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8-7 P.57 Food  Essay]

 

식탁이 뜨거웠던, 검정콩 논쟁

 

▲ 이미지 = Flickr(https://www.flickr.com/photos/koreanet/27775694306)

editor. 윤동혁

 

덥다 못해 숨이 턱턱 막혀도 요 3총사 덕분에 나의 여름은 수시로 황홀하다. 어떨 땐 이 아이들 만나려고 더 더워지기를 바랄 때도 있다. 3총사란 막국수, 냉면, 그리고 콩국수다.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동네 막국수는 세 종류다. 물이냐 비빔이냐 거기에 하나 더, 메밀콩국수도 나온다. 막국수의 메밀 면발을 콩국물에 담아주는데, 나는 아직껏 전국 어디에서도 (어딘가 있을 것이지만) 메밀콩국수를 본 적이 없다. 안타깝게도 찾는 분들이 얼마 없어서 주말이나 휴일에만 맛볼 수 있다는 게 흠이다.

동네를 벗어나면 냉면이냐, 콩국수냐로 갈등 온도가 치솟는다. 예전에 짜장이냐 짬뽕이냐로 정신세계가 붕괴됐던 것처럼. 그런데 아주 쉽게 선택의 기로를 빠져나올 수 있는 바로 이 음식, 검정콩국수가 눈에 띄면 곧장 주문 모드로 들어간다. 원주시청에서 일을 보고 나오는데 ‘고독한 미식가’도 아니면서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오후 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는데 냉면, 막국수, 콩국수 3총사 중 하나를 만나려고 골목 탐방에 나섰는데, 야! 이럴 수가.

돼지갈비 전문점이었는데, 검정콩국수 메뉴가 있었다. 국산 검정콩 100%를 사용한단다, 그리고 오후 1시 이후가 돼야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이건 마치 나보고 ‘어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주방 가까운 식탁엔 나이 엔간히 든 아줌마 넷이서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숯가마나 사우나 그리고 이런 식당에서 사람들 대화 경청하는 것이 재미있고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이날은 정말 ‘큰 것’을 건졌다.

“나는 아픈 게 꿈이었어.”

아픈 게? 아픈 상태, 그러니까 큰 병에 걸려 누워 있거나 아예 병원에 실려갔으면 했는데 평생 아프질 않으니 이 또한 운명의 조화가 아닌가 하면서 팔자타령이 이어졌다.

“세상에나, 왜 아픈 게 꿈이었어?”

나도 궁금했다. 이 세상 모든 이의 절절한 꿈인 건강의 반대편에 서보겠다고… 왜? 무슨 답변이 나왔겠는가.

“가만히 드러누워 남이 차려주는 음식 받아먹고 싶어서.”

저런 꿈을 품고 살아온 데는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자기의 소화 능력이 경이롭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밥을 한 끼만 거르고 길에 나서면…”

달리는 자동차가 전부 밥솥이나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밥그릇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냥 시뻘건 배추김치 척 얹어서 볼때기 터지게 먹고 싶어진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때 가벼운 등산복 차림의 중년 아저씨 두 사람이 입장했다. 주저 없이 검정콩국수를 시켰다. 나는 그때 막 국수를 떠먹고 있었던 터라 그 논쟁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모른다.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면서 서로 옳다고 열을 올리니까 귀를 쫑긋하고 들어봤다.

“쥐라는 놈을 한자로 ‘서(鼠)라고 하잖아요. 서생원이 뭐야, 쥐를 그렇게 부르는 것처럼 검정콩 서리태의 ‘서’자는 쥐, 쥐눈이콩이라는 거지.”

이건 등산복 아저씨 팀의 주장이다.

주인아주머니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서리를 맞고서야 수확하는 콩이라 서리태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문제는 양쪽이 다 시골에서 오랜 세월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자기 말이 옳다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스마트폰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나도 서생원 학설 쪽이었다. 그때 주인아주머니가 뒤로 한발 물러섰다. 지동설을 웅얼거리며 종교 재판정을 나서는 갈릴레오처럼. 그리고 나무위키나 백과사전은 아주머니의 ‘서리 맞아서 서리태’가 옳다고 판결했다. 쥐 서(鼠) 자는 서리태가 아니라 쥐눈이콩(서목태)에 쓴다고 명시했다.

나는 아주머니 학설이 옳다고 말하지 못하고 묵묵히 콩국수만 먹었다. 검정깨, 참깨에다 잣도 갈아 넣었다는 검정콩칼국수는 아삭이고추를 곁들이자 찬란하게 빛났다.

 

[윤동혁] 글쓴이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한국일보, MBC, SBS 등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으로 귀촌해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다. 한국방송대상을 3회 수상했고, <색, 색을 먹자>라는 책을 펴내는 등 집필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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