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 박은향 선생 댁 - 삭힌찹쌀고추장, 염장시래기꽃게찌개, 전라도식 즙장, 증병

[음식과 사람 2018-9 P.55 Recipe]

사라져가는 전국 팔도의 우리 음식을 찾아내고 지키기 위해 각 지방과 집안에 전해져오는 ‘내림음식’을 연구하는 분들이 있다. 각자의 어린 시절 집안에서 먹어오던 음식을 통해 우리 음식의 뿌리를 찾고, 재현하고, 비교해보고, 후손들에게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는 분들이다. 이분들이 공들여 완성해낸 명가 내림음식 레시피를 <음식과 사람>에 소개한다. 새로운 메뉴 개발에 늘 목말라하는 외식업계에 좋은 ‘소스’가 될 것을 기대하며, 아울러 한국 전통 음식이라는 한식의 DNA를 21세기 우리 음식점 식탁으로 새롭게 소환해내는 일에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editor. 김진수 자료 제공.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풍성한 식재료 속 한가득 추억 깃든 내 고향

나의 고향은 전라도다. 어릴 적 엄마와 아빠는 친할머니댁에서 분가해 전북 군산에 자리를 잡으셨고, 식구들 중 나만 유일하게 할머니댁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린 나는 사랑방에서 증조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저녁밥을 먹고 해 질 녘이면 마실 가시는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어디든 따라다녔다.

할머니는 이른 봄 쑥과 냉이, 각종 봄나물을 캐서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 오시고, 고사리가 날 때면 꺾어와 삶아서 평상에서 말리셨다.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시는 할머니를 쫓아가면 산딸기, 머루, 다래 등을 한 움큼씩 따서 주시곤 했다.

한여름이면 개울가에서 미역을 감고 고둥, 미꾸라지, 메기, 민물새우, 송사리 등을 잡으며 여름철을 보냈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미꾸라지를 잡아 오면 할머니는 아궁이에서 장작불이 타고 남은 숯을 꺼내 그 위에 냄비를 올려 미꾸라지탕을 끓여주셨다. 잡아 온 고둥에 된장과 호박잎, 호박을 넣어 끓여주셨던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가재를 잡아 오면 숯불에 구워주셨고, 가을 들녘에 벼가 익을 무렵 메뚜기를 잡아 오면 가마솥 뚜껑에 기름을 두르고 볶아주셨다. 겨울에 먹었던 꽁꽁 언 홍시는 또 얼마나 맛있던지….

어릴 적 나는 자연스럽게 수많은 식재료를 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했던 추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어릴 때 자연과 접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만져보고, 먹어보고 한 모든 것들이 지금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나를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해주었다.

이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군산으로 온 나는 풍부한 해산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9남매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대소사를 책임진 엄마는 늘 음식을 많이 하셨다. 고두밥을 쪄서 술도 빚으시고, 식초도 만드시고, 떡도 만드시고, 다양한 김치와 젓갈·장을 담그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많은 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맛 좋은 엄마표 ‘삭힌찹쌀고추장’]

겨울에 찹쌀을 깨끗이 씻어 추운 곳에 10~15일 정도 두면 노란 물이 둥둥 떠 있었다. 그 냄새는 맡을 수 없을 만큼 고약했다. 하지만 그 물로 찹쌀죽을 끓이면, 정말 구수하고 맛있는 죽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여기에 고운 고춧가루와 직접 만드신 조청과 소금을 넣어 맛있는 고추장을 해마다 만드셨다. 맛 좋은 ‘엄마표’ 고추장은 늘 인기가 좋았다.

 

 

▶재료 및 분량

찹쌀 400g, 메줏가루 300g, 고춧가루 600g, 조청 1컵, 엿기름가루 300g, 물 8ℓ, 소주 1컵

 

▶만드는 방법

1. 추운 겨울에 찹쌀을 깨끗이 씻은 후 쌀 분량의 2배 되는 물을 부어 10~15일 정도 물의 색이 노랗게 될 때까지 둔다.

2. 엿기름가루를 면 주머니에 넣고 미지근한 물에 30분가량 두었다가 손으로 주물러 꼭 짜서 가라앉힌 다음 웃물을 따라놓는다,

3. 솥에 1과 2를 넣어 주걱으로 저으면서 쌀알이 푹 퍼질 때까지 뭉근하게 죽을 끓여 큰 그릇에 쏟아부어 식힌다.

4. 3의 찹쌀죽에 메줏가루와 고춧가루, 소금, 조청을 넣고 고루 섞어 간을 맞춘다.

5. 항아리에 담기 전에 2, 3일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소주 한 컵을 넣어 마무리한다.

6. 고추장은 항아리에 꽉 차지 않게 담고 웃소금을 뿌린 후 천으로 덮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3, 4개월가량 익힌다.

 

▶Tip

1. 죽을 끓일 때는 눋지 않게 잘 저어준다.

2. 항아리에 담기 전에 2, 3일 정도 두면서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3. 찹쌀을 삭힐 때는 실내보다 온도가 낮은 베란다가 적당하다.

 

[부드러운 식감 ‘염장시래기꽃게찌개’]

김장할 때 배추 절인 물을 버리지 않고 소금을 추가해 그 물에 무청을 절여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까지 숙성시키면 절인 무청이 누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절인 무청 시래기를 살짝 삶아 하룻저녁 그대로 놓아둬 소금기를 뺀 다음 손으로 물기를 꽉 짜고 들기름으로 달달 볶고는 꽃게와 함께 지져주셨다. 말린 시래기보다 식감이 부드러워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재료 및 분량

염장 시래기 600g, 시래기 삶은 물 10컵(2kg), 꽃게 2마리(300g), 청고추 1개(15g), 홍고추 1개(20g) 양념장 : 국간장 1큰술, 고춧가루 1작은술, 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 1/2큰술, 들기름 1큰술, 집된장 4큰술, 쌀뜨물 6컵(1.2kg), 국간장 약간

 

▶만드는 방법

1. 염장 시래기는 여러 번 헹궈 씻은 후 물을 붓고 삶아 하룻저녁 놓아둬 소금기를 빼준다.

2. 꽃게는 솔로 깨끗이 씻어 발끝을 자르고 등딱지와 몸통을 분리한다. 아가미를 떼어낸 다음 등딱지 속 모래주머니도 떼어내고 4등분한다.

3. 청·홍고추는 씻어서 길이 2cm, 두께 0.3cm로 어슷하게 썬다.

4. 파와 마늘은 곱게 다진다.

5. 소금기를 뺀 시래기에 양념장을 넣고 버무려준다.

6. 냄비를 달궈 들기름과 양념한 염장 시래기를 넣고 중불에서 볶다가 쌀뜨물을 붓고 센 불에 6분 정도 올려 끓으면 중불로 낮춰 30분 더 끓인다.

7. 꽃게를 넣고 끓인 후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들기름과 청·홍고추를 넣어 1분 더 끓인다.

 

▶Tip

1. 김장철에 배추를 절이고 난 소금물에 무청을 절이거나, 배추 절인 물이 없을 경우 무청에 소금을 듬뿍 넣어 6개월 이상 염장하면 무청의 색이 누렇게 변하는데 이때 사용한다.

2. 조리를 할 때는 무청의 짠맛을 모두 빼준다.

 

[입맛 살리는 밥도둑 전라도식 ‘즙장’]

즙장은 입맛을 살려주는 밥도둑이라 할 수 있다. 추수가 끝나고 들녘에 남아 있는 고춧잎, 늦자란 고추, 가지, 무 등 여러 가지 채소를 고운 고춧가루와 질게 지은 찹쌀밥, 메줏가루와 엿기름가루를 함께 섞어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며칠 두면 맛있는 즙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즙장은 맵지도 짜지도 않아 밥상에 즙장이 올라오면 “할머니, 밥 더 줘!” 할 정도로 너무나 맛있었다. 전기밥솥이 없던 시절, 아랫목은 밥을 식지 않게 해주고 추운 날 방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식구들의 몸도 따뜻하게 데워주던 정겨운 장소였다. 즙장을 먹을 때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재료 및 분량

찹쌀 1.6kg, 고춧잎 150g, 고추 50g, 무청 250g, 가지 1개, 소금 200g, 무말랭이 20g, 엿기름가루 60g, 메줏가루 160g, 고운 고춧가루 100g, 청장 50g

 

▶만드는 방법

1. 찹쌀은 1시간 물에 불린다.

2. 고춧잎, 고추, 무청, 가지는 소금에 절인 후 헹궈 물기를 꼭 짠다.

3. 무말랭이는 물에 살짝 씻어 헹군 후 물기를 꼭 짠다.

4. 체에 친 엿기름가루에 메줏가루와 고춧가루, 청장을 넣고 잘 섞는다.

5. 찹쌀밥을 질게 지어 미지근하게 식힌 후, 위의 재료를 모두 섞어 따뜻한 곳에 2일 정도 숙성시켜서 먹는다.

 

▶Tip

1. 채소를 많이 넣기 때문에 지방에 따라 채소장, 채장, 검정장으로도 불린다.

2. 무말랭이를 물에 오래 담가두면 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없다.

3. 고추는 작은 것을 사용한다.

4. 엿기름은 체에 내려 고운 가루를 사용한다.

5. 찹쌀은 가루를 사용해 묽은 죽처럼 끓여 사용하기도 한다.

6. 숙성된 즙장은 냉장 보관한다.

 

[먹을 것 귀하던 시절의 간식 ‘증병’]

증병(술떡)을 먹을 때면 항상 할머니가 그립다. 할머니는 멥쌀을 곱게 빻은 후, 막걸리와 함께 반죽한 뒤 따뜻한 아랫목에서 발효를 시켰다. 발효가 끝난 반죽을 커다란 꽃쟁반에 담고 밤, 대추, 잣을 넣어 가마솥에 찌면 스펀지처럼 부드러운 떡이 완성됐다. 납작했던 반죽이 다 쪄지면 부풀어 오르던 모습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먹을 것이 귀했던 어린 시절에 먹었던 술떡의 맛을 잊기 힘들다.

 

 

▶재료 및 분량

멥쌀가루 10컵(1kg), 물 1컵, 설탕 1컵, 소금 1큰술, 막걸리 1과 1/2컵, 밤 5개, 대추 5개, 잣 1큰술

 

▶만드는 방법

1. 멥쌀가루를 분쇄기로 곱게 가루를 내어 체에 내린다.

2. 믈은 미지근하게 데워 설탕과 소금을 녹여놓는다.

3. 체에 내린 쌀가루에 2와 막걸리를 넣어 반죽한다.

4. 40℃에서 이불을 덮어 1차 발효를 6시간 한 뒤 공기를 충분히 빼고, 2차 발효를 2시간쯤 한다.

5. 밤은 얇게 저미고, 대추는 돌려깎기 한 후 가로, 세로 0.5cm로 네모나게 썬다. 잣은 비늘잣을 만든다.

6. 반죽에 5를 잘 섞은 후 틀에 넣어 중불에서 5분 정도 3차 발효를 시킨다. 발효가 끝난 후 찜기에서 김이 오르면 15분 찐 후 5분간 뜸을 들인다.

 

▶Tip

1. 밤은 얇게 저미고 찜기에 쪄서 사용해도 된다.

2. 1차 발효가 끝나면 공기를 충분히 빼준다.

3. 3차 발효 시 온도가 너무 높지 않도록 잘 살핀다.

 

 

박은향 박은향전통음식연구원 원장

●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전통주 부문) 금상, 제7회 전통주와 전통음식의 만남(전통주 전시 경연) 금상(2014)

●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발효 효소 부문) 식품의약품안전처장상, 제8회 전통주와 전통음식의 만남(전통주 전시 경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대한민국 와인·음식 경연대회 장려상, 떡·한과 페스티벌 아름다운 떡·한과 만들기 경연대회 금상(2015)

● 제9회 전통주와 전통음식의 만남(전통주 전시 경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전주 비빔밥축제-전통주 부문 최우수상, 2016 한식의 날 대축제 요리경연대회 금상, 가양주 주인(酒人) 선발대회 은상(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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