰어들 수 있는 메뉴가 아니다. 더욱이 신 대표가 경험해보니 관리 용이성, 인력 운용, 작업 난이도, 라이프사이클 등에서도 함흥냉면에 더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만 겨울철 계절성을 탄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다. 그렇지만 현재 하루 300~500그릇 정도의 함흥냉면이 팔린다. 여름철 성수기가 오면 하루 1000그릇 이상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판매량이 비수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다. “외식업자는 냉면 하나만 제대로 만들어도 평생을 간다”는 김 기획자의 말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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