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족발 사건’의 슬픈 그림자… 계약갱신청구권 5년의 함정

[음식과 사람 2018-8 P.43 Hot Issue]

 

▲ 이하 이미지 = PIXABAY

지난 6월 7일 발생한 일명 ‘궁중족발 사건’은 우리 사회 건물주와 임차인 사이에 횡행하는 심각한 갈등이 극단적으로 폭발한 사례다. 이로 말미암아 촉발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요구를 둘러싼 논란과 전망을 짚었다.

 

editor. 김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핫(hot)’하다는 곳, 서울 강남구 청담동 골목 한쪽에서 벌건 대낮에 일어난 ‘궁중족발 사건’은 세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갈등은 2016년 1월 피해자인 건물주 이모 씨가 건물을 매입하는 과정에서부터 생겨났다. 당시 저렴한 가격에 나온 급매물을 매입한 이 씨는 건물 보수공사를 하려고 세입자들에게 가게를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가해자인 김모 씨가 운영하던 궁중족발 가게의 계약기간이 4개월가량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다른 세입자들과 같은 시기인 10월, 11월경까지로 계약 만료 시한을 미뤄주겠노라 약속까지 했다”는 것이 건물주 이 씨 측 주장이다.

하지만 가게 임차인인 김 씨의 이야기는 달랐다. 이 씨가 ‘월세 미납’을 이유로 4월에 갑자기 명도소송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월세가 세 번 이상 미납되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은 있다. 이 씨가 먼저 “그냥 있다가 보증금에서 월세를 제하자”고 제안해 김 씨가 받아들였다는 것. 김 씨는 “가게를 비우라는 말이 나올까 봐 월세를 공탁해 계약기간을 채웠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분노를 키운 건 월세를 갑자기 4배나 올려달라고 요구한 이 씨의 억지였다. 이전 건물주와 맺은 계약기간엔 보증금 3000만 원에 월 297만 원을 내고 있던 것을 리모델링 후 보증금 1억 원에 월 120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통보한 것. 김 씨 처지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임대료를 올려서 낼 수 없다면 가게를 비우라는 건물주와 그럴 수 없다고 버티는 세입자. 하지만 법원은 건물주인 이 씨의 손을 들어줬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상 계약기간 중 연 1회에 한해 월 임대료를 5% 범위 내에서만 증감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해당 건물에 대한 김 씨의 계약은 그해 5월로 만료된 상태였기에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계약 갱신을 거부한 채 임대료를 4배나 올려 받으려 한 이 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들 사이의 지난한 싸움은 급기야 욕설과 몸싸움이 난무하는 폭력사태로까지 번졌다. 건물주 이 씨는 수차례 강제집행을 강행했고, 그 과정에서 김 씨는 손가락이 네 개나 잘려나가 응급수술을 받는 등 심각한 상해까지 입었다. 그랬던 김 씨가 이번엔 이 씨에게 망치를 휘두른 것이다. 그날 아침에도 계속된, 욕설이 담긴 이 씨의 모욕적인 문자 메시지가 화근이었다. 김 씨는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살인미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허점투성이 상가임대차보호법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은 몹시 분분하다. 건물주의 갑질에 대한 분노, 건물주에게 상해를 입힌 세입자에 대한 비난과 측은지심,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자신의 사유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건물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구조적으로 미비하여 분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분쟁을 해결할 만한 시스템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고, 법원에서 명도소송을 통해 승소한 뒤에 강제집행을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7월 12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프로그램의 ‘궁중족발, 정의란 무엇인가!’ 편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지적한 내용이다. 그는 “임차기간이 5년까지만 보호되는 현행법상 임차인들이 쏟아붓는 비용이나 노력을 회수하기에는 5년이라는 기간이 짧다는 평가가 많다”고 덧붙였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인은 임차인이 계약 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세의 증액 범위도 기존 임대료의 5% 이상을 초과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엔 ‘궁중족발 사건’ 사례에서처럼 계약기간이 5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효력을 발휘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설령 5년을 초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임대인과 임차인 상호 간 합의가 이뤄진다면 5% 이상의 증액 또는 감액이 가능하다는 판례도 존재한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후에 재계약을 하거나, 상호 협의가 이뤄진 상태라면 계약기간 중에라도 5% 이상의 증액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국민운동본부’ 출범

7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상가임대차보호법 관련 개정안만도 20개가 넘는다. 대부분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사장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궁중족발 사건’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7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국민운동본부’ 출범식엔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를 비롯해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모처럼 만에 한마음 한뜻으로 자리를 함께해 조속한 법 개정을 약속했다.

그보다 앞선 6월 25일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계약갱신 청구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국토교통부와 법무부가 합의했다”고 발표해 주목받았다. 김 장관은 “퇴거보상 제도를 합리적으로 만들자는 방향성에 대해서도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건물주가 재건축 등의 이유로 임대차기간 연장을 거절할 경우 상가 이전비용을 보상해주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문제로 지적돼왔던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미비점을 보완해 법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마련함으로써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아보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의 법 개정 추진 발표에도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개인의 재산을 국가가 10년 동안이나 통제한다는 발상 자체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맞지 않는 법안이라는 얘기다. 건물주 입장에선 충분히 반발할 여지가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정책이 되레 경기 위축을 불러와 장기적으론 상가 공급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건물주로서는 한번 임대료를 결정하면 10년 동안 변경이 불가능하니 임대료를 처음부터 올려 받는 방안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법안 발표와 동시에 급작스럽게 전국의 임대료가 들썩이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 피해 사례 모아 정책자료집 준비

“임대료는 줄이려야 줄일 도리가 없는 고정비입니다. 고정비 지출이 늘면 결국 그나마 손댈 수 있는 건 인건비밖에 없고요. 가뜩이나 최저임금 인상과 인력난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결국 사람을 내보내고 직접 1인 2역, 3역을 해내는 것밖엔 달리 도리가 없어집니다. 최저임금은 높아졌지만 고용률은 한없이 낮아지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는 겁니다. 획기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자영업이 붕괴되는 건 시간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정책경영국 김승일 대리의 말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는 현재 전국 224개 지부 회원들을 대상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과 관련해 부당하게 피해를 봤거나 고통받은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대로 계약 갱신 청구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나고 재건축과 재개발 등의 이유로 재계약이 불가능할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다 해도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에 세밀히 대응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회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조치다. 조사가 마무리되면 해당 자료는 8월 중 정부 유관부처와 각 정당에 보내져 정책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낙후됐던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인기 상권이 형성되고 고급화되어 임대료가 급상승하면서,역설적으로 기존의 상인 혹은 주거 세입자들이 내쫓기는 현상. 1964년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다.

 

[국회에 계류 중인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 계약갱신청구권 기간 5년→10년

- 보증금 인상률 5% 제한

-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설치

- 전통시장 권리금 회수 보장

- 재건축 시 임차인 보호

- 상가 환산보증금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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