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에세이

[음식과 사람 2018-8 P.73 Food  Essay]

 

이런 식당, 많아도 곤란하겠죠?

 

editor. 윤동혁

 

배가 고픈데… 아무 음식이나 선택할 수 있다! 이같이 확 터진 자유를 누리시려면 간단하다. 김밥 체인점에 가시라. 육개장, 비빔밥, 칼국수, 돈가스… 다 나온다. 지방의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시면 대략 서른몇 가지 메뉴 중에서 골라 드시면 된다. 이런 선택의 확장을 즐거워하는 분도 계시고, “역시 음식은 전문점에 가야 해”라며 (그건 주머니 사정과도 관련이 있지만) 발길을 돌리는 이도 있다.

나는 ‘짜장면의 사회학’에 관심이 많다. 이 음식이 언제 어떻게 이 땅에 들어왔으며, 어떤 변모를 거쳤고, 그것이 한국 사회의 변화와 어떤 형태로 연결고리를 갖는가 하는 이런 거창한 연구 목적을 갖고 있는데, 그중에서 재미있는 것이 메뉴의 확장이다. 죄다(100%) 정통 중화요리라고 간판에 써놨지만 여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냉면과 콩국수를 내놓는다. ‘정통’이란 말이 조금 손상당한다 싶었는지 ‘중화냉면’, ‘중국식 냉면’이라고 부른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짜장면 대부 손 아무개 씨가 크게 웃는다. “중국 사람 아무리 더워도 찬 음식 안 먹어요”라면서.

시골 우리 동네는 면 소재지라 여덟 곳(한두 군데 없어졌다 생겨났다 하지만)의 식당이 있다. 소머리국밥에 순댓국도 먹을 수 있고 ‘정통 중화요리집’이 2개소, 막국수와 김밥, 5000원 가정식 뷔페에 아귀찜, 삼겹살… 불타는 야식집도 나름 성황이다.

그럼 되지 않았냐 하시겠지만 이런 음식 먹고 싶으면 원주 시내로 나가야 한다. 우선 두부, 모두부든 두부전골이든 두부 냄새 고소한 두부 요리를 먹고 싶을 때나, 두부 전문점에서 으레 나오는 녹두전이 먹고 싶을 때는 먼 길 행차를 해야 한다. 뒷목 당기는 일이 생겨 손에 기름 묻혀가며 족발이 뜯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다. 뼈다귀감자탕도 없다. 막국수는 있지만 냉면이 없다. 카레도 콩나물국밥도…, 그리고 무엇보다 ‘생선회’를 우리 동네에선 먹을 수 없다.

이런 호강에 겨운 갈증이 상당 부분 풀리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다. 예전에 시골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막걸리 공장, 양조장이 있었지 않은가. 학교에서 1, 2등 하는 부잣집 아들딸은 양조장과 정미소에서 태어났다. 귀래양조장은 20년 전 내가 처음 이곳과 인연을 맺었을 때 이미 닫혀 있었다. 그 양조장의 묵은 먼지를 털고 닭갈빗집이 문을 열었다. 50대 후반의 아주머니였는데 외지 사람이었다.

군대 간 아들 녀석이 휴가 나와서 닭갈비 먹고 싶다 할 때나 데려가는, 내게는 그다지 끌리는 식당이 아니었다. 식당은 넓었고 음악도 제법 와인이 생각나게 만드는지라 어느 날 서울에서 스태프가 놀러 왔을 때 한번 저질러보았다.

“여기 메뉴에는 없는데 우리가 먹고 싶은 거 이야기하면 만들어주실래요?”

주인아주머니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구나’ 싶은 표정으로 무엇이 먹고 싶은지 어서 말하라고 오히려 채근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 냉장고에 있거나 강원슈퍼 그리고 맞은편 정육점에 있는 거라면 뭐라도 해드리지.”

정육점에서 돼지 목살을 사고 강원슈퍼에 가서 두부를 넉넉하게 가져왔다. 돼지김치찌개가 끓을 때까지 두부를 김치에 싸 먹으며 술잔치가 시작되었다. 일반 손님 식탁에는 내놓지 않는 더덕장아찌도 나왔고, 술자리가 끝날 무렵에는 과일 종합세트가 깔끔하게 뒤처리를 해주었다.

물론 그날 우리가 특별한 술상을 받았을 때 일반 손님은 한 팀밖에 없어서 주인장 일손이 한가했다. 그러나 주인이 오히려 더 신나서 바쁘게 상을 차려주는 모습은 강렬한 기쁨으로 다가왔고, 그 후로도 별식이 먹고 싶으면 우리는 양조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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