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Ingredient

[음식과 사람 2018-7 P.88 재료이야기]

 

▲ 이하 이미지 = PIXABAY

감자는 빈곤이 덮칠 때마다 인류를 구원한 식량 자원이었다. 먹을거리가 풍족해지면서 간식이나 배고픈 시절의 추억거리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만, 감자는 지금도 여전히 주요 작물이며 장점이 많은 식재료다. 너무 친숙해서 느끼지 못했던 감자의 매력을 지금부터 알아보자.

 

editor. 강보라

 

감자의 역사는 고난의 시간을 보낸 인류의 역사와 많이 닮아 있다. 안데스의 고산지대에서부터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재료로 자리 잡기까지 힘든 시간을 겪어왔다.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지만, 과거에는 미개한 사람들이나 먹는 것으로 취급받고 병을 옮기는 작물로 오해받기도 했다. 이런 편견은 생활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서양에서 ‘포테이토 헤드(Potato Head, 감자 머리)’는 바보 같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별로 좋지 않은 일로 이슈가 되는 것을 ‘핫 포테이토(Hot Potato)’라고 표현하는데, 흔히 사회적 논쟁거리를 ‘뜨거운 감자’로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감자를 배고픈 시절에 허기를 채워주던 값싼 먹거리 중 하나로 여겨왔다. 하지만 감자의 위상은 단순한 구황작물 이상이다. 감자는 인류를 기아에서 구한 음식이며, 더 나아가 세계사를 바꿔놓은 작물이기 때문이다.

 

독일이 패망한 건 감자 때문?세계사를 바꿔놓은 감자

- 왕실 정원에서 화초로 사랑받던 ‘감자’

- 미개한 음식으로 천대받기도… 전쟁 계기로 가치 재조명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인 감자는 유럽 탐험가들에게 알려지며 전 세계로 퍼졌다. 감자는 온대지역뿐만 아니라 열대지역에서도 재배되고, 위도상으로 북위 70도까지 재배가 가능하다. 남미 해발 4000m, 알프스산맥의 1900m 고지대에서도 재배되는 위력적인 힘을 가진 작물이다. 이처럼 다양한 곳에서 재배할 수 있고, 수확량도 많은 편이라 굶주린 유럽 사람들의 배를 채우는 귀중한 식량 자원이 될 수 있었다. 토지가 비옥하지 않아 밀이 충분히 수확되지 못하던 때에 밀을 대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17세기 말에는 계속된 감자 풍년으로 프랑스, 러시아, 아일랜드에 이어 전 유럽을 구제함으로써 인구 증가의 한 원인이 됐을 정도다. 하지만 1840년대 감자에 역병이 돌아 7년간 대흉년이 이어져 2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고 100만 명 이상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감자 역병에 관한 연구를 시작해 ‘식물병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러니 감자가 세계사를 바꿔놓았다는 말은 단순한 수식이 아닌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에 의해서만 변화하고 발전한 것이 아니라 감자와 같은 자연 산물에 의해 변화·발전하기도 했다.

유럽의 정복자들에게 발견된 감자는 지금과 달리 크기도 작고 어두운 갈색을 띤 모양이었다. 이후 유럽으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먹을 식량으로 감자를 가져가면서 전해지게 됐는데, 대중적으로 퍼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유럽인들은 남미 원주민들의 주식인 감자는 가난하고 미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감자의 울퉁불퉁한 외형과 작은 점들은 중세시대 무서운 질병인 천연두를 연상시켰다. 당시에는 감자를 만지기만 해도 병이 옮는다고 생각해 ‘악마가 먹는 음식’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가축 사료용이나 식물학자들의 연구용으로 사용될 뿐이었다. 감자를 터부시하는 경향은 빈곤에 시달리던 하층민들 사이에서 더 심해서 굶으면서도 감자 먹기는 시도하지 않았다.

반면에 귀족들의 정원에서는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감자가 최음제라는 은밀한 믿음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무, 양파, 고구마 같은 뿌리식물들이 성욕을 자극한다고 믿었다. 영국의 헨리 8세도 이런 최음 효과를 믿어 왕실의 정원에서 감자를 키웠다.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옷 단추 사이를 감자꽃으로 장식하기도 했고, 그의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보라색 감자꽃을 머리에 꽂기도 했다. 왕족들이 쓰는 그릇에도 감자꽃을 그려 넣을 정도였다.

천대받던 감자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것은 ‘전쟁’이었다. 감자는 역사적으로 전쟁을 통해 성장했고,전쟁의 역사를 따라 전 세계로 전파됐다. 1778년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의 전쟁은 30년 감자전쟁으로도 유명하다. 두 나라는 적의 주요 식량 자원인 감자를 차단해서 병사들을 굶주리게 하는 작전으로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주축이 된 나폴레옹전쟁 때에도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빵의 재료인 밀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감자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나폴레옹전쟁을 겪으며 싸고 영양가 높은 감자를 활용하게 됐다. 이를 시작으로 영국에서 감자가 주요한 식량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감자는 주요 전쟁 식량으로 쓰였다. 미국 병사들은 독일 병사들의 식량원이었던 감자밭을 습격해 초토화하는 작전으로 세계대전을 빨리 끝내게 됐다고 한다. 독일이 감자 때문에 패망했다는 설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서민 식탁의 친근한 동반자

- 한국인이 감자를 먹기 시작한 건 불과 200년

- 강원도의 힘 감자, 특히 6~8월 하지감자 일품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200년밖에 되지 않았다. 감자는 조선시대 후기에 만주에서 처음 전해졌다는 설과 인삼을 캐러 왔던 청나라 사람에 의해 전해졌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유럽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감자는 우리 식탁에 빠르게 자리 잡았다.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칡뿌리, 토란, 도라지, 인삼 등 뿌리식물을 일상식과 의약재로 이용해왔기 때문에 뿌리식물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흉년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감자를 큰솥에 푹 삶아서 소금에 찍어 먹거나 김치를 반찬 삼아 밥 대신 먹기도 했다. 감자는 이렇게 가난의 고통을 함께 나눈 중요한 작물로 기억되고, 논농사를 짓기 힘든 강원도에서는 감자가 주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요즘 감자는 철이 따로 없지만 지역에 따라 나오는 시기가 각각 다르다. 제주도에서는 8월과 12월에 두 번 심는데 여름에 심은 것이 12월 하순부터 나오며,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밭에 그대로 두었다가 4월까지 캔다. 4, 5월에는 겨울에 심은 제주 감자와 영호남 지방에서 하우스로 재배한 것이 나온다. 6, 7월에는 중부와 남부 지방의 노지 감자와 강원도 하우스 감자가 나오며, 8~10월에는 강원도 노지에서 재배한 것을 수확한다.

특히 강원도에서 나는 감자는 수분이 적어서 포슬포슬하고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감자는 전국에서 재배되는 친숙한 작물이지만 감자의 주산지로 강원도를 떠올릴 만큼 강원도 감자는 유명하다. 실제로 강원도 감자의 재배 면적은 전국 1위로 30%의 생산량을 점하고 있으며, 병충해가 잘 생기지 않는 강원도 감자의 특성 덕분에 전국 씨감자의 60%를 공급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강원도 ‘하지감자’는 일품으로 꼽힌다. 하지감자는 보통 3월 말부터 4월 말까지 심어 여름으로 접어드는 하지 무렵인 6월 말부터 무더위가 스러지는 8월 말까지 수확한다.

이즈음 수확하는 햇감자는 표면에 하얀 분이 보슬보슬하고 속살은 유난히 노르스름한 특징이 있다. 봄의 낮과 밤의 기온 차를 견디며 녹말 성분을 잔뜩 머금기 때문이다. 식물은 날씨가 추워지면 제 몸의 영양분을 뿌리로 보내 저장하는데, 낮에는 따뜻한 햇살을 받아 잎에서 왕성하게 당분을 만들고 쌀쌀해지는 밤에는 뿌리(감자)로 낮에 만든 당분 보내기를 반복한다. 해발이 높은 강원도는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녹말 성분이 많이 생성돼 감자를 더욱 살찌게 만든다. 그 덕분에 초여름 밭에서 감자 줄기를 뽑아 올리면 알알이 분이 오른 감자를 볼 수 있다. 하지감자의 포슬포슬한 식감은 강원도의 기온과 감자의 성실한 노동이 빚어낸 합작품인 셈이다.

 

과식하거나 짜게 먹은 다음 날 감잣국을 먹는 이유?

- 감자에 풍부한 칼륨이 나트륨 배출 도와 부기 빼줘

- ‘밭의 사과’라 불릴 만큼 다량의 비타민C 함유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감자에도 통용된다. 다양한 조리법으로 자주 접하는 감자지만, 우리는 감자의 진가를 잘 모른다. 저렴한 비용으로 영양 덩어리인 감자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다. 감자에는 비타민C, 비타민B군 복합체, 칼륨, 칼슘, 철분, 마그네슘 등의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탄수화물 함량이 높아도 식이섬유가 풍부해 지방, 당질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고 공복감도 줄여줘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감자는 빠질 수 없는데 된장찌개, 청국장, 감자탕, 생선조림, 닭볶음탕 등 우리가 자주 먹는 음식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간다. 감자를 대표하는 영양소는 칼륨인데, 칼륨은 체내에 수분을 쌓아두는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작용을 한다. 나트륨 함량이 높은 찌개류에 감자를 넣어주면 감자의 칼륨 성분이 나트륨을 소변으로 배출시켜 몸에 쌓이는 것을 방지해준다. 나트륨이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생감자 100g에는 보통 556㎎의 칼륨을 함유하고 있다. 칼륨은 나트륨 이온과 함께 세포의 삼투압과 수분평형을 유지토록 해 근육경련 등의 증상도 예방해준다. 과식하거나 짜게 먹은 다음 날 아침에 감잣국이나 감자수프를 먹으면 부기를 쉽게 뺄 수 있다. 칼륨은 혈액순환을 도와 혈압도 낮춘다. 맵고 짠 음식을 즐기며 10명 중 3명이 고혈압 환자인 한국인의 밥상에 감자가 빠지면 안 되는 이유다. 염분이 과다한 고혈압 환자는 혈압강하제를 오랫동안 복용해야 하는데, 감자를 많이 먹으면 감자가 나트륨의 해를 경감시켜주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된다.

육류 요리에도 감자는 유익한 식재료다. 감자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육류 섭취를 통해 산성화되고 있는 인체를 중화시켜준다. 물론 포슬포슬한 햇감자는 어떤 양념과 어울려도 맛이 있다.

감자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하나는 비타민C다. 비타민C는 대표적인 항산화 비타민으로 피부에도 좋고 심장질환, 뇌졸중, 당뇨병 예방에도 좋은 작용을 한다. 감자는 이러한 비타민C가 다른 채소에 비해 월등히 많아 ‘밭의 사과’라고도 불린다.

열에 의한 손실도 적다. 시금치는 3분만 데쳐도 비타민C가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감자는 40분간 쪄도 비타민C의 4분의 3이 남는다. 수용성 비타민인 비타민C는 조리 과정에서 물에 잘 녹고 쉽게 산화되거나 파괴되기 쉽다. 그래서 비타민C가 풍부한 채소는 날로 먹거나 살짝 데쳐 먹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감자만큼은 예외다. 감자는 열을 가해도 표면의 전분이 막을 형성해 비타민C가 유실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다만 영양소 손실을 줄이려면 껍질째 통째로 삶는 것이 좋다. 감자의 껍질은 삶을 때 몸에 좋은 칼륨 성분이 녹아 나오는 것을 방지한다.

감자를 삶을 때는 소금을 조금 넣고 삶아야 색도 좋고 맛도 좋다. 설탕으로 간을 하면 감자의 비타민B1이 설탕을 대사하는 과정에서 소비돼 영양학적으로 좋지 않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삶은 감자 100g에는 30㎎의 비타민C가 들어 있다. 따라서 주먹만 한 감자 한 개 정도면 비타민C 하루 권장량(100㎎)을 채울 수 있다. 감자에는 또한 세포의 돌연변이를 막음으로써 암을 예방하는 클로로겐산과 활성산소를 중화해 항암작용을 돕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 ‘매일 감자를 하나씩 먹으면 장수한다’거나 ‘장수 인구가 많은 나라는 감자를 많이 먹는다’는 이야기는 이런 데서 나온 것이다.


무던하고 둥글둥글한 감자도 싹 나면 무섭다?

- 녹색으로 변한 껍질은 제거하고 싹은 도려내고 먹어야

- 탄수화물 함량 높아 다량 섭취 시 비만 유발할 수도

감자는 곡류의 일종이다. 곡류에는 탄수화물이 많이 포함돼 있어 다량 섭취 시 비만의 위험이 크다. 밥을 먹을 때 감자조림이나 감자채볶음 같은 것을 반찬으로 곁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쌀밥에 감자가 더해지면 탄수화물의 양은 더욱 많아진다. 따라서 감자를 반찬으로 먹는다면 그만큼 밥의 양은 줄이는 것이 좋다.

덜 익힌 감자는 식중독에 걸릴 것이라는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열 조리를 거쳐 섭취하지만 감자도 고구마처럼 생으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감자를 그대로 섭취하면 맛이 없다. 감자에 열이 가해지면 감자 내부의 메타아밀라아제 효소의 작용으로 전분이 당화돼 단맛이 난다. 그래서 가열 후 섭취하는 것이 맛이 좋다. 반면 날것을 섭취하면 비리고 맛이 없다. 감자를 생으로 섭취하려면 반드시 신선한 감자를 선택해야 한다. 신선한 감자가 아니면 설사나 복통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감자에 함유된 독성물질인 솔라닌은 햇빛에 노출될 때 감자가 녹색으로 변하면서 생기는데, 감자의 싹이 트는 3, 4월 봄철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솔라닌은 감자 싹에 가장 많이 들어 있다. 그다음에는 껍질에 많이 함유돼 있다. 보통 신선한 100g짜리 감자에는 7mg 이하의 솔라닌이 들어 있다. 이 정도의 양은 별다른 영향이 없지만, 햇빛에 오랜 시간 노출되거나 보관 상태가 좋지 않다면 솔라닌의 양은 늘어난다. 100g짜리 감자에 솔라닌이 20mg 이상 들어 있다면 먹었을 때 해가 될 수 있다. 이 독성물질은 감자의 아린 맛을 증가시키고 구토, 식중독, 현기증, 두통 등을 유발한다. 심하면 호흡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다량 섭취하면 위독할 수도 있다.

이런 감자의 독성을 몰랐던 옛 유럽인들은 감자를 먹고 탈이 나는 경우가 많아 ‘악마의 음식’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솔라닌은 감자를 손질할 때 싹을 도려내고 녹색으로 변한 껍질을 잘 제거하면 전혀 해롭지 않다. 게다가 물에 익히면 무독성으로 변하기 때문에 삶아서 먹으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오븐에 굽거나 팬에 익힐 때는 독성이 제거되지 않아 위험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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